LA다저스 류현진(왼쪽)과 콜로라도 오승환이 지난해 12월 4일 열린 2018 조아제약 프로야구대상 시상식에 참가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정시종 기자
"류현진의 전성기는 2019년에 올 거예요." (오승환)
"승환 형이 빨리 좋은 사람 만나 결혼했으면 좋겠네요." (류현진)
세밑에 오간 훈훈한 덕담. 주인공은 한국인 메이저리거인 오승환(37·콜로라도)과 류현진(32·LA 다저스)이다. 한국 야구가 낳은 명실상부 최고의 마무리 투수와 선발 투수. 이들은 지난 한 해를 총정리하는 2018 조아제약 프로야구 대상 시상식에서 나란히 특별상을 수상하면서 마주 앉았다. KBO 리그 출신 메이저리거로서 가장 성공적인 커리어를 쌓아 가고 있는 투수들답게 위풍당당한 카리스마가 흘러넘쳤다.
두 투수에게 2018년은 다시 한번 '대한민국 최고'의 위상을 확인한 한 해였다. 오승환은 지난 10월 3일(한국시간) 리글리필드에서 열린 시카고 컵스와 내셔널리그 와일드카드 결정전에 등판하면서 한국인 선수 최초로 한·미·일 프로야구 포스트시즌에 모두 출전하는 새 역사를 아로새겼다. '파이널 보스'라는 별명에 걸맞은 업적이었다.
이미 오승환은 한국에서 삼성 소속으로 총 다섯 차례(2005·2006·2011~2013년) 한국시리즈 정상에 올랐다. KBO 리그 통산 최다 세이브(277개)와 역대 한 시즌 최다 세이브(47개) 기록을 남긴 채 2014년 일본에 진출했고, 그해 한신 마무리 투수로 일본시리즈에서 맹활약했다. 2016년 세인트루이스와 계약해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뒤 세 시즌 만인 올해 콜로라도 유니폼을 입고 마침내 빅리그 가을 무대까지 밟는 데 성공했다. 한국 야구 역사에 남을 만한 기념비적 투수로 다시 한번 자리매김했다.
류현진은 올해 '국민 투수'로 자리매김했다. 정규 시즌 15경기에서 7승3패 평균자책점 1.97를 기록하면서 다저스의 6년 연속 내셔널리그 서부 지구 우승에 힘을 보탰다. 포스트시즌에선 클레이튼 커쇼에 이어 팀의 2선발로 활약했고, 한국인 선수 최초로 월드시리즈에 선발 투수로 나서는 기염을 토했다.
류현진은 지난 정규시즌 15경기 7승 3패 평균자책점 1.97을 기록하며 다저스의 6년 연속 지구 우승에 힘을 보탰다. 이어진 월드시리즈에서도 팀의 2선발로 활약했다.
이전에도 류현진의 발걸음은 그 자체가 신화였다. 한화 소속이던 지난 2013년 포스팅 시스템을 통해 KBO 리그 출신 선수로는 최초로 메이저리그에 직행했다. 포스팅 비용이 무려 2573만7737달러에 달했다. 빅리그 진출 첫해부터 2년 연속 14승을 올리며 날아올랐고, 올해는 어깨와 팔꿈치 부상을 이겨 내고 마운드를 지키면서 진정한 '귀환'을 알렸다. 시즌이 끝난 뒤 자유계약선수 자격을 취득한 그에게 다저스는 퀄리파잉 오퍼로 특급 선수 대우를 했다. 이 제안을 수락한 류현진은 내년 시즌 연봉 1790만 달러(약 202억원)를 받고 1년 더 다저스에서 뛰게 됐다.
나란히 메이저리그에서 공을 던지는 둘이지만 평소 자주 만나기는 쉽지 않다. 오승환의 소속팀 콜로라도와 류현진의 소속팀 다저스가 같은 내셔널리그 서부 지구에 속해 있는데도 그렇다. 오승환이 올 시즌 중반까지 토론토에서 뛴데다, 미국은 너무 넓고 메이저리그 경기 일정은 무척 타이트하다. 오승환은 "경기 일정이 맞을 때만 볼 수 있고, 그것도 내가 LA 원정을 가야 밥이라도 같이 먹을 수 있다"며 "콜로라도는 식당이 오후 10시 정도면 다 문을 닫아서 경기 이후 만날 만한 곳이 없다. 밥 먹기가 가장 힘들다"고 했다. 한국 교민이 많은 LA는 그런 의미에서 '천국'이다. 류현진이 단골 식당에 미리 얘기해 놓으면 오승환도 경기 이후 만나 늦은 식사를 함께할 수 있다. 그럴 때 모처럼 회포를 풀고 고충을 나눈다. 24시간 문을 여는 식당도 한국이 많이 그리워지는 순간이다.
물론 한국도 오승환과 류현진을 그리워한다. 그들이 KBO 리그를 떠난 지 각각 5년, 6년이 흘렀다. 그사이 둘을 뛰어넘거나 빈자리를 채울 만한 후배 투수는 아직 등장하지 않았다. 둘 다 10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선수로 평가받기에 '후계자'를 찾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매년 '타고투저' 현상이 계속되는 KBO 리그는 '제2의 오승환'과 '제2의 류현진'이 나타나기를 학수고대할 수밖에 없다.
오승환은 "나도 현역 선수인 입장에서 다른 선수들에 대해 얘기하기가 조심스럽지만, 아무래도 타자들에 비해 투수들 성장이 더디다 보니 타고투저가 계속되는 것 같다"며 "현진이가 한국에서 뛸 때만 해도 각 팀 1~2 선발들은 막강했는데, 지금은 그런 선수가 잘 보이지 않는다. 젊은 선수들 성장이 조금 정체돼 있어서 그런 것 같다"고 했다.
그렇다고 메이저리그와 KBO 리그를 단순 비교하면서 한탄할 필요는 없다. 무조건 '메이저리그식' 훈련 방식을 따르는 것도 옳지 않다. 오승환은 "서양 선수와 아시아 선수는 일단 타고난 신체 조건이나 힘부터 다르다. 우리는 어릴 때부터 배우는 투구 폼이 있는데, 서양 선수들은 그 폼을 무시하고 던져도 시속 160km가 나온다"며 "미국 선수와 한국·일본 선수를 비교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이어 "이미 한국의 트레이닝 코치들이 미국에서 배워 와 한국 선수에 맞는 방법을 찾아가고 있고, 무엇보다 선수 개인의 노력이 가장 중요하다"며 "자신에게 맞는 훈련 방법을 잘 찾아서 꾸준히, 열심히 하는 게 중요하다"고 선배로서 조언했다.
오승환과 류현진은 2008 베이징올림픽과 2009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 한솥밥을 먹은 인연이 있다. 한국 야구 대표팀이 올림픽 금메달과 WBC 준우승을 이뤄 내면서 황금기를 보내던 시절이다. 둘은 "해외에 있다 보면 국내 선수들과 함께 뛰고 싶은 마음이 더 많이 든다. 대표팀은 선수가 가고 싶다고 해서 갈 수 있는 팀이 절대 아니니까 더 영광스러운 것 같다"고 입을 모았다.
아직 기회는 더 있다. 2021년 3월에 열리는 제5회 WBC다. 2년 뒤엔 류현진이 선발 등판해 호투하고 오승환이 그 승리를 지키는 모습을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류현진은 지난 두 번의 WBC엔 참가하지 못했다. 2013년엔 다저스와 계약 후 첫 메이저리그 스프링캠프를 치러야 했고, 2017년엔 부상으로 수술을 받고 재활 중이었다. 류현진은 "한동안 국가대표팀에서 뛰지 못했지만, 2021년 WBC에는 걸림돌이 아무것도 없다. 불러만 주신다면 꼭 나가고 싶다"고 힘주어 말했다.
오승환은 그야말로 WBC 터줏대감이다. 1회부터 4회 대회까지 모두 출전한, 유일한 한국 선수다. 특히 안방(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4회 대회 때는 전체적으로 부진했던 대표팀 안에서 한국 야구의 마지막 자존심을 세워 줬다. 당시 국가대표 지휘봉을 잡았던 김인식 감독은 "오승환이 없었다면 큰일 날 뻔했다"고 했다.
오승환은 2021년 WBC 얘기가 나오자 "우선 그때 실력이 돼야 대표팀에 뽑히는 것 아닌가. 현진이가 가야 하고, 나는 가 봐야 1이닝 정도밖에 못 던진다"고 한발 물러서면서도 "내가 한 번 더 나가게 되면 전 대회에 출전한 선수는 나밖에 없는 것 아니냐"고 너털웃음을 지었다.
오승환과 류현진은 이미 '전설'이다. 지금은 해외에서 기량을 발휘하고 있지만, 언젠가는 다시 KBO 리그로 돌아와야 할 인재다. 선수로서는 물론이고, 지도자로서도 그렇다. 그들은 은퇴 이후 야구 감독이 된 자신의 모습을 그려 봤을까. 류현진은 "감독은 하고 싶다고 할 수 있는 자리가 아니다. 하지만 만약 기회가 생긴다면 먼 훗날 언젠가는 해 보고 싶다는 마음도 든다"며 "(프로 첫 사령탑인) 김인식 감독님 같은 지도자가 되면 좋을 것 같다"고 했다.
오승환 역시 "내 마음대로 되는 일은 아닌 것 같다"는 전제하에 "잠깐씩이지만 미국과 일본에서도 선수 생활을 하지 않았나. KBO까지 세 리그의 좋았던 부분만을 선수들에게 알려 주고 싶은 마음이 있다"고 했다. "다양한 선수들을 현장에서 보고 같이 운동하면서 지켜봤기 때문에 (한국의) 후배 선수들에게 많이 얘기해 주고 도움을 주고 싶은 부분이 있다"는 의미다.
류현진은 얼마 전 "2019년엔 20승을 해 보고 싶다"고 말해 화제가 됐다. 늘 꾸준히 '10승'을 목표로 하던 류현진이 KBO에서도 못해 본 20승을 새 시즌 희망으로 언급한 이유가 있다. 그는 "20승을 '하겠다'는 선언이 아니라 '하고 싶다'는 바람을 얘기한 것인데 너무 부담스러워졌다"고 웃으며 "그동안 아파서 많이 못 던졌으니, 내년에 가장 중요한 조건은 무조건 아프지 않고 많이 던져야 하는 것 아닌가. 그래서 꾸준히 경기에 나가서 잘 던지는 것을 생각하다 보니 그런 수치가 나온 것"이라고 설명했다.
마무리 투수로서 웬만한 역사는 다 써 본 오승환은 역시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던지는 것"이 첫 번째 소망이다. '이제 이룰 건 다 이루지 않았냐'는 말에는 "아직 골든글러브는 못 타 봤다"는 농담으로 응수했다. 순수 구원투수가 투수 부문 골든글러브를 수상한 사례는 역대 단 세 차례밖에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오승환이 KBO 리그에 복귀한다면 또다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그는 시기를 못 박지 않은 채 "언제든 한국에 돌아오고 싶다"고 했다.
이제 두 투수는 새로운 출발선에 선다. 2019년은 둘 모두에게 중요하다. 오승환은 소속팀 콜로라도와 계약이 만료되고, 류현진은 FA를 앞두고 있다. 서로에게 2019년 새해 덕담을 들려 달라고 했다. 오승환은 "현진이는 지금까지 하던 대로만 하면 된다"고 했다. "몸만 아프지 않으면 워낙 검증된 선수 아닌가. 이제 부상을 완전히 떨쳐 낸 것 같다"며 "내년엔 현진이에게 최전성기 시즌이 찾아올 것"이라고 했다. 희망이 아닌 '확신'이었다.
류현진도 화답했다. 배지현 전 MBC SPORTS+ 아나운서와 결혼한 후 "아내의 내조에 도움을 많이 받았다"고 했던 그다. 오승환을 향해 "형이 좋은 분과 빨리 결혼했으면 좋겠다. 안정적인 환경에서 계속 좋은 모습을 보일 수 있지 않을까"라고 했다. 오승환은 "난 이미 늦었다"며 쑥스럽게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