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팀 주전 골키퍼는 잘 바뀌지 않는다. 한국 축구대표팀도 마찬가지다. 전성기에서 내려오지 않는 이상, 한 선수가 독주 체제를 구축한다.
대표적으로 한국 골키퍼의 '전설' 이운재를 보면 알 수 있다. 2002 한일 월드컵에서 거스 히딩크 감독의 선택은 이운재였다. 4강 신화에 앞장선 이운재는 한일 월드컵을 기점으로 독주 체제를 가동했다
2004 중국아시안컵에서도 존 본프레레 감독은 이운재의 손을 잡았다. 2006 독일월드컵에서 감독이 딕 아드보카트 감독으로 바뀌었지만, 주전 골키퍼는 여전히 이운재였다. 2007 동남아 4개국(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태국·베트남) 아시안컵에 나선 핌 베어벡호의 골문도 이운재가 지켰다.
4개 메이저 대회를 모두 주전 골키퍼로 활약한 이운재. A매치 출장 수가 무려 133경기다. 한국 축구 역사상 센추리클럽에 가입한 유일한 골키퍼다.
이운재가 물러난 뒤 '춘추전국시대'가 열렸다. 2010 남아공 월드컵에서 허정무 감독이 주전으로 선택한 이는 정성룡(가와사키 프론탈레)이었다. 2011 카타르아시안컵에서 조광래 감독 역시 정성룡에게 신뢰를 줬다.
정성룡이 이운재에 이어 독주 체제를 갖추는 듯했으나, 홍명보 감독이 이끈 2014 브라질월드컵에서 흐름이 바뀌었다. 정성룡은 1차전 러시아, 2차전 알제리전에 나섰지만 인상적이지 못했다. 그러자 3차전 벨기에전에 김승규(비셀 고베)가 주전으로 떠올랐다.
그러나 1년 뒤 주전 골키퍼는 다시 바뀌었다. 2015 호주아시안컵에서 울리 슈틸리케 감독의 믿음은 김진현(세레소 오사카)으로 향했다. 김진현은 최고의 선방 쇼를 펼치며 한국의 준우승을 이끌었다. 이후 김진현이 부상과 스페인전 실수 등으로 주전 자리에서 밀려났고, 김승규가 다시 주전으로 올라섰다.
2018 러시아월드컵에서도 많은 이들이 김승규가 주전 골키퍼일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러나 전망은 빗나갔다. 신태용 감독은 조현우(대구 FC)를 깜짝 선발로 내세운 카드를 선보였다. 조현우는 미친 선방 쇼로 한국 골문을 지켰고, 러시아월드컵 최고의 스타로 떠올랐다.
이런 조현우의 기세도 오래가지 못했다. 파울로 벤투 감독이 부임하자 흐름은 다시 변했다. 벤투 감독의 선택은 김승규였다. 그는 2019 아랍에미리트(UAE)아시안컵 C조 1차전 필리핀전에서 선발로 나서며 벤투의 신임을 받음을 증명했다.
이변이 없다면, 오는 12일 열리는 키르기스스탄과 2차전에서도 김승규가 선발로 나올 것으로 보인다. 메이저 대회에서 조별리그 1차전과 2차전에 다른 골키퍼가 출전한다는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이다.
왜 주전 골키퍼 교체가 이토록 잦은 것일까? 9일, 대표팀 훈련장인 UAE 두바이 알 샤밥 알아라비 클럽에서 만난 신태용 전 감독에게 이유를 들을 수 있었다. '감독과 궁합'이 핵심이었다.
신 전 감독은 "주전 골키퍼와 감독에게는 신기하게도 궁합이 있는 것 같다. 러시아월드컵 당시에도 김승규를 예상하는 이들이 많았지만, 나와 궁합은 조현우가 더 잘 맞았다. 그리고 조현우는 잘 해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