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청용. 이름만 들어도 든든했던 시절이 있었다. 그는 유연한 드리블과 재치 있는 패스를 보여 주며 팬들을 즐겁게 했다. 성실하면서도 유려한 플레이 덕분에 슈팅 능력이 떨어지는 단점도 크게 부각되지 않았다.
그러나 갑작스럽게 찾아온 큰 부상과 이어지는 부진으로 한국 축구의 중심에서 점점 멀어졌다. 대표팀 발탁에 결코 이견이 없었던 선수에서, 뽑힐 때마다 경기 감각에 논란이 되는 선수로 상황은 바뀌어 있었다. 그러나 이청용은 포기하지 않았다. 유럽에서 재기와 대표팀 복귀를 위해 결단을 내렸다. 지난해 여름, 그는 꽤 높은 연봉을 제시한 국내 3개 구단의 제의를 거절했다. 그의 선택은 독일 분데스리가 2부리그. 어떤 이들은 잉글랜드프리미어리그(EPL)에서 분데스리가 2부리그 보훔으로 가는 것에 부정적 의견을 냈으나, 그의 생각은 확고했다. 결국 그의 선택은 옳았다. 2018~2019시즌 전반기에 맹활약한 뒤, 입단한 지 4개월 만인 지난해 12월 구단과 계약을 연장했다.
이청용이 2019 아랍에미리트(UAE)아시안컵에서 좋은 활약을 이어 가고 있다. 지난 12일(한국시간) 열린 키르기스스탄과 조별리그 2차전에도 눈에 띄는 활약을 펼쳤다. 앞선 필리핀과 1차전에도 후반에 교체 투입돼 분위기 반전을 만들어 내며 결승골을 돕는 데 일조했다. 물론 키르기스스탄전에는 공격과 수비에서 한 차례씩 실수했으나, 그 경기에서 이청용보다 뛰어난 활약을 한 선수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부상자가 늘어나는 대표팀의 상황에서, 이청용의 활약은 가뭄 속 단비와 같다. 30대에 접어들면서 폭발적인 드리블은 줄어들었으나, 나이에 걸맞은 노련한 움직임으로 공격 전개를 원활하게 만드는 역할을 잘 한다.
KFA 제공
이청용은 이제 중앙에서도 활약이 가능한 선수다. 소속팀 보훔에서 공격형 미드필더로 활약하면서 전반기 팀 내 최고 활약을 펼쳤기 때문이다. 2선 공격 자원들의 부상과 부진이 이어지고 있기에, 이청용의 활약은 어느 때보다 소중하다.
얼마 전만 하더라도 그의 대표팀 내 입지는 매우 좁았다. 2018 러시아월드컵 직전에도 맨 마지막에 탈락한 선수가 이청용이었다. 신태용 당시 감독은 명단 발표 전날까지 이청용을 두고 고심했다고 한다. 이청용이 가진 기술과 경험은 인정하나, 그의 경기 감각이 문제였다. 이청용이 유럽 잔류를 선택한 이유기도 하다.
이청용은 본인이 본래 서 있던 자리로 돌아오는 중이다. 지난해 11월 호주 원정 평가전부터 자리 잡기 시작해, 이제는 아시안컵에서 가장 소중한 선수가 됐다. 한국은 16일 중국과 조별리그 3차전 경기를 한다. 이미 16강 진출을 확정했으나, 조 1위로 토너먼트를 시작하려면 반드시 승리가 필요하다. 손흥민이 합류하더라도 100% 컨디션은 어렵다. 결국 이청용이 해 줘야 한다. 파울루 벤투 감독이 중국전 선발 라인업을 고민할 때, 이젠 이청용부터 일단 넣어 두고 시작할 확률이 높다.
어느덧 팀 내 세 번째 고참이 된 이청용. 그에게 이번 대회는 어쩌면 마지막 아시안컵이 될 수 있다. 2011년엔 아쉬운 3위, 2015년엔 부상으로 중도 하차. 이청용이 매 경기 의지를 불태우는 이유다. 이번 아시안컵에서 그의 두 번째 전성기가 시작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