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뷰티 업계의 최대 수출국인 중국에서 한방 화장품이 인기를 끌자 앞다퉈 제품 출시와 라인 확대에 몰두하고 있다. 8년 전만 해도 2조원 수준에 그쳤던 국내 한방 화장품 시장은 폭발적 성장을 거듭한 끝에 아시아 전역에서 최고 전성기를 맞았다. 기존 뷰티 기업은 물론이고 화장품 사업에 큰 관심이 없었던 대기업이 한방 화장품을 전방에 내세워 뛰어드는가 하면, 중소기업들도 가세했다.
한방에 난리 난 K뷰티·중국…너도나도 '올인'
현재 국내 한방 화장품 1위는 LG생활건강(이하 LG생건)의 '후'다. 지난해 단일 브랜드로는 최초로 2조원 매출을 돌파하면서 한방 화방품의 위력을 알렸다.
LG생건은 한방으로 재미를 보자 원래 보유하고 있었던 한방 브랜드를 리뉴얼 론칭하는 등 마케팅에 힘을 주고 있다. 지난 10일 이후 남성 라인 '후 공진향 군' 패키지를 업그레이드해 선보이면서 소비자 외연을 남성까지 확장했다. "황제에게 진상됐던 귀한 성분과 궁중 비방으로 피부를 관리해 주는 기초 라인"이라면서 남성 소비자의 눈길을 끈다.
이와 더불어 LG생건은 보유하고 있던 한방 브랜드 '수려한'과 '사가수'를 아우르는 통합 브랜드 '수 한방'을 론칭하면서 한방 라인 강화에 초점을 맞췄다.
최근에 설화수 내 한방 안티 에이징 제품 '진설 라인'을 출시했고, 시그니처 '자음생 라인'등에서 다양한 신제품을 선보여 럭셔리 브랜드의 입지를 강화했다.
설화수는 올해 중국 현지에 신규 매장을 출점하고, '설린 라인'과 '자음생 에센스' 신제품을 출시한다. 또 중국 시장 내에 온라인 쇼핑몰을 추가 입점하고, 세트 상품 기획으로 온라인 비중을 확대하기로 했다.
신세계 인터내셔날(이하 신세계)은 지난해 10월, 첫 자체 제작 화장품 브랜드로 자연주의 한방 화장품을 표방한 '연작'을 내놨다. 신세계가 프리미엄 화장품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미 과포화됐다고 평가된 K뷰티 업계지만, 연작은 야심을 숨김 없이 드러냈다.
정유경 신세계백화점 총괄 사장이 초기 기획부터 제조 단계까지 직접 관여한 점을 알렸고, 중국인 인플루언서를 대상으로 연작의 고기능성 한방 원료와 끈적임 없는 텍스처·세련된 용기와 좋은 향을 집중적으로 홍보했다.
신세계 측은 국내 주요 백화점과 면세점에 '연작' 매장을 열고, 아시아와 미국·유럽 등 해외시장에도 적극 진출해 2020년 매출액 1000억원을 달성한다는 계획이다.
중소기업도 한방에 발을 들인다.
'미샤'와 '어퓨'를 보유한 에이블씨엔씨는 지난 18일, 프리미엄 한방 라인 '초공진 달콤한 꽃 리미티드 에디션'을 출시했다. '초공진' 라인에는 원기 회복의 명약으로 알려진 공진단 성분에 구증구포 한 흑삼과 숙지황을 더한 미샤의 비책이 담겨 있다는 것이 에이블씨엔씨의 설명이다. 미샤는 한방 화장품의 이미지를 극대화하려고 최지윤 한국화 화가와 컬래버레이션으로 화장품 케이스에도 고급스러운 한국의 미를 담는 등 공을 들였다.
미샤는 초공진 외에도 '초보양' '금설' '예현' 등 한방 화장품 라인을 갖고 있다. 이 밖에도 강동경희대학교 공동 연구개발과 상호 협약을 맺고 병의원 등에서 판매하는 한방 뷰티 브랜드 '유비안'도 입소문을 타는 중이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아직까지 한방 라인이 시장에서 큰 파이를 차지한다고 말하기에는 조금 부족한 부분이 있는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그러나 최근 후가 안팎에서 유례없는 성과를 내면서 K뷰티 업계가 (제품 론칭을 하는 등) 고무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0.001%만 함유돼도 '한방 화장품'…효과 있을까?
K뷰티 업계의 한방 열풍은 사실상 중국 시장 때문이라는 분석이 있다.
글로벌 시장조사 기관 유로모니터에 따르면 중국 한방 화장품의 잠재 시장 규모는 200억 위안(약 3조4000억원)에 달한다. 연평균 10~20%씩 성장할 것으로 전망되면서 블루오션으로 떠올랐다. 전문가들은 동양의 약초인 한약재와 천연 원료 성분이 중국 소비자에게 친숙하면서도 효능이 좋은 화장품으로 인식된다고 본다.
권력자나 톱 레벨의 탤런드가 실제 사용한다는 점도 중국인들의 지갑을 열게 만든다. LG생건의 후는 2014년. 시진핀 중국 국가주석 부인 펑리위안 여사가 실제 구입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주목받았다. 펑리위안 여사는 중국에서 '펑마마(펑리위안 엄마)'라는 애칭으로 불리며 '국민 엄마'로 높은 인기를 누린다. 패션 외교를 잘 펼치는 퍼스트레이디로 알려진 만큼 중국 여성들은 펑리위안 여사의 패션·뷰티 용품에도 관심이 많다.
한방 화장품 업계 1위 LG생건의 후의 2조원 매출 역시 사실상 중국의 덕이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후는 지난해 중국 매출이 전년 대비 197% 증가했다. 2014년에 89개였던 매장이 지난해 124개로 40% 늘었고, 매출은 3배나 증가했다. 동일 매장에서 '후'와 '오휘'를 함께 판매하던 전략을 과감히 접고 럭셔리 한방 라인 후에 집중한 결과다.
중국 현지 매출이 높아질수록 후 매출도 높아지는 구조다.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후폭풍'과 한중 무역 분쟁에 따른 내수 침체 속에서도 후의 중국 판매는 고공 행진이었다.
설화수 역시 지난해 중국 현지 매출이 2배 안팎 증가했다. 매장 수는 2014년 52개에서 73개로 40% 늘었다. 모두 핵심 상권에 위치한 최고급 백화점 매장이다. 설화수가 중국에 진출한 지 불과 5년이 안 됐다는 점을 감안하면 무서운 성장세다.
LG생건의 한 관계자는 "후가 연 매출 2조원을 이끈 데는, 중국 현지에서 매출 및 국내 면세점·백화점 매출이 한몫했다"고 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후발 주자들도 중국에 목을 맨다.
신세계 측은 "연작은 기획 단계에서 화장품 시장 내에 빠르게 성장하고, 추가 성장 잠재력도 높은 한방 화장품에 주목했다"고 말했다. 이어 "럭셔리 한방 화장품 시장은 중저가 브랜드의 몰락, 중국 관광객 감소 등 국내외 악재 속에서도 성장했다. 현재 최고 전성기를 맞고 있다. 앞으로도 높은 성장 가능성이 보이는 분야"라고 덧붙였다.
그렇다면 날개 돋힌 듯 팔린다는 한방 화장품은 실제로 효과가 있을까?
화장품 업계는 한방 성분의 효능이 실제 뷰티에도 긍정적이라고 보고 있었다. 에이블씨엔씨 관계자는 "스킨케어 효과는 이미 임상 실험을 통해 증명됐다. 실제 표기된 한방 성분 역시 모두 포함돼 있다"고 설명했다.
한방 화장품 개발에 참여한 국내 한방병원의 한 관계자는 "한방의 효능은 동의보감 등을 통해 수백 년 전부터 전해 오던 것"이라면서 "현재는 화학물질에 대한 거부감이 생기면서 천연 약재를 통해 피부를 관리하는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어 "연구 개발이 활발한 것은 효능이 있다는 것이다. 소비자 체험으로 입증된 것이 아니겠는가"라고 반문했다.
그러나 한방 화장품에 지나치게 큰 기대를 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도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처(이하 식약처)의 한방 화장품 표시, 광고 가이드라인에는 '동의보감' '본초강목' '향약집성방' 등 한약서에 나온 성분을 합산해 화장품 내용량 100g 중 중량이 1mg 이상이라고 명시돼 있다. 한약서에 나온 성분을 0.001% 이상만 사용해도 한방 화장품이라 이름 붙이고 광고할 수 있다는 뜻이다.
한 뷰티 브랜드의 관계자는 "한때 알로에·쌀 등 특정 성분이 유행했다. 한방도 크게 보면 뷰티계의 유행이자 흐름"이라며 "최근 화장품 성분 배합·마케팅 방법·컨셉트가 중요한 시대가 됐다. 나에게 잘 맞는 화장품을 선택하는 것이 중요하지, 한방 유행에 따를 필요는 없다고 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