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단한 게딱지에 남은 내장에 밥을 넣고 참기름 두 방울을 떨어뜨려 비벼 먹는 별미를 모르는 이는 없을 것이다. 이 맛을 제대로 즐길 수 있는 철이 왔다. 보통 11월부터 이듬해 5월까지 대게가 제철이라지만, 2월의 대게는 살이 통통하게 올라 가장 먹기가 좋다.
울진은 대게가 잡히는 곳 중에서도 으뜸이다. 동국여지승람과 대동지지를 보면, 고려 시대부터 대게가 울진의 특산물로 자리 잡았다고 전해진다. 내달 28일 대게 축제를 앞두고 대게가 가장 많이 잡히는 고장 ‘울진’에 다녀왔다. 대게부터 곰치국까지…겨울 별미를 즐기다
울진 후포항에는 매일 아침 게들이 바닥에 눕는다. 오전 8시에는 먼저 대게가, 9시30분에는 붉은 대게가 위판장 바닥에 깔린다. 익숙한 손놀림으로 크기에 따라 분류해 놓으면 순식간에 중매인과 구경꾼들이 경매사를 둘러싼다.
경매사는 가격 공개에 예민해하며, 중매인들이 내미는 나무판에 적힌 입찰 가격을 몰래 확인하고 최고낙찰가를 부른다. 경매가 끝난 게들은 손수레에 실려 가고, 대기했던 게들이 다시 어판장에 깔리기를 반복한다.
대게는 게가 크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 아니다. 몸통에서 뻗어 나온 8개의 다리 마디가 마른 대나무를 닮아 대게로 불린다. 홍게라 불리는 대게의 이웃사촌의 진짜 이름은 ‘붉은 대게’다. 생김새는 대게와 비슷하지만 전체적으로 붉은 빛이 강하다.
둘의 차이를 하나 더 꼽자면 맛이다. 심해에서 잡히는 붉은 대게는 껍질이 단단하고 짠맛이 강하다. 반면 대게는 단맛이 나 더욱 사랑받는다고 했다.
대게는 껍질만 빼고 모두 먹을 수 있다. 찜통에 10~15분 정도 쪄 낸 대게 다리를 부러뜨려 당기면 하얀 속살이 나온다. 그저 이렇게 쪄서 먹는 대게가 가장 맛있게 먹는 방법이다.
대게를 먹으려고 찾은 식당에서 가장 많이 보이는 글자는 ‘시가’였다. 하지만 제철에 대게 가격이 조금 저렴하다든지, 대게 축제에서 더 싸게 즐길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대게는 그날 경매에서 정해지는 양에 따라 제값이 정해져 많이 잡히면 가격이 떨어지고 반대면 가격이 올라갈 뿐이다.
지난 28일 후포항 위판장에서 팔린 대게의 가격은 1만2000~1만8000원. 이렇게 판매된 대게는 식당에서 2만~3만원대에 팔렸다.
저녁 식사로 대게와 술 한잔 했다면, 다음 날 해장국으로 ‘곰치국’이 별미일 것이다. 예부터 곰치국은 한겨울 매서운 바닷바람을 맞으며 조업에 나선 뱃사람들에게 든든한 한 끼자 속을 풀어 주는 해장국이었다.
칼칼한 김치를 송송 썰어 넣고 곰치를 텀벙텀벙 잘라 끓여 내는 곰치국은 어색할지도 모르는 비주얼을 내놓을지 모른다. 미끄덩거리는 식감이 유난히 신경 쓰일 수도 있다.
곰치는 너무 오래 익히면 살점이 부서지고 맛이 없어지기 때문에 살짝 데친다는 기분으로 5분 정도 호로록 끓인다. 주문과 동시에 끓여 내는데, 짧은 순간에 맛을 잡아내는 것이 관건이란다. 곰치는 보통 붉은 대게를 잡는 배에서 부산물로 잡히는 어종이라 게통발 어선이 많은 울진에서 많이 잡힌다.
곰치는 동해안에서 많이 잡히는 어종으로 ‘꼼치’가 표준어지만, 곰치·물텀벙·물곰 등 지역별로 부르는 이름이 다르다. 불과 30년 전만 해도 못생긴 물고기라고 버림받았는데, 이제는 맛있다는 소문이 나면서 귀하신 몸이 됐다고 한다. 100% 자연산인 데다 최근 생산량이 줄어든 것도 이유다.
자연 용출 ‘덕구온천’서 쉬어 가기
울진에는 세 가지 ‘욕’이 있는데, 첫째가 ‘해수욕’ 둘째가 ‘삼림욕’이고 마지막이 ‘온천욕’이다. 응봉산을 끼고 자리 잡은 ‘덕구온천’에서는 이 중 두 가지 욕을 한 번에 체험할 수 있으니 일석이조다.
응봉산은 덕구온천의 물이 나오는 곳이다. 원탕까지 이어지는 4㎞의 트레킹 코스는 험하지 않아 가벼운 등산로로 제격이다. 가는 내내 보이는 덕구계곡은 눈을 즐겁게 하고, 얼은 계곡 아래로 흐르는 물소리는 귀를 즐겁게 한다. 원탕까지 가는 길은 금강산 구룡폭포 가는 길의 축소판이라고 할 정도로 절경이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교량 12개의 축소형도 덕구계곡의 명물이다. 금문교·서강대교·노르망디교·하버교·청운교 등을 하나씩 지나면서 형제폭포·옥류대·용소폭포 등 절경을 감상하다 보면 덕구온천의 원탕에 다다른다. 원탕 아래 설치된 족탕에서는 발의 피로를 풀 수 있다.
이 원탕에서 송수관을 타고 아래로 내려오면 덕구온천이다. 온천은 약 600년 전 고려 말기에 활과 창에 명수였던 전모라는 사람이 20여 명의 사냥꾼들과 함께 멧돼지를 좇던 중, 상처를 입고 도망가던 멧돼지가 어느 계곡 사이에서 몸을 씻더니 쏜살같이 달아나기에, 이를 이상하게 여긴 전씨 등 사냥꾼들이 발견했다는 설이 있다. 그 후 울진군 북면 덕구리 인근 주민들이 예로부터 손으로 돌을 쌓아 온천탕을 만들고 통나무로 집을 지어 관리한 것이 지금의 덕구계곡 노천 온천탕의 시작이라고 한다.
덕구온천은 인위적으로 땅을 파서 모터로 뽑아낸 것이 아니라 자연 용출 온천으로, 하루에 2000여 톤이 솟아 나온다. 덕구온천의 원탕은 온천수가 풍부하게 공급된다. 이는 이미 빠져나간 온천수를 정화해 다시 사용할 필요가 없을 만큼 넉넉한 양이다.
덕구온천은 뿜어져 나올 때부터 41.8도 온도를 유지한다. 이는 온천욕에 딱 알맞은 온도로, 오히려 덕구온천에서는 이 물을 식혀 온탕을 만들어 두고 있었다.
온천수 안에는 중탄산나트륨·칼륨·칼슘·철·탄산 등 성분이 많이 함유돼 있어 신경통, 류머티즘, 근육통, 피부 질환 등에 탁월한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