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강호를 상대한 다섯 경기는 전패. 최종 순위는 22위. 초라한 성적이다. 한국 남자 핸드볼대표팀의 현주소다.
유럽과 비유럽 국가 간 전력 차이는 잡을 수 없을 정도로 크게 벌어진 것 같다. 지난달에 폐막한 2019 세계남자핸드볼선수권대회에서 재확인됐다. 아시아 4개국(남북 단일팀·일본·카타르·사우디아라비아) 가운데 카타르만 상위 순위 결정전에 진출했다. 카타르는 유럽과 아프리카 출신 귀화 선수를 보유했다. 세계 8강권 전력으로 인정받고 있다.
한국은 그동안 아시아 맹주를 넘어 세계 10위권을 바라봤다. 1988년에 개최된 서울올림픽에서 은메달을 획득했고, 1990년대 초반부터 2000년대 말까지 다수의 선수들이 유럽 무대에 진출했다. 강재원·심재홍·윤경신·조치효·최현호·황보성일·한경태·백원철·이재우 등 많은 선수들이 큰 무대에서 경쟁력을 갖췄다. 그들이 떠난 자리는 박중규·박찬영·정의경·윤시열·정수영 등 젊은 선수들이 꿰찼다. 국내 리그의 발전도 도모할 수 있었다.
자연스럽게 대표팀의 세대교체로 이어졌다. 신구 조화도 돋보였다. 2008 베이징올림픽 8위, 2009 크로아티아 세계선수권대회 12위, 2011 스웨덴 세계선수권대회 13위를 차지했다. 세계 무대에서도 중위권의 성적을 유지했다. 물론 아시아 무대에선 적수가 없었다.
그러나 2012년을 기점으로 중흥기가 지난 모양새다. 급격하게 무너졌다. 2012 런던올림픽 예선에서 전패를 당했고, 2013년에 열린 스페인 세계선수권대회는 21위에 그쳤다. 대대적인 세대교체를 선언한 뒤 출전한 2014 바레인 아시아선수권대회에서는 5위에 머물렀다. 세계선수권 출전도 불발됐다. 이후에도 아시아 대회에서 부진하며 세계선수권대회와 올림픽 출전이 좌절됐다.
2019년 독일 대회는 6년 만에 출전하는 세계선수권대회다. 지난해 수원에서 열린 아시아선수권대회에서는 3위에 오르며 진출권을 획득했다. 그러나 온전한 최상의 전력 구축은 하지 못했다. 부상이나 소속팀 사정으로 기량과 경험을 두루 갖춘 선수를 선발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세계선수권대회에 출전한 경험이 있는 선수는 정수영과 나승도, 2명뿐이었다.
그래서 신예 선수를 대거 발탁할 수밖에 없었다. 사상 처음으로 남북 단일팀을 구성하며 의미 있는 첫발을 내딛기도 했지만, 전력 상승을 기대하기는 어려웠다. 이런 상황에서 프랑스(세계 랭킹 5위) 러시아(4위) 독일(1위) 세르비아(6위) 브라질(27위)과 함께 최악의 조에 편성됐다. 1승조차 기대하기 어려웠고, 실제로 그랬다.
기록으로 한국 남자 핸드볼과 세계 수준 차이를 짚어 보자.
일단 공격이 통하지 않았다. 단일팀은 일곱 경기에서 총 177득점을 기록했다. 참가국 가운데 19위에 해당하는 성적이다. 슈팅 성공률(56%)은 20위. 일곱 경기를 기준으로 최다 득점을 기록한 국가는 노르웨이다. 339개 슈팅 가운데 237득점을 했다. 성공률은 80%다. 단일팀과 무려 60골 차이가 난다.
단일팀의 평균 신장은 180cm대 초반이다. 그러나 유럽 국가 선수들은 대체로 190cm가 넘는다. 코트 안에서 신장과 힘의 차이를 극복하기가 어려웠다. 한국의 강점인 1 대 1 돌파와 속공 플레이가 많이 나오지 않은 이유다. 과거보다 체격 조건은 조금 나아졌지만 기동력이 비례해 상승하지 않은 점도 영향을 미쳤다. 오히려 힘을 앞세운 유럽 선수들의 돌파가 더 위력적으로 전해졌다. 과거에 유럽 선수들은 체격 조건이 좋고 파워가 강했지만 기동력은 떨어졌다. 그러나 점차 속도전까지 앞서고 있다.
수문장의 대응력도 아쉬웠다. 단일팀은 총 291개의 슈팅을 허용했고, 그 가운데 75개(15위)를 막아 냈다. 세이브율은 26%. 세이브 1위 스웨덴은 총 265개의 슈팅 가운데 101개(세이브율 38%)를 막아 냈다. 골키퍼도 유럽 선수가 높은 타점에서 던지는 슈팅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 수비수 머리 위에서 던지는 강력하고 높은 타점의 슈팅을 이전에 막아 본 경험이 적었던 것.
공격수의 슈팅 기술과 속도는 점차 좋아진다. 그래서 유럽은 주로 맞춤형 방어 시스템을 가동한다. 골키퍼와 수비수가 슈팅 방어를 위해 사전에 약속된 동작으로 각자 다른 코스를 막는 방식이다. 단일팀은 힘과 높이를 앞세운 상대에 체계적인 수비를 하지 못했다.
순위와 기록이 초라하다. 그러나 희망은 있었다. 국내 리그에서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던 강전구가 국제 대회에서 빛났다. 소속팀 두산에서는 국내 최고 선수인 정의경이 버티고 있어 출전 시간이 적었던 선수다. 그러나 이번 대회를 통해 득점력을 증명했다. 그는 "지금까지 국내에서 못 던진 슈팅을 세계 대회에서 다 던져 보고 왔다. 국내에서도 멋진 슈팅을 기대해 달라"며 자신감을 전하기도 했다. 잠재력이 뛰어난 선수가 좋은 계기를 맞이했다. 신인 박광순과 대학생 강탄이 의미 있는 경험을 쌓은 것도 주목된다.
여자 국가대표팀 현직 전력분석원. 2012년 런던올림픽,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등 다수 국제대회에서 대표팀의 조력자로 나섰다.
숫자는 스포츠를 모두 대변하지 않는다. 그러나 작은 변화를 이끈다. 팬에게 즐거움도 선사한다. 팟캐스트를 진행하며 핸드볼 전도사로도 나서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