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 한 개로 승부가 갈릴 수 있는 상황에서도 평정심을 유지한다.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표정은 오히려 상대 타자에게 위압감을 준다. 안 그래도 묵직한 공은 한층 위력이 더해진다. 무엇보다 진짜 석상처럼 한결같다. 한국 나이로 38세. 그보다 후배가 한 팀의 코치가 되는 시점에도 이름값에 흠집을 내지 않을 만큼 좋은 기량을 유지하고 있다. 메이저리그에서 뛴 지난 3년간도 마찬가지다.
지난 11일 kt의 미국 애리조나 전지훈련지에서 훈련 중인 오승환을 만나 대화를 나눴다. 나이를 숫자로 만든 이유를 가늠할 수 있었다. 그는 최고의 자리에서도 끊임없이 변화를 시도한다. 후배에게도 배우려는 자세를 갖고 있었다. 무엇보다 자신의 실력을 믿는다.
일단 몸 관리. 오승환은 KBO 리그에서 뛰던 시절부터 독보적 구위를 가진 투수였다. 30대 중반에 메이저리그에 진출했지만 리그 평균을 웃도는 분당 투구 회전수를 기록하기도 했다. 우람한 상체와 특출한 악력, 힘을 지탱하고 투구로 싣는 하체를 지녔다.
그저 웨이트트레이닝만 많이 하는 것이 아니다. 오승환은 매년 운동 방법에 변화를 준다고 했다. "(바벨) 증량과 강도 강화만 추구하지는 않는다. 내 몸으로 여러 가지 시도를 하는 편이다"라고 힘주어 말했다.
개인 트레이너와 6년째 호흡을 맞추고 있다. "그를 전적으로 믿는다"며 신뢰를 보냈다. 트레이너가 다양한 방식의 운동 방법을 소개하면 오승환은 일단 주저하지 않고 습득하려 한다. 먼저 제안할 때도 있다. 상체와 하체 강화를 번갈아 시도하고 몸집을 키웠다가 다시 줄이기도 한다. 메이저리그에서 만난 정상급 선수들의 운동법을 보면서 귀감을 얻는다고 했다.
몸에 맞지 않는 운동을 하다가 부작용이 생길 수도 있다. 체력이 뒷받침되지 않은 채 벌크업을 하다가 시즌 막판에 부침을 겪은 선수도 많다. 그러나 오승환은 단호하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내게 도움이 되는 부분만 흡수하고, 잘 안 된다는 생각이 들면 다시 이전 방식으로 돌아가면 된다"고 덧붙였다.
베테랑 선수 중 다수는 자신만의 루틴이 있다. 경험이 많을수록 '자신의 것'을 고수하는 편이다. 오승환은 "안 해 본 운동을 찾아내 시도하는 게 내 루틴일 수도 있지 않나"라며 웃어 보였다. 변화는 누군가에겐 해결해야 할 숙제로 여겨진다. 그러나 그에겐 그저 일상이다. 매년 도전하고 있다고 봐도 된다.
오승환이 건재한 두 번째 이유는 유연한 사고다. 배움을 얻는 데 스스로 장벽을 만들지 않는다. 그는 지난해에도 KBO 리그 후배들과 함께 훈련했다. 올해도 마찬가지다. kt 마무리 투수 김재윤과는 지난 열흘 동안 단짝이었다. 동행하는 이유가 있다. 그는 "후배들과 같이 운동하면 좋다. 때로는 (운동이) 힘들 때도 있지만 젊은 선수들을 보면서 다시 힘을 낸다. 긍정적인 영향이 있다. 나도 배우는 게 많다"고 설명했다.
오승환은 KBO 리그 개인 통산 최다 세이브(277개) 기록 보유자다. 한국 야구 역사에 첫 번째로 꼽히는 마무리 투수기도 하다. 그런 그가 고졸 신인 선수들에게 배우려 한다. "나이와 연차를 떠나 모두 야구선수다. 대화하다 보면 그동안 생각하지 못한 부문을 돌아보게 된다. 미처 몰랐던 부분도 있다. 그리고 내게 맞게 응용할 수 있다. 정말 도움이 된다"며 말이다.
메이저리그에서도 동료 투수뿐 아니라 포수·리그마다 다른 성향을 두루 존중한다. 지난해 급격하게 늘어난 하이 패스트볼 구사에 대해서도 "처음에는 긴가민가했지만 타자의 배트가 끌려 나오는 것을 보고 느낀 게 있다"고 했다. 체력·패기가 돋보이는 신인급 선수를 보면서 자신을 다그친다. 대상·상황을 가리지 않고 귀를 열어 둔다. 그러고는 자신에게 적합한 방법으로 발전시킨다. 유연한 탐구 정신은 그가 최고 자리를 지켜 온 이유다.
마지막으로 자신감이 있다. 오승환은 자신을 향한 의구심이 불쾌하다. "(우려의 시선에) 내가 '괜찮다'고 답하는 것 자체가 문제다. 프로 선수에게 중요한 건 나이가 아니라 실력이다. 왜 나이가 판단 기준이 되는지 모르겠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다른 스포츠와 다른 분야에 적용해 보면 얘기가 쉽다. 일반 회사에서 베테랑이 홀대받나. 아닐 것이다. 실력이 부족하다면 안 되겠지만 덮어 두고 나이로 먼저 평가하는 이들에겐 동의할 수 없다"고 단호히 말했다. 자신을 비롯해 과거보다 베테랑이 홀대받는 추세에 일침을 가한 것. 다가올 시즌도 실력으로 건재함을 증명할 생각이다.
오승환은 12일 미국 애리조나 스콧데일로 이동한다. 소속팀 스프링캠프에 합류한다. 13일에는 메디컬테스트, 14일부터 공식 훈련에 들어간다. 그는 "특정 기록에 연연해하지 않는다. 일단 시즌 내내 메이저리그에서 뛰면서 좋은 모습을 보여 주겠다"는 각오를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