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14일, 신치용 신임 선수촌장 주재 출입기자 간담회를 하기 위해 찾은 충북 진천선수촌에는 500일도 남지 않은 도쿄올림픽보다 변화를 향한 작은 움직임들이 더 먼저 관찰됐다. 엘리트 체육의 병폐 '합숙문화' 지적의 중심에 선 진천선수촌의 분위기가 한껏 위축된 탓이다. 신치용 선수촌장은 "지도자들과 선수들이 많이 불안해한다. 합숙 폐지 문제로 전체적으로 위축된 부분이 있다"고 설명했다. 물론 위축된 분위기를 만든 것은 체육인들 스스로다. 그 사실을 잘 알기에 신 선수촌장은 "각고의 노력으로 신뢰받는, 잃어버린 체육인의 자존심을 찾는 선수촌이 되겠다"는 포부를 함께 전했다.
한국 엘리트 체육의 요람, 국가대표팀 선수촌이 태릉에서 진천으로 터전을 옮긴 지 이제 겨우 1년 반. 진천선수촌은 그사이에 변곡점을 맞았다. 2018년 한 해 동안 평창겨울올림픽과 자카르타-팔렘방아시안게임을 무사히 마무리하며 새로 개촌한 충북 진천선수촌도 궤도에 오르는가 싶더니, 2019년에 터진 '조재범 사건'을 기점으로 엘리트 체육의 '합숙문화'가 도마 위에 올라 위기를 맞았다. 국제 대회 성적을 우선시하는 엘리트 체육 문화의 그늘하에 지도자들이 선수들을 상대로 각종 폭력을 휘두른 것은 물론, 성폭력까지 저지른 사실이 알려지면서 '합숙 문화'가 병폐의 근원으로 지적받았기 때문이다.
대한체육회 조직 개선·소년체전 폐지 등 몇 가지 사안과 함께 합숙문화 철폐가 화두에 오르면서 진천선수촌의 존립 문제도 큰 관심을 모았다. 대한체육회는 진천선수촌 운영 방식과 선수 관리 시스템 등을 철저히 손봐 다시는 불미스러운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한다는 입장을 내세웠다. 지난달 11일 열린 진천선수촌 개촌식에 모인 체육인들은 무거운 분위기 속에서 자정을 결의하고 반성과 변화를 약속했다.
신치용 국가대표 선수촌장. 연합뉴스 제공
개촌식 이후 한 달여, 진천선수촌은 여전히 변화를 향해 나아가는 중이다. 짧은 시간인 만큼 눈에 띄게 큰 변화를 찾아보긴 어려워도 구석구석 조금씩 바뀌어 가려는 노력의 흔적이 엿보였다. 체육계 비위 근절 대책의 한 방편으로 진천선수촌 화랑관 1층에 선수인권상담실이 마련됐고, 정성숙 부촌장을 중심으로 여성 지도자 및 여성 선수들이 월 1회 이상 간담회를 열어 의견을 나누고 있다. 신 선수촌장은 "일단 많이 만나서 소통해야 답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
이기흥 대한체육회장은 "성적 지상주의와 엘리트 체육 위주의 육성 방식을 전면 재검토하고, 개선안을 마련하겠다"고 발언한 바 있지만, 당장 눈앞으로 다가온 도쿄올림픽을 앞두고 근본적인 대책 마련은 이뤄지지 않은 상황이다. 명확하게 해결 방안이 제시되지 않은 상황에서 선수들은 그저 구슬땀을 흘리며 훈련에 매진 중이다. 아직 본격적인 올림픽 준비 태세라곤 할 수 없지만 올해는 세계선수권 등 올림픽 출전권이 걸린 국제 대회가 많아 선수촌 내 각 훈련장에선 선수들의 기합 소리가 쉴 새 없이 들려 왔다.
3년 전 리우 올림픽 때 '노 메달'의 아픔을 겪었던 탁구 장우진은 "2020년에 한국 탁구의 역사를 바꿀 수 있는 금메달을 따도록 노력하겠다"고 의욕을 드러냈다. 3년 전 리우 올림픽에서 사브르 남자 단체전이 제외되는 바람에 이번 도쿄올림픽까지 긴 시간을 기다린 펜싱 구본길은 "단체전 금메달은 물론, 이제껏 개인전 메달이 없었기에 반드시 메달을 목에 걸겠다"고 다부진 각오를 전했다. 강도 높은 훈련으로 땀범벅이 돼 나타난 레슬링 류한수도 "올림픽 메달만 없다. 많은 국민의 응원에 보답하지 못해 송구한 마음"이라며 "리우에서 겪은 실패를 도쿄에서 금메달로 보답하겠다"고 이를 악물었다.
14일 진천 국가대표 선수촌에서 훈련을 하고 있는 레슬링 국가대표 선수단. 연합뉴스 제공
다가오는 도쿄올림픽에서 또 하나의 관심사는 남북 단일팀이다. 현재 여자 농구와 여자 하키, 유도, 조정 등 4개 종목에서 남북 단일팀이 구성될 예정이다. 단일팀 출전이 확정된 여자 하키의 임계숙 감독은 "5월부터 북한 선수들이 합류할 예정이다. 비인기 종목인 하키가 단일팀으로 큰 관심을 얻어 반드시 올림픽 출전권을 따내겠다"고 각오를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