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여름가을겨울 김종진(57)에게 故 전태관은 같이 음악을 한 뮤지션 그 이상의 의미였다. 인생의 길잡이이자 가족 같았던 친구를 먼저 떠나보낸지 두 달. 김종진은 아직도 가끔 '이게 꿈을 꾼건가'라는 생각이 든다고 한다. 봄여름가을 멤버로 함께한 세월이 30년. 그 전에 알고 지낸 시간까지 더 하면 36년을 함께한 친구를 하늘나라에 먼저 보냈으니 허전함, 상실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힘든 시간 가요계 많은 선후배들이 큰 힘이 됐다. 전태관이 옆에 있을 때 준비했던 봄여름가을겨울 데뷔 30주년 기념 30회 소극장 공연을 결국 혼자서 이끌어가게 됐지만 지원사격 해준 후배들이 있었기에 또 하나의 레전드 공연으로 마무리했다. 공연장을 찾은 배철수는 "내가 본 공연 중 손에 꼽히는 레전드 공연"이라며 엄치손가락을 치켜세웠다. "세상이 많이 삭막해졌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후배들 동료들이 너나 할 거 없이 앨범이나 공연에 참여하고 마음 써주는 걸 보면서 세상이 바뀐 게 아니고 내가 차갑게 변했었다는 걸 알았죠."
김종진은 4월 아내 이승신과 산티아고 순례길을 간다. 한 달 여정으로 떠나는 여행이다. "태관은 영원히 지켜볼거라 믿고, 항상 곁에 있어주는거라 믿어요. 그런데 마음 정리가 참 쉽지 않더라고요. 문득 울컥 하기도 하고요. 공연하고 또 바쁘게 생활하면 마음 정리가 잘 될 줄 알았는데 너무 번잡한 생활 속에서 잘 정리가 안 되더라고요. 계속 걸으면서 마음 정리를 좀 하려해요."
1편에 이어...
-33회 골든디스크어워즈 심사위원 특별상을 수상했는데 어떤 의미였나요. "정말 소중한 상이죠. 1992년에 골든디스크에서 상을 받았어요. 그 이후로 상을 받은 적이 없었고, 가장 큰 상이었고, 권위있는 상이었죠. 언더그라운드 뮤지션이 10대 가수상 같은 골든디스크에서 본상을 받는 건 큰 의미였거든요. 30년이 지나서 그 자리에서 특별상을 받고 좋았죠. 무대에 올라가서 생각이 주마등처럼 흘러가더라고요."
-골든디스크어워즈에서 봄여름가을겨울 특별 무대를 준비하다가 전태관씨가 세상을 떠나면서 공연이 무산됐는데 후배 가수들이 추모 무대를 꾸몄죠. "산다는 게 우여곡절이 있고 태풍 맞은 배처럼 내일 일도 모르는 게 사는거구나라고 느낄 수 있었던 시기였죠. 사실 그 전(전태관이 세상을 떠나기 전)부터 봄여름가을겨울 무대를 만들려고 골든디스크어워즈 제작팀이랑 미팅도 따로 하고 후배 가수랑 컬래버레이션 하려고 편곡하고 선곡하는 중이었는데 갑자기 태관이 세상을 떠나면서 무대를 할 자신이 없더라고요. 그래서 결국은 특별무대를 포기하게 됐는데 제작팀에서 흔쾌히 이해를 해주셨죠. 그런건 참 따뜻하다고 생각해요. 큰 무대를 며칠 안 남겨두고 사실 약속을 지키지 못 하게 된건데 마음을 이해해주시고 도와주셔서 감사했어요. 그리고 후배 가수들이 그런 제 마음을 알고 (봄여름가을겨울 헌정) 무대를 해줘서 고마웠죠. 사실 시간도 그렇고 준비하면서 힘든게 많을텐데 그걸 뒤로하고 무대를 해준거잖아요. 함춘호씨, 가수 정인씨도 그렇고 워너원의 재환 군, 대휘 군 모두에게 너무 고맙죠."
-봄여름가을겨울 팀이 만들어진 건 운명과도 같았나요. "지금 돌아보면 운명적이었던 것 같아요. 지나고 나면 알겠더라고요. 말로는 설명이 불가능한 그런 운명같은 만남이었던 것 같아요."
-꾸준히 대중들에게 음악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어요. "10년 주기로 전설적인 뮤지션들이 사라지고 새로운 뮤지션이 탄생하고 그랬다고 생각해요. 저희도 10년 만에 사라질 수 있는 그런 시기가 있었고, 그게 자연스러운거라고 생각했는데 10년 쯤 됐을 때 '브라보 마이 라이프'라는 곡이 나왔고 좋은 반응을 얻었죠."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해왔어요. "살면서 삶의 철학이 바뀌면서 자연스럽게 좋아하는 음악도 바뀌더라고요. 그래서 자연스럽게 다양한 장르를 하게 됐죠. 음악을 대하는 자세도 많이 달라졌어요. 예전에는 음악할 때 내가 중심이었고,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대중들에게 들려줘야지라는 생각이 강했어요. 그런데 이제는 그게 아니에요. 내가 또 내 의견이 거의 사라지는 경험을 하고 있죠. 듣는 사람들이 좋아할 음악을 하려고 하죠."
-전태관 씨와 같이 했던 공연 중 최고의 공연은 무엇이었나요. "사실 봄여름가을겨울 무대를 할 때 둘 다 컨디션이 최고였던 적은 없었어요. 항상 컨디션은 최악의 상태에서 올라갔고 우리의 부족함을 알아서 견디질 못 했어요. 우리가 추구하는 음악 세상이 너무 완벽주의였거든요. 그런데 우리가 한 모든 공연은 단언컨대 한국 역사의 최고의 공연이었어요. 만약에 컨디션까지 최고였다면 더 좋았겠죠. 제일 기억에 남는 건 태관과 했던 첫 무대예요. 한영애씨 콘서트에 게스트로 나가서 달랑 두 곡 무대를 했던 게 기억에 남아요. 88년도 겨울에 있었던 공연인데 게스트로 나가서 '항상 기뻐하는 사람들'과 '사람들은 모두 변하나봐'를 불렀는데 그 무대는 정말 완벽했죠. 연습도 많이 했고 하고 싶은대로 마음껏 했던 무대였어요. 물론 두 번째 무대할 때 노래를 망치긴 했어요. 관객들이 우리 노래를 따라부르는 걸 보고 눈물이 났거든요. 항상 완벽에 도달하지 못 한 건 나 때문이었던 것 같아요. 멤버들한테 '완벽하자'를 외치고 채찍질하는 역할인데 실제로 채찍질하느라고 내 연습을 못 해요. 그리고 무대 올라가서 음이탈을 하는 건 나였어요."
-생전 전태관 씨는 어떤 사람이었나요.
"세상을 보는 눈이 넓었어요. 인간미가 굉장히 넘쳐 흘렀죠. 한 장르에 거의 최고의 자리에 오른 사람을 구루(GURU)라고 하는데 그 친구는 내게 구루였어요. 사회를 이해하는 안목이 구루 급이었죠. 이미 30년 전부터 대인관계법을 잘 알고 있었어요. 또 내가 아무리 언성을 높여도 그냥 묵묵히 들어줬고 제지하지 않았어요. 이 친구는 정말 빼어난 사람이다라는 생각이 들어요. 옷도 기품있게 입고 항상 예의를 갖췄어요.근데 지금 생각해보면 어느새 제가 전태관 화 된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