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캐피탈 허수봉(21)이 코트를 돌며 몇 번이나 두 팔을 번쩍 들어올렸다. 외국인 선수 크리스티안 파다르의 공백을 완벽하게 메운 이는 바로 '프로 3년차' 그였다.
현대캐피탈은 18일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도드람 2018~2019 V리그 우리카드와의 플레이오프 2차전에서 세트스코어 3-0(32-30·25-22·25-22)로 이겼다. 17일 PO 1차전에서 3-2로 승리한 현대캐피탈은 2연승으로 챔피언결정전에 진출한다. 오는 22일부터 대한항공과 우승 트로피를 놓고 5전3선승제의 챔피언결정전을 갖는다.
최태웅 감독은 지휘봉을 잡은 2015~2016시즌부터 네 시즌 연속 현대캐피탈의 챔프전 진출을 이끌었다.
현대캐피탈은 이날 경기 전 안타까운 부상 소식을 전했다. 외국인 선수 크리스티안 파다르가 오전 훈련을 마치고 허리 통증을 호소, 결장하게 됐다. 팀 전력의 큰 부분을 차지하는 외국인 선수 없이 맞서야했기에 전력 손실이 클 것으로 예상됐다.
최태웅 감독은 파다르 자리에 프로 3년차 '허수봉 카드'를 꺼냈다. 허수봉은 "경기 직전에 파다르의 부상 소식을 접했다. 경기장에 도착해서 선발 통보를 받았다"며 "코치님이 '미칠 때가 됐다'고 하더라. 겁 없이 뛰었다"고 웃었다. 전광인은 "우리끼리 할 수 있지 않냐"고 파이팅을 불어넣었다.
허수봉은 20점을 올렸다. 전광인과 문성민, 신영석 등 팀 내 대선배들을 제치고 이날 팀 내 최다득점을 기록했다. 더불어 개인 한 경기 최다득점을 포스트시즌(종전 2019년 3월 10일 우리카드전 19점)에서 기록했다. 공격성공률도 62.5%로 높았다. 후위 공격(6개)과 서브에이스(4개) 블로킹(1개) 등 만점 활약을 펼쳤다. 현대캐피탈은 주전 선수 모두 좋은 활약을 펼쳤지만, 그 중에서도 계산이 서지 않았던 허수봉의 활약이 있었기에 이길 수 있었다.
허수봉은 1세트 22-22에서 현대캐피탈이 올린 4득점을 연속 책임졌다. 현대캐피탈은 26-25로 역전했고, 30-30에서 문성민의 퀵오픈과 신영석의 블로킹으로 긴 승부에 마침표를 찍었다. 그는 "1세트 접전 상황에서 (이)승원이 형한테 계속 공을 달라고 했다"며 두뚝한 배짱을 자랑했다.
허수봉은 2세트에서 파다르의 위력적인 무기인 '서브'에서도 강력함을 선보였다. 5-4에서 서브에이스를 기록했다. 이어 6-4에서 다시 한 번 날카로운 서브로 상대 리시브를 흔들었고, 어김없이 아가메즈에게 올라간 공을 최민호가 블로킹했다. 이어 허수봉은 다시 한 번 서브에이스를 꽃았다. 현대캐피탈은 7-4로 앞서며 분위기를 갖고 왔다. 허수봉은 14-9에서 선배들이 어렵게 살린 공을 멋지게 성공시키고 포효했다. 현대캐피탈은 2세트 단 한 번의 리드를 허용하지 않고 갖고 왔다.
그는 3세트 3-2에서 오픈 공격을 성공시킨 뒤 4-2에서 서브 에이스를 또 기록했다. 6-2에서는 이날 네 번째 서브에이스. 우리카드는 범실까지 쏟아지며 점수 차가 2-9까지 뒤졌다. 승부는 일찌감치 갈렸다.
경북사대부고 출신인 허수봉은 2016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남자 고교 선수 최초로 1라운드 지명(대한항공)을 받았던 레프트 유망주였다. 지명 후 나흘 만에 대한항공에서 현대캐피탈로 트레이드 됐다. 이번 시즌에는 신영석이 부상으로 빠진 기간에 '임시 센터'를 맡기도 했다. 그는 "대학 진학 포기를 한 번도 후회한 적 없다"며 "센터보단 레프트와 라이트, 사이드 공격이 더 자신있다"고 강조했다.
최태웅 감독은 "허수봉이 이렇게 빨리 성장할 줄은 전혀 몰랐다"며 "팀에 없어서는 안 될 선수다"고 인정했다.
파다르가 부상으로 갑자기 빠진 상황. 포스트시즌이라는 큰 무대에 익숙하지 않은 포지션에 나섰지만 허수봉은 전혀 주눅들지 않고 마음껏 코트를 누볐다.
3시즌 연속 대한항공과 챔프전에서 맞붙게 된 그는 "우리는 충분히 할 수 있다. 파다르가 부상으로 뛸 수 없다면 국내 선수 간에 똘똘히 뭉쳐 할 수 있다"고 힘주어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