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그맨 김준호·배우 차태현의 내기 골프 논란 이후 입장을 내겠다고 밝힌 KBS 2TV '1박 2일'이 5일째 묵묵부답이다.
16일 'KBS 뉴스9'는 가수 정준영의 카카오톡을 조사하던 중 '1박 2일' 단체 대화방에서 내기 골프 정황이 포착됐다고 보도했다. 특히 이 대화방에는 당시 '1박 2일' PD도 함께 있었다고 전하며, 출연진의 범법 행위를 알고도 방관했다고 비판했다.
성관계 영상을 불법 촬영하고 유포한 혐의를 받는 정준영 때문에 방송 및 제작 중단을 선언한 지 하루 만에 일어난 일이었다. 궁지에 몰린 '1박 2일'은 17일 공식 입장을 내겠다고 밝혔다. 폐지로 가닥이 잡히는 듯했다. 그러나 21일까지 일주일이 다 되도록 결단을 못 내리고 있다.
KBS 내부에서는 이럴 때일수록 신중해야 한다는 기류가 감지되고 있다. 양승동 사장도 임원회의에서 "시청자와 국민 눈높이에 맞게 논의해 달라"고 주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KBS 관계자는 "'1박 2일'에 대해 다각도로 신중하게 검토 중이다"고 밝혔다. 방송 관계자는 "방송 중단을 결정한 만큼 더욱 조심스럽게 접근하려는 것"이라고 전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정준영 사건만 놓고 보면 비난받아야 마땅하다. 하지만 김준호·차태현이 내기 골프로 인해 하차한다고 하자 동정론으로 여론이 급선회했다. 또 12년이나 된 예능을 갑자기 폐지한다는 건 부담스러운 일인 만큼 상황을 지켜보려는 것 같다"고 말했다. '1박 2일'의 존폐에 대한 PD와 방송 관계자 10명의 견해를 들어봤다. 객관성을 위해 현직 KBS PD나 KBS 출신 PD에게는 묻지 않았다. 10명 중 1명을 제외한 모든 사람이 '1박 2일'이 2017년 정준영에게 면죄부를 준 책임은 져야 한다고 봤지만, 폐지에는 반대하는 의견을 내놨다.
폐지에 찬성한 A 방송 관계자는 "마음은 아프지만 이럴 때일수록 단호한 대처가 필요하다고 본다. 출연진의 잘못이 프로그램의 기둥까지 흔들 수 있다는 걸 이번 사태로 보여준다면 업계 사람들이 경각심을 가지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일벌백계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폐지 반대 이유에는 '1박 2일'의 브랜드 가치에 대한 언급이 빠지지 않았다. B PD는 "우리나라의 아름다운 곳을 소개해온 공익적인 가치도 있고 많은 시청자와 12년 동안 함께한 장수 예능이기 때문에 단칼에 없애긴 아까운 콘텐트다"고 밝혔다. C 방송 관계자는 "'1박 2일'과 같은 유산은 쉽게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고 말했다.
"폐지가 답은 아니다"라는 의견도 있었다. D PD는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폐지 의견이 나오는 것 같다. 달라지겠다고 약속한 만큼 더 꼼꼼하고 예민하게 프로그램을 만들어가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물갈이의 필요성엔 모두가 찬성했다. E 방송 관계자는 "재정비 시간을 갖고 새로운 출연진, 제작진과 새출발해야 한다"고 말했다. F PD는 "12년 동안 계속 남자 멤버로만 했으니 이번 기회에 여자 멤버로 해봐도 좋을 것 같다. 만일 새 시즌도 똑같이 남자 6명이라면 시청자 입장에서는 기시감이 느껴질 수 있을 것"이라고 대안을 제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