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주꾸미요, 저 앞 득량만에서 잡은겁니다." "이 한우는 근처 축사에서 기른거죠." "표고버섯은 뒷산에서 나온거예요." 전라남도 장흥군에서 만난 식당 주인들은 하나같이 근처에서 나고 자란 식재료로 음식을 했다고 입을 모았다.
맛집의 제1의 비결은 뭐니 해도 신선한 제철 식재료다. 산에서는 표고버섯, 바다에서는 낙지·키조개·갑오징어, 들에서는 한우가 나오는 장흥군의 음식이 맛있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래서 너도나도 남도로 식도락 여행을 떠나는 것이 아니겠는가. 봄이 오는 길목에 있는 남도 장흥, 입과 눈으로 봄맛을 맛보러 떠나보자.
키조개·표고버섯·한우·갑오징어…지천에 제철 식재료 '맛있는 장흥'
지난 21일 장흥군청에서 만난 정종순 군수는 고향 자랑을 한 보따리 풀어놓았다. 산·들·강·바다가 어우려진 장흥은 농수산물에 축산물까지 풍성하게 난다는 것이다. 특히 그는 "장흥은 표고버섯과 키조개 생산이 전국 1위다. 여기에 한우까지 곁들여 장흥삼합이 탄생했다. 한 번에 바다와 산, 육지의 맛을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정 군수 말처럼 장흥은 자연에서 온갖 농·수·축산물이 나는 천혜의 고장이다. 특히 낙지·키조개·꼬시래기·청태전 등의 생산량이 전국 1위이고, 표고버섯도 전국에서 가장 많이 생산된다. 한우는 4만8000두 가량이 사육되고 있는데, 도축 시 79%가 5개 등급 중 최상위 등급인 1++를 받을 정도로 육질이 뛰어난 것으로 유명하다.
그래서 장흥에 가면 꼭 맛봐야 하는 게 장흥삼합이다. 장흥삼합은 비옥한 득량만 갯벌에서 자란 키조개 관자와 참나무에서 자란 표고버섯, 한우가 어우러진 보양 음식이다. 세 가지 재료를 불판에 구워서 상추에 차례로 올리고 쌈장이나 양념을 곁들여 먹으면 키조개의 부드러움과 표고버섯의 쫄깃함, 한우의 감칠맛을 한 번에 맛볼 수 있다.
구울 때 재료를 한꺼번에 올리지 말고 몇 점씩 구워서 바로바로 먹어야 더 맛있다. 키조개는 빨리 익기 때문에 구울 때 신경써야 한다.
정남진 토요시장에 장흥삼합을 하는 식당이 많다. 일반적으로 소고기는 별도로 구매해야 하고, 음식점에서 삼합 셋팅비를 내야 한다. 한우는 부위별로 가격이 다르고, 키조개와 표고버섯은 1만5000원, 상차림은 2인 기준 7000원 가량이다.
키조개는 장흥의 대표 특산물인 만큼 여러 가지로 먹을 수 있다. 관자를 회로 썰어 먹어도 좋고, 데쳐서 채소와 고추장·식초로 버무려 새콤한 키조개회무침으로 먹을 수 있다.
득량만이 삶의 터전인 어민들은 장흥 키조개의 맛이 '전국 제일'이라고 엄지를 치켜세웠다.
22일 해맞이 명소로도 유명한 소등섬 앞 남포마을에서 만난 김명단(68·여)씨는 때마침 1년에 바닷물이 가장 많이 빠진다는 시기 중 하나인 영등살에 캘 수 있다는 자연산 키조개를 손질하고 있었다. 김 씨는 "청정해역 득량만 갯벌에서 자란 키조개는 관자가 크고 영양이 풍부하다"며 "또 모래가 많은 다른 지역과 달리 육질이 부드럽고 향도 좋다"고 말했다.
김 씨는 또 "요즘 많이 나는 바지락도 다른 지역과 달리 돌밭에서 캐기 때문에 알이 굵고 맛이 달다"고 했다.
바지락은 쫄깃한 바지락 살에 채소, 새콤·매콤한 양념 등을 버무려 회무침으로 먹으면 그만이다. 회무침에 막걸리 한 사발을 곁들이거나 밥에 비벼서 시원한 바지락탕과 함께 먹으면 별미다. 수문해수욕장과 여다지해변에 바지락회무침을 잘 하는 식당이 여럿 있다.
장흥의 봄철 음식으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갑오징어회·먹찜과 주꾸미 샤부샤부다. 갑오징어는 요맘때 살이 퉁퉁하게 올라 가장 맛있다. 특히 장흥에서는 회로 먹는 것 외에 속을 꺼내지 않고 통째로 찌는 갑오징어먹찜이 유명하다. 일단 크기가 커서 씹는 맛이 있고 담백하고 고소한 맛까지 난다.
여유가 있다면 정남진해양낚시공원에서 갑오징어를 직접 잡아볼 수도 있다. 운 좋으면 감성돔도 낚을 수 있다.
주꾸미도 봄철 장흥 먹거리다. 손바닥보다 큰 크기에 머리에는 알이 가득 차 있다. 샤부샤부 육수에 살짝 데쳐서 건져 먹으면 부드럽고 졸깃한 식감을 느낄 수 있다. 머리는 좀더 오래 삶아 자르면 마치 밥알같은 하얀 알들이 가득 차 있어 보는 것만으로도 배가 부르다.
이외에도 장흥 9미 중 요즘 맛봐야 할 음식은 철분·칼슘·바타민A·C가 풍부한 매생이탕, 바다에서 나는 갯장어를 살짝 익혀 먹는 하모샤부샤부 등이 있다.
천관산 동백숲서 본 봄 '바다 건너 육지 상륙 중'
장흥에서 봄맛을 봤다면 바다를 건너 육지로 상륙 중인 봄을 만날 차례다.
장흥 천관산 동백숲에서 불그스레 물든 봄을 볼 수 있다. 천관산 동백숲은 20만㎡의 면적에 50년∼200년생 동백 3만여 그루가 군락을 이루고 있는 국내 최대 규모의 천연 동백 군락지다. 2007년 단일 수종 최대 군락지로 한국 기네스 기록에도 등재됐다. 다른 나무가 섞이지 않은 순림형 군락지로 전국에서 가장 넓기 때문이다.
천관산 동백은 산 중턱에 있어 이달 중순부터 꽃이 피기 시작해 4월 초에 절정을 이룬다. 동백숲에는 팔각 전망대, 동백 탐방로, 관찰 데크, 숯 가마터가 있는데, 팔각 전망대에서 협곡을 봐라 보면 숲 가득 붉은 동백꽃을 볼 수 있다. 탐방로를 따라 들어가면 동백숲의 속살을 들여다볼 수 있다. 아직도 많은 사람이 다니는 곳이 아니어서 탐방로라고 해도 험한 편이다.
동백숲까지 갔다면 천관산을 둘러보는 것도 좋다. 호남의 5대 명산인 천관산은 부처바위, 사자바위, 기바위 등 다양한 이름을 가진 정상의 바위들이 천자의 면류관을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능선에 서면 전남 일원의 모든 산과 멀리 제주도까지 보일 정도로 조망이 뛰어나다. 동쪽 능선 끝자락은 곧장 바다 속으로 빠져들 만큼 바다와 인접해 있어 천관산 능선 어디서든 시원하게 펼쳐지는 다도해 풍경을 볼 수 있다.
억불산 자락에 조성된 정남진 편백숲 우드랜드에서는 봄의 기운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다. 이 곳에는 100ha에 40년생 이상의 아름드리 편백나무 숲이 조성돼 있다. 편백나무는 건강에 좋은 피톤치드와 음이온을 가장 많이 내뿜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통나무주택, 황토주택, 한옥 등 숲속에서 건강 체험을 할 수 있는 숙박시설과 생태건축을 체험할 수 있는 목재문화체험관, 목공 및 생태건축 체험장, 숲 치유의 장, 산야초단지, 말레길 등이 조성돼 있다.
특히 편백 사이를 걸으며 즐기는 무장애 데크길인 말레길은 우드랜드에서 가장 인기있는 탐방로다. 3.8㎞ 전 구간에 계단이 없는 무장애 목재 데크를 설치해 누구나 쉽게 오르내릴 수 있다.
[사진=드론으로 촬영한 정남진전망대와 주변 모습. 장흥군 제공]
주말(금·토요일)에는 24시간 운영되는 편백소금찜질방에는 소금 마사지방, 소금 해독방, 소금 동굴 등이 있어 등반 후 피로를 풀 수 있다.
삼림욕을 마치고 남쪽으로 발길을 올기면 삼산방조제 너머 언덕에 장흥의 랜드마크인 정남진전망대가 있다. 10층 전망대에 오르면 득량만 바다와 섬, 배 등을 볼 수 있다. 고배율 망원경으로 바다 건너 소록도와 거금대교, 완도, 금일도 등도 볼 수 있다. 올라갈 때는 엘리베이터를 탔다면, 내려올 때에는 계단을 이용하면 층별로 꾸며놓은 테마 공간을 구경할 수 있다. 추억의 고고장, 사진관, 골목길 벽에 붙은 각종 포스터 등을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