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작품에서 세련된 도시 여자 혹은 철없는 엄마 역할을 도맡았다. 독특한 목소리와 화려한 생김새 덕이었다. KBS 2TV '왜그래 풍상씨'의 간분실 역은 파격적인 연기 변신이었다. 같은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새로운 신동미를 발견했다. 신동미는 '최선을 다하는 배우로 기억되고 싶다'는 말을 한 뒤 한동안 눈물을 흘렸다.
'왜그래 풍상씨'를 만나기 전 지독한 슬럼프를 겪으며 연기를 그만둘 생각까지 했던 배우 신동미에게 '민낯 연기'는 최후의 결단과 같은 것이었다. 그 간절함이 브라운관을 넘어 안방 시청자들에게까지 전달됐다. 비록 포털사이트엔 조연이라고 소개돼있지만 신동미의 간분실은 '왜그래 풍상씨'의 주인공이었다.
-종영 소감은. "아직 실감이 잘 안 난다. 많이 사랑해주셔서 감사하다. 또 간분실을 사랑해주셔서 감사드린다. 아직 종영이라는 걸 느끼려면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정이 많이 들었나 보다. "정이 안 들 수 없는 작품이었다. 매회 울고, 매회 소리 지르고, 감정의 깊이를 그렇게 깊게 가는 역할을 만나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애정이 안 생길 수 없었다. 이제야 완벽한 분실이가 될 수 있을 것 같은데 끝나서 아쉽다."
-오열하고 화내는 연기 힘들었을 것 같다. "인생을 살면서 누가 그렇게 매일 그렇게 깊은 감정을 느끼겠나. 나도 이렇게 자주 매일 울고 화내는 건 처음이었다. 특히 17, 18회 때는 모든 장면에서 울었다. 고생스럽긴 했지만 배우로서는 그런 감정을 가져가는 게 쉽지 않아서 도전이었고 그 도전을 잘 수행한 것 같아서 스스로는 기쁘다. 배우로서 한 단계 올라섰다는 생각이 들어서 좋다."
-'신동미의 재발견이다'라는 반응이 많았다. "못생겨서 보기 싫다는 댓글도 봤지만, (웃음) 감사하다. 대부분이 너무 좋다는 댓글을 달아주셔서 감동을 받았다. 앞으로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근데 사실 그건 제가 한 건 아니고 드라마와 유준상 선배님, 작가님, 감독님의 도움이 컸다. 그분들 아니었으면 이런 캐릭터를 만날 수 없었고 할 수도 없었고 해내지도 못했을 것이다. 절대 저 혼자서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바쁜 와중에도 대본 리딩을 많이 했다고. "쉽지 않았지만 작품을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됐다. 같은 말이어도 뉘앙스에 따라 잘못 이해할 수가 있는데 작가님이 정확히 짚어주시기 때문에 저희들이 신을 해결하거나 캐릭터를 해석하는 데 훨씬 수월했다. 근데 계속 하다가 15, 16회만 바빠서 안했는데 그때 너무 불안했다. 풍상이와 분실이의 얘기였는데 너무 슬퍼서 대본을 처음부터 끝까지 한 번에 보지 못했다. 울면서 봤다. 간 수술을 받기 전 두 사람의 따뜻한 부부애가 보여져서 좋았다."
-출연을 결정한 이유는. "사실은 이 작품 찍기 전에 슬럼프가 와서 연기에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처음엔 제안이 들어왔을 때 다른 작품을 하겠다고 했다. 역할이 너무 큰데 자신이 없었다. 그런데 일단 회사에서 많이 설득했고 상대배우가 유준상이라고 해서 마음이 흔들렸다."
-슬럼프의 계기가 있었나. "2017년에 정말 정신없이 일했다. 그래서 가족에 충실해보자는 생각에 제안을 몇 번 거절하고 영화만 한 편 했다. 그랬더니 작품이 안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쉬면서 내 연기를 돌아봤을 때 '이렇게 가도 되나'하는 고민도 했다. '어떻게 하면 깊이 있는 연기를 할 수 있을까' 그런 여러 가지 고민을 했다."
-민낯 촬영을 결심하게 된 이유는. "분실이는 내게 큰 산이었다. 대본을 받아들었는데 완전히 흔히 볼 수 있는 옆집 아줌마였다. 근데 내 목소리나 말투, 내 모든 게 분실답지 않았다. 도시적인 이미지도 강했고. 그래서 민낯을 선택했다. 하지만 감독님에게 민낯으로 하겠다고 말한 날 엄청 후회했다."
-민낯으로 나왔기 때문에 더 사실적이었다. "방송 전까지 매일매일 덜덜 떨면서 찍었다. 찍고 돌아서서 후회했다. 시청자들을 배려하지 않은 것일까 봐, 시청자들이 '쟤 뭐야' 할까 봐 첫 방송 때 두 손을 모으고 기도하면서 봤다. 그런데 좋아하시길래 천만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너무 절실했다. 자존감이 없는 상황에서 일어서야 하는 작품이었다. 연기를 관둬야 하나 생각까지 할 때 만난 작품이었다. 그래서 도전을 이겨낸, 산을 하나 넘은 것 같은 작품이자 캐릭터다. 그래서 더 애정이 간다." -100% 민낯에 패션도 현실적이었다. "연기에 자신이 없었기 때문에 어떻게 해야 더 사실적으로 보일까 고민했다. 서울 근교 세차장을 돌아다니면서 실제로 스타일이나 일하는 모습을 관찰했다. 화장을 한 분도 물론 있었지만 안 한 분이 더 많았다. 또 스타일리스트와 시장을 돌아다니면서 옷을 샀다. 상의와 외투, 하의 몇 벌로 돌려입었다."
-많은 분이 열정에 감탄했다. "고생한 보람이 있는 것 같다. 이런 것들 때문에 내가 실제로 한 것 이상으로 연기를 더 높게 평가해준다고 생각한다. 근데 다음 작품이 걱정이다. 화장하고 나오면 연기가 이상하다고, 혹은 화장했는데 민낯이 더 낫다고 하면 어떡하나."
이아영 기자 lee.ayoung@jtbc.co.kr 사진=스타하우스엔터테인먼트, 초록뱀미디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