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머니에 네모 반듯하게 접어 넣고 다니던 지폐가 줄어든 지 오래다. 평평한 카드를 굳이 챙기지 않아도 편의점에서 결제가 가능하다.
전단지를 보고 배달 음식을 주문하던 시대도 지나간다. 배달 앱만 켜면 우리 동네 음식점에서 주문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생활 속 크고 작은 변화가 스마트폰을 통해 이뤄지는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식권대장’은 종이로 식권을 배부하고 장부에 일일이 기록하던 기업들의 식대 문화를 모바일로 전환한 서비스다. 흔히 말하는 ‘오피스촌’에 가 보니 여전히 ‘식권 받습니다’ ‘장부 거래합니다’라고 써 붙인 종이들을 대신할 시스템을 구축한 것이다.
지난 17일 서울 삼성동 식권대장 본사에서 만난 조정호 벤디스 대표는 “식권이나 장부로 점심 식대를 정산하고 영수증에 풀칠해서 정산해야 하는 비효율적 업무를 줄일 수 있다고 봤다”며 “새로운 사업 기회라고 생각했고, 시장도 충분히 크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렇게 식권대장의 시작은 ‘모바일 식권’ 서비스였다. 한국산업은행·한국타이어·현대오일뱅크·한화시스템·한솔제지 등 260개 기업들의 종이 식권을 대신하는 식권대장은 지난해 평창겨울올림픽에도 공급되며 서비스가 가능한 영역을 넓혔다.
모바일 식권 서비스로는 단연 선두다. 후발 주자들이 등장했지만, 오롯이 이 시장에 집중하는 곳은 식권대장이 유일하다.
조 대표는 “모바일 식권 다음은 식권대장을 기업들의 모든 식대를 책임지는 ‘오피스 푸드 테크’ 기업으로 만드는 것”이라며 다음 스텝을 준비하고 있었다.
- 첫 창업이 아니다. 실패한 과거의 창업에서 배운 것이 식권대장에 영향을 미쳤나. “일반적으로 초기 창업자들이 실수하는 것이, 시장과 고객을 간과하는 것이다. 보통 처음 창업할 때는 ‘이런 비즈니스가 될 거야’ 하는 직감에 의존하는 것이 많다.
첫 창업에서 소상공인들이 적립 서비스가 있으면 좋아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하루하루 먹고살기 바쁜 자영업자들한테 ‘고객 관리’에 대한 니즈는 떨어지더라.
식권은 달랐다. 한 게임사에서 외주 개발이 들어온 건이었는데, 임직원 전용 복지상품권을 모바일로 만들어 달라는 것이었다. 회사 총무팀에서 제작해 배부하고 정산하던 복지상품권이 번거로우니, 사내 카페나 제휴돼 있는 곳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구축하자는 내용이었다.
결국 거래는 불발됐지만, 우리 잠재 고객으로부터 의뢰받은 것이니, 잠재 고객이 어떤 니즈를 갖고 있는지 확인한 것이었다. 그래서 ‘모바일 식권’이 다른 기업들에도 분명히 니즈가 있을 거라고 판단했다.”
- 기업들은 보통 사원증으로 태깅하는 방법으로 식권을 대신하지 않나. “보통 사원증으로 식대를 처리하는 건 구내식당이 있는 대기업이다. 하지만 근로자 수 100인 미만인 기업이 더 많다.
사원증으로 식수를 체크하는 방법의 단점은 횟수만 체크 가능하다는 것이다. 가격이 다른 메뉴로 인한 금액은 체크할 수 없다. 또 구내식당을 운영하는데 야근하는 사람이 없으면 저녁에 운영할 수 없다.
야근자들을 위해서라도 제휴 식당이 있어야 한다. 사원증으로 식수를 체크하는 회사들은 제휴 식당에 단말기를 놓아야 한다는 점도 단점이다. 또 식당은 메뉴가 구내식당보다 다양한데, 사원증으로 횟수만 체크하지 금액은 정할 수 없다 보니 회당 7000원이라는 식으로 계산해 회사와 계약한다. 5000원짜리 식사를 해도 2000원을 거슬러 받을 수 없다. 하지만 모바일 식권을 이용하면 금액으로 결제하기 때문에 편리하다.”
- ‘모바일 식권’ 사업에 성장성이 있나 보다. 벤디스는 거의 매년 투자받았다. “투자자에게 묻진 않았지만, 이전에 소상공인을 위한 적립 서비스를 만들면서 시행착오를 겪어 왔고, 결국 모바일 식권시장을 발견했다. 본엔젤스와 우아한형제들 등에서는 모바일 식권이라는 사업 모델이 훌륭하다고 여겨 줬는데, 이 사업으로 오랜 시간 버티고 이 시장을 만들어 갔던 것을 긍정적으로 봐준 것 같다. 우아한형제들에서 투자받을 때는 식권대장의 고객사가 2곳밖에 없을 때였다.
또 모바일 식권이라는 생소했던 분야를 시장에 정의하고, 충분히 산업으로 만들어 내고, 여기서 성장시키는 측면에서 투자해 준 것 같다.
우리는 식권 사업을 위해 태어난 회사고, 모바일 식권이라는 개념도 2014년에 처음 만들었다.
처음 창업했을 당시는 한국에 BTB 서비스에 대한 부정적 시각이 많았다.
일반적인 앱 다운로드는 마케팅으로 가볍게 할 수 있지만, 기업을 대상으로 하는 것은 수백 명 직원이 모두 앱을 깔아야 하는 무거운 작업이다 보니 그랬다.
의사 결정이 매우 보수적인 기업을 상대로 모바일 식권이라는 것을 인지시켜 가면서 시장 1위로 자리 잡는 것 자체가 투자자들에게 가치 있다고 보이지 않았을까 싶다.”
- 최근에는 투자도 했다. “일단 투자한 회사 ‘플레이팅’이 하는 사업이 음식을 제조하고 고객에게 전달하는 사업이다 보니 우리의 핵심 역량과 동떨어졌다고 판단했다. 직접 비슷한 사업을 하기보다 잘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니 잘할 수 있는 팀과 협업하기 위해 투자했다.
스타트업이 스타트업에 투자하면서 성장을 도모한다는 게, 생각 자체는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쉽지 않다. 이건 우아한형제들에 투자받으면서 영감받은 것 같다. 우아한형제들이 식권 사업을 직접 하지 않고, 이 서비스는 벤디스가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믿어 준 것처럼 말이다.
우리보다 더 잘할 수 있는 팀을 발굴하고 협업·투자를 통해 성장을 도모하면서 선순환하고 상생할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
- 플레이팅과는 어떤 식으로 협업하나. “요즘은 근로 문화와 근로 방식의 변화로 점심시간에 ‘런치미팅’처럼 같이 식사하면서 대화를 장려하기도 하고, 미세먼지 이슈 때문에 외부에 나가 식사하기를 꺼리는 사람들도 있다. 또 건강에 대한 관심이 늘어나면서 건강 도시락·샐러드 등 니즈가 올라오는 추세다. 그래서 우리는 양질의 도시락·배달 음식을 커버해 줄 수 있는 팀을 찾아야 하는 숙제를 안고 있었다.
플레이팅이 제조한 도시락들을 식권대장 고객사에 배송하는 비즈니스를 할 것 같다. 우리를 통해 주문 결제를 하면 플레이팅에 데이터가 넘어가도록 중개 역할을 하는 것이다.”
- 식권대장 서비스 이용 전후 고객사의 반응이 궁금하다. “일단 고객사 이탈은 폐업하는 경우가 아니면 제로에 가깝다.
또 식권대장에 문의할 때 우리 서비스를 어떻게 인지했는지 추적한다. A기업에서 식권대장을 사용하던 직원이 이직했는데, 그 B기업이 식권대장을 사용하지 않는다면, B기업에 식권대장을 추천하는 것이다. 이것은 서비스 만족도가 담보되지 않으면 일어날 수 없는 행위다.
또 법인카드로 처리하거나 개인 카드를 쓰고 영수증으로 환급해 주는 경우가 있는데, 재무팀이 모든 직원의 영수증을 하나하나 따지기가 힘들다. 이 과정에서 오·남용이 생기는데, 식권대장을 이용하면 식대로 나가는 비용을 20% 절감할 수 있다. 이렇게 줄어든 식대 비용을 간식이나 과일 등 직원을 위한 다른 복지로 돌리는 경우도 있었다.”
- 우리나라 기업 식대 시장의 규모는 어느 정도인가. “정확한 데이터가 나오기는 힘들다. 간접적으로 추산한 것은, 2016년 식대 포함 급여를 제외하고 따로 식대를 지원하는 금액이 평균 7만9000원 정도더라. 여기에 대한민국 근로자 수를 곱했더니 10조원 정도 시장이 만들어지는 것으로 나왔다.
여기에 간식·조식 시장·직장인이 저녁 식사를 하는 것까지 커버하기 시작하면 무궁무진한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 식권대장의 다음은 무엇인가. “처음에는 식권대장이 모바일 식권이라고만 생각했다. 식권 서비스에 제한된 정의를 많이 내렸다.
그런데 기업의 임직원들이 점심과 저녁을 먹는 영역을 식권대장을 통해 커버하다 보니, 아침 식사나 커피·간식 등 '밥 외에도 발생하는 식문화가 있을 텐데' 하는 생각이 점점 들었다.
그래서 우리는 ‘오피스 푸드 테크’라고 말한다. 현재 ‘푸드 테크’ 시장이 자리 잡고 있지만, 사무실에서 상주하며 소진하는 푸드 테크도 무시하지 못한다고 판단했다. 직장 내 식문화를 혁신하겠다는 것이다.
나아가 아침을 잘 챙겨 먹지 않는 직장인들에게 샌드위치나 주먹밥 서비스를 제공할 수도 있고, 저녁에 뭘 먹을까 고민하는 직장인들에게는 점심 메뉴 데이터를 추적해 오늘 저녁 메뉴를 추천해 줄 수도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