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속팀 울산 현대모비스의 독주가 이어지던 1월 중순, 발목 부상으로 벤치에서 경기를 지켜보던 양동근(36)은 '위기'를 느꼈다. 이종현(25)이 무릎 부상으로 일찌감치 시즌 아웃됐고, 팀의 분위기를 이끌던 이대성(29)도 아킬레스건 부상으로 전력에서 이탈한 상황. 여기에 양동근까지 부상당하면서 화려한 멤버 구성으로 '모벤져스'라고 불리던 현대모비스의 독주 체제도 위기를 맞았다.
그러나 '1강'은 '1강'이었다. 그 모든 위기를 뒤로 하고 현대모비스는 결국 2위 인천 전자랜드에 8경기 차로 앞서 압도적으로 정규 리그 우승을 차지했고, 이어진 플레이오프에서도 챔피언결정전 우승을 차지하며 통산 다섯 번째 통합 우승 및 일곱 번째 챔피언결정전 우승의 새로운 역사를 썼다.
우승의 기쁨이 채 가시지 않은 지난달 29일, 상암에서 현대모비스 우승의 주역 양동근과 이대성을 만났다. 시즌이 끝난 뒤 자녀들의 등교와 하원을 책임지느라 늦잠도 못 자고 있다는 양동근은 "(이)대성이 인터뷰 기사 찾아 보고 (함)지훈이 감시하느라고 시즌 때보다 더 바쁘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오는 11일 결혼식을 앞두고 있는 '예비신랑' 이대성은 "결혼 준비와 감기 때문에 정신이 하나도 없다"고 근황을 소개했다.
올 시즌 현대모비스의 우승으로 선수 최다 우승(6회) 경험을 쌓게 된 양동근, 그리고 눈부신 활약으로 플레이오프 MVP를 거머쥐며 세 번째 우승을 차지한 이대성. 두 선수는 올 시즌 '모벤져스' 현대모비스의 우승 주역으로 꼽기에 아쉬움 없는 활약을 펼쳤다. 특히 시즌 중반 나란히 부상으로 코트를 떠나야 했던 아픔이 있지만, 복귀 이후 팀을 통합 우승의 자리에 올려 놓은 점에서도 공통점이 있다.
양동근은 그때를 돌이키며 "우승은 언제 하나 똑같이 기쁘지만, 올 시즌은 다들 너무 고생을 많이 했다"고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오)용준이 형·(문)태종이 형·그리고 (함)지훈이가 가장 힘들었을 것"이라고 얘기한 양동근은 "무엇보다 대성이가 가장 아쉽다. 정규 리그 MVP도 충분히 가능했는데 부상 때문에 놓친 것 같아 아쉽고 또 아쉽다"고 한탄을 금치 못했다.
양동근의 말대로 이대성은 올 시즌 빼어난 활약을 펼치며 정규 리그 MVP 후보로 거론됐다. 하지만 부상으로 코트를 떠나 있던 시간이 길어 정규 리그 MVP를 놓쳤고, 그 아쉬움을 플레이오프 MVP로 털어 냈다. 하지만 양동근은 "통합 MVP는 그렇게 쉽게 받을 수 있는게 아니다. 54경기를 뛰는 동안 꾸준히 활약하기가 쉽지 않아 받기 어려운데, 올 시즌 대성이는 누가 봐도 받을 만해서 부상 때문에 불발된 것이 너무 아쉽다"고 자기가 더 안타까워하는 모습을 보였다.
양동근의 말에 함께 자리한 이대성은 "굳이 꼽자면 내가 받은 이 MVP가 더 좋다"며 고개를 저었다. "시리즈마다 위기가 있었고, 4강도 결승도 많이 힘들었다. 내가 잘했다기보다 형들이 다 만들어 주신 상"이라며 겸손한 답변을 내놨다가 양동근에게 "맨날 형들 덕분이래, 내가 받아 봐서 아는데, 54경기를 그렇게 뛰는 게 쉽지 않다"고 '구박'을 받기도 했다. 양동근은 2007년과 2015년 두 차례, 함지훈은 2010년 통합 우승과 함께 통합 MVP를 차지한 바 있다.
양동근이 보는 이대성은 그만큼 좋은 후배이고 훌륭한 선수다. 양동근은 "에너지가 넘치고 다른 선수들에게도 동기 부여를 심어 줄 수 있는 선수"라고 이대성을 칭찬했다. "무엇보다 경각심을 일깨워 준다. 대성이의 도전 정신은 아무도 하지 못했던 것을 본인 스스로 도전해서, 다른 선수들까지도 열심히 할 수 밖에 없게 만든다"고 말한 양동근은 "대성이를 보다 보면 여러 가지로 돌아보게 된다. '나라면 그런 선택을 할 수 있었을까?' 싶은 순간이 많다"고 설명했다.
물론 그래서 '볼 때마다 불안불안한' 순간도 많다. "운동할 때, 경기할 때 대성이를 보면 불안하다. 다치면 안 되는 선수이기 때문에 지켜보는 마음이 불안하다"고 얘기한 양동근은 "군대 가기 전에도 아파서 고생했고, 이미 다쳐서 본인도 손해 아닌 손해를 보지 않았나. 의욕을 앞세우다 또 다치면 자신에게 손해인 만큼, 본인 몸을 혹사시키지 말고 조금 내려놨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조언을 건넸다.
자신을 걱정하는 '큰 형' 양동근의 마음을 이대성도 잘 알고 있다. 이대성은 "시즌 중반 아파서 병원 다닐 때 형이 해 주신 조언이 확 와닿더라. 운동을 며칠 안 한다고 내가 해 온 것들이 확 없어지진 않는다는 걸 알았다"고 설명했다. 그 말에 양동근은 "누구보다 내가 그 절박함을 아니까 하는 말이다. 나는 그걸 내려놓지 못했는데, 막상 해 보니 별 거 없었다. 그래서 대성이가 조금이라도 절박함을 내려놓으면 좋겠다"고 토닥였다.
이대성에게 양동근은 롤 모델이자 꿈이다. 이대성은 "한 시대를 아울렀고 압도적인 활약을 펼친 선수다. 누구나 다 (양)동근이 형처럼 되길 꿈꿀 것"이라며 "동근이 형처럼 되길 꿈꾸는 내 세대 선수들 중에서는 지고 싶지 않다"며 후계자 자리에 대한 욕심을 드러냈다. 물론 '노장' 반열에 드는 양동근이지만 쉽게 코트에서 물러날 생각은 없으니 후계자가 되려면 시간이 더 필요하다. 양동근은 "경기 나가서 나이 들었구나 싶은 생각이 든 적은 없다. 체력적으로 2~3년은 너끈하지 않을까 싶다"며 자신감을 드러냈다. 올 시즌이 끝나고 FA 시장에 나왔지만 선수도 팀도 이별에 대한 가능성은 생각하지 않는 분위기다.
이들에게 현대모비스는 '가족' 그 자체다. 양동근은 "1년에 두 달 빼고 늘 함께하는데 가족들보다 더 많은 시간을 보내는 만큼 가족 그 자체같다"고 설명했고, 이대성도 "동근이 형은 큰 아들, 나는 막내 아들 같은 느낌이 있다"며 웃었다. 이대성은 "막내 아들처럼 사고도 많이 치고 하는데, 그래서 유재학 감독님은 내게 꼭 아버지 같으신 분이다. 눈으로 보고 배워야 할 '큰 형' 동근이 형도 있으니 앞으로도 닮아 갈 생각"이라며 씩 웃었다. 이대성이 말한 대로 "동근이 형 발가락까지 우승 반지를 끼워주는 날까지", 현대모비스를 이끌어 갈 '큰 형'과 '막내 동생'이 보여 줄 앞으로의 모습이 더욱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