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시즌 1군 무대에서 활약 중인 사촌 지간 KIA 임기준(왼쪽)과 고영창. 광주=이형석 기자
초등학생은 유년 시절 몸이 아팠던 탓에 이것저것 여러 종목의 운동을 해 봤다. 정작 축구에 관심이 많았지만 학교를 옮겨 야구를 접한 뒤 그 매력에 푹 빠졌다. 두 살 터울 사촌 동생은 그런 형을 보며 또 야구를 하고 싶어했다. 20년이 흐른 지금, 둘은 KIA 1군 마운드에서 힘차게 공을 던지고 있다. KIA 고영창(30)과 임기준(28)의 이야기다.
고영창과 임기준은 출신 학교가 광주서림초-진흥중-진흥고로 같다. 중·고교 시절에는 1년씩 함께 몸담았다. 프로 무대는 2010년 2차 2라운드 14순위로 입단한 임기준이 2013년 2차 6라운드 53순위로 입단한 고영창보다 3년 먼저 첫발을 내딛었다. KIA 유민상(내야수)-KIA 유근상(투수) LG 이우찬-키움 송우현(외야수) 등 KBO 리그에 사촌 지간도 많지만 현재 1군에서 함께 활약 중인 사촌으로는 고영창-임기준이 유일하다.
이종사촌 지간으로 두 살 형인 고영창은 "어렸을 때부터 함께해서 좋았던 점이 많았다"며 "우리 어머니와 이모가 함께 많이 챙겨 주시며 뒷바라지 해 주셨다. 때문에 허물없이 친하게 지냈다"고 웃었다. 임기준은 "(고)영창이 형이 야구하는 것을 좋아하길래 나도 따라 시작했다"고 수줍게 말했다. 그러자 "고영창은 원래 축구 쪽에 관심이 더 많았는데, 만일 축구를 했다면 성적이 안 좋았을 것 같다. 지금은 좋은 방향으로 프로에서 뛰게 돼 다행이다"라고 말했다. 어릴 적 야구를 함께하며 늘 붙어 다녔던 둘을 보며 '형제'로 착각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당시에는 외모가 많이 닮았었다. 고영창은 "(기준이가) 크면서 외모가 많이 달라졌다"고 털어놓았다.
좌완과 우완, 유형은 다르지만 둘 다 투수다. 프로 무대에서 최소한 '맞대결'이라도 원했다. 그래도 이왕이면 같은 팀, 그 중에서도 '고향팀'에서 뛰길 원했다. 입단 시기는 반대가 됐지만 어찌됐든 고향팀 KIA에서 한솥밥을 먹는 '최상의 시나리오'가 됐다. 임기준은 "학창 시절에 같은 팀에 뛰었으니 맞대결을 하더라도 같은 기간에 프로 무대에서 뛰었으면 좋겠다고 늘 생각했다. 그런데 같은 팀에 몸담아 더욱 좋다"고 해맑게 웃었다. 연세대를 졸업하고 임기준보다 늦게 입단한 고영창은 "나는 2군에 오래 머무르는 등 늦게 풀린 경우다. 반면 기준이는 1군에서 주로 활약했다. 그래서 (함께 1군에서 뛰는 날이) 안 올 수도 있겠다 싶었다"며 "갑작스럽게 기회가 찾아왔는데 아직도 함께 뛰는 느낌을 잘 모르겠다. 그런데 올 시즌 종료 이후에 보면 정말 뜻깊게 느껴질 것 같다"고 말했다. 직접 밝혔듯이 고영창은 대기만성 스타일에 속한다. 2013년 입단 이후 지난해 처음 1군 무대를 밟았다. 그마저도 지난해 2경기에 등판해 6타자를 상대하며 아웃 카운트 하나 잡지 못한 채 4피안타 1볼넷 1몸에 맞는 공으로 6실점이나 했다. 반면 임기준은 2012년 1군 데뷔 이후 경찰 야구단에서 군 복무한 2013~2014년을 제외하면 쭉 1군 마운드에 얼굴을 드러내고 있다. 2017년 15경기 1패1세이브 2홀드 평균자책점 3.27을, 지난해에 55경기에 등판해 개인 최고 성적인 5승1패 2세이브 8홀드 평균자책점 3.54를 올렸다. 고영창은 2019년 행복하다. 데뷔 이후 처음 개막 엔트리에 포함된 뒤 20경기에서 승패 없이 홀드 5개 ·평균자책점 2.76을 기록하고 있다. 임기준은 개막 이후 보름 여가 지난 4월 초 엔트리에 등록됐지만 홀드 3개 ·평균자책점 5.63을 올리는 중이다. 고영창이 팀 내 홀드 1위, 임기준은 '프로 2년 차' 하준영과 함께 팀 내 홀드 공동 2위다. 고영창은 "외가 집안에서 한 달에 1~2번씩 가족 모임을 갖는다. (임)기준이가 지난해 잘 던졌는데 나는 그러질 못했다. 어쨌든 내가 형인데 아버지 어깨가 많이 구부러져 있는 모습을 봤다. 올해에는 지금까지 1군 풀타임을 소화하며 좋은 모습을 보여 아버지 어깨도 다소 펴진 것 같다"고 굉장히 반겼다. 특히 "처음에는 '이 기회를 꼭 잡아야 돼' '마지막 기회야'라는 생각에 부담감이 컸다. 그런데 계속 1군 경기에 등판해 자신감도 얻고 '이런 식으로 던지면 되겠구나' 싶더라. 마운드에서 마음이 편해진 점이 좋은 결과로 이어지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임기준과 고영창은 올 시즌 몇 차례 마운드에서 공을 넘겨줬다. 임기준은 "나는 막아 줬는데 형은 (내가 남겨 놓은) 승계주자실점을 허용하더라"고 웃으며 "원망하지 않는다. 나 역시 다른 앞 투수가 남겨 놓은 주자에게 홈을 허용하니까"라고 웃었다. 그러자 고영창은 "(임기준에게) 미안하다고 했다"면서 "내가 프로에 와서 (기준이와 마운드를 넘겨주고 이어받는 것이) 꿈꾸던 그림이었다. 결과가 안 좋았지만 그래도 함께할 수 있어 좋다"고 반겼다. 덕담도 했다. "서로에게 응원 메시지를 해 달라"는 얘기에 쑥스러워했으나 고영창은 "기준이는 계속 잘해 왔기 때문에 항상 잘할 것이라 믿고 있다. 나만 지금 같은 모습 계속 보여 준다면 KIA가 좋은 성적을 낼수 있도록 도움이 될 것이다"라며 "기준이는 믿어 의심치 않는다. 내가 잘 받쳐 줘야죠"라고 말했다. 바통을 넘겨받은 임기준은 "형은 지금도 충분히 잘하고 있다. 동생 주찬이가 (프로에 올 때까지) 잘 버텨서 세 명이서 KIA 1군에서 한 번 뛸 수 있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임기준의 동생 임주찬(16)은 현재 광주 동성고 1학년에 재학 중으로 유격수로 뛰고 있다.
고영창은 "올 시즌 나와 기준이 모두 아프지 않고 끝까지 완주했으면 좋겠다"고 했고, 임기준은 "나도 마찬가지다. 야구를 오래 하려면 안 아파야 한다"며 올 시즌 선전을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