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는 맨홀에 빗댈 수 있어요. 뚜껑을 열어 봐야 비로소 그 아래 무엇이 있는지 알 수 있으니까요. K리그도 그래요. 개막 이전까지만 해도 대구 FC가 이렇게 잘할지, 전북 현대·울산 현대·FC 서울이 이토록 치열한 선두 경쟁을 펼칠지 예상한 사람이 몇이나 있었겠어요."
조원희(36) JTBC 해설위원은 축구 얘기만 나오면 싱글벙글이다. 지난 시즌을 끝으로 현역에서 은퇴한 그는 불과 몇 달 만에 다시 그라운드로 돌아왔다. 축구화는 신지 않았다. 대신 손에 마이크를 들었고, 유니폼 대신 정장을 입었다. 최근 강남의 한 카페에서 만난 조원희 해설은 "꼭 한 번 해설을 해 보고 싶었다"면서 "처음이라 쉽지 않은 부분도 있지만, 집에서 혼자 영상을 틀어 놓고 해설을 중얼거릴 만큼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 진화하는 조원희를 기대해 달라"고 각오를 밝혔다.
2002년 울산 현대 유니폼을 입고 프로 데뷔한 조원희는 2018년 수원 삼성에서 은퇴할 때까지, 17년간 수비수와 미드필더를 오가며 그라운드를 누볐다. K리그 기록은 291경기 출전에 10골 9도움. K리그1(1부리그) 우승만 한 차례(2008년) FA컵 우승은 두 차례(2010·2016년 이상 수원) 경험했다. 딕 아드보카트 감독 눈에 띄어 2006 독일월드컵에도 참가했다. 초인적인 활동량과 투쟁심이 전매특허인 그를 두고 축구팬들은 이탈리아 국가대표 출신 수비형 미드필더 젠나로 가투소(은퇴)에 빗대 '조투소'라고 불렀다.
그는 수원에서 뛰던 2009년 2월에는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1부리그) 위건 애슬레틱 유니폼을 입고 1년간 활약했다. 이후에는 중국 광저우 헝다·우한과 일본 오미야를 거쳐 K리그2(2부리그) 서울 이랜드 FC에 입단했다. 수원에 다시 돌아온 것은 2016년이다.
조 해설은 해외와 국내 리그를 가리지 않고 쌓은 다양한 경험이 해설자로 가장 큰 강점이라고 했다. "나만큼 많은 리그와 팀에 몸담은 선수도 많지 않을 것이다. 특히 프리미어리그는 특별한 경험이었다. 잉글랜드는 경기 중 패스 속도가 무척 빠른데, 인사이드 패스보다는 인사이드 인스텝으로 패스하는 경우가 많다. 킥인데 슈팅식으로 전달하는 것이다. 게다가 모든 해설자를 통틀어 가장 최근까지 현역으로 뛰었다. 현재 리그에서 뛰는 선수들의 성향을 잘 파악하고 있다. 그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 지 누구보다 잘 안다. 경기를 보는 축구팬들에게 이런 디테일을 전달하는 게 임무다."
그는 달변가로 유명하지만 해설만큼은 철저한 준비를 거친다. 조 해설은 일주일에 3일·3시간씩 해설 준비를 위해 투자한다고 했다. 이 밖에도 경기 영상을 보고 정보를 수집하고 동료 선수들과 통화하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이 나이에 은퇴하고 이렇게 많은 공부를 하게 될 줄 상상도 못 했어요.(웃음) 보통 해설하게 될 팀의 직전 경기 영상을 처음부터 끝까지 본다. 그 이후엔 동료 선수들에게 잘 모르는 선수들 성향과 플레이 스타일을 전화로 묻는다. 그렇게 얻은 자료를 손 글씨로 일일이 옮겨 적는다. 하루 종일 노트북·휴대폰·공책을 끼고 산다. 은퇴하고 한가로울 줄 알았는데, 이렇게 열심히 해야 하는 줄 알았으면….(웃음)" 시행착오도 겪는다. "올바른 축구용어 사용에 적응하는 중이다. 선수들끼리는 '자살골'이라고 하는데 방송에서는 '자책골'이 맞다. 경기장에서 패스미스를 하거나 실수하는 것보다 생방송 중 실수가 더 떨린다. 방송 선배인 (현)영민이 형(JTBC 해설)에게 많은 도움을 받는다.(웃음)"
조 해설은 작년까지 팀 동료이자 동갑내기 친구였던 염기훈(수원)이 대견하다. 현역으로 뛰는 것을 넘어 여전히 팀의 핵심 선수로 활약 중이기 때문이다. "(염)기훈이는 실력과 경험 면에서 후배들한테 귀감이 되는 선수다. 후배든 친구든 누구에게나 편하게 해 주는 편이다. 70(골)-70(어시스트)을 넘어 더 많은 공격포인트를 쌓았으면 한다." 올 시즌 전망을 물었더니 "울산·전북은 물론 서울의 돌풍도 예상했다. 앞으로 대구의 활약에 따라 우승 경쟁은 더 치열해질 전망"이라고 했다.
K리그1과 K리그2 경기에서 시청자와 소통할 예정인 조 해설은 "선수들의 몸 상태나 심리적인 부분에 중점을 두고 이야기를 풀어내고 싶다. 디테일한 부분까지 찾아내고 집어 주는 해설 기대해 달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