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끝판왕'의 탄생은 언제나 리그를 설레게 한다. SK 하재훈(29)과 LG 고우석(21)이 그렇다.
둘은 단연 올 시즌의 '발견'으로 꼽히는 소방수들이다. 개막 이후 전임자들의 부상과 부진으로 마무리 투수 자리에 긴급 투입됐지만, 부담감에 흔들리기는커녕 오히려 이전보다 더 강력한 모습으로 연착륙하고 있다. 둘 다 시속 150km대 빠른공을 던지는 파워 피처라는 점도 공통점이다. 강심장과 강속구를 모두 갖춘 이들의 활약에 SK와 LG의 뒷문은 굳게 닫혔다.
마무리 투수는 현대 야구에서 가장 중요한 보직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불붙은 위기 상황을 진화한다는 의미로 '소방수'라 불릴 정도다. 선발투수처럼 승리를 만들어내는 데 기여하지는 못하지만, 승리를 지키는 것도 만드는 것만큼 중요하다는 사실이 거의 매 경기 입증된다. 다 잡았던 승리를 놓치고 역전패하는 기분은 아예 초반부터 승기를 내줬을 때보다 더 참담하다.
그만큼 압박감이 크고 외로운 자리기도 하다. 홀드는 역전을 허용하지 않은 모든 불펜 투수에게 고루 주어지지만, 세이브는 그 경기를 끝낸 단 한 명의 투수만 받을 수 있다. 홀드는 팀이 역전당하거나 패배해도 자신이 리드를 지켜내기만 하면 기록으로 남지만, 마무리 투수에게 '다음'이란 없다.
이런 이유로 한 시즌 내내 위기 한 번 없이 소방수 보직을 수행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올해도 마무리로 시즌을 시작했던 투수 가운데 상당수가 이미 보직을 다른 투수에게 물려줬다. 하재훈과 고우석 역시 각각 부진한 김태훈과 부상당한 정찬헌에게 자리를 넘겨받은 사례다. 시즌 초반부터 '철벽'의 위용을 지켜 오던 기존 마무리 투수들마저 최근에는 조금씩 흔들리는 추세다.
키움 조상우는 지난 29일까지 2경기 연속 2실점을 포함해 3경기 연속 점수를 내줬다. 지난 22일 NC전에선 3점 리드 상황에 등판해 2점을 주고도 세이브를 올렸지만, 연장 대결 속에 마운드에 올랐던 15일 한화전과 직전 등판인 26일 삼성전에선 상대에 끝내기 안타를 맞고 패전투수가 됐다. 5월에만 벌써 4패째다. NC 원종현도 마찬가지다. 지난 26일 SK전에서 동점홈런을 맞고 역전 주자를 내보내 시즌 처음으로 패전투수가 됐고, 29일 롯데전에선 2실점(1자책)을 하고 가까스로 세이브를 추가했다. 경기 수가 늘어나면서 조금씩 힘이 떨어지고 상대 타자들도 이들의 공에 적응해 가는 탓이다. 두산 함덕주 역시 이달 중순 2군에서 조정 기간을 거친 뒤 다시 제자리로 복귀하기도 했다.
하재훈과 고우석은 이런 분위기 속에서도 꿋꿋하게 버티며 성장해 가고 있다. 물론 이들에게도 고비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재훈에게는 10세이브 고지를 밟던 지난 26일 NC전이 위기였다. 2-1로 앞서던 9회 등판해 투아웃을 잘 잡았지만, 갑자기 안타 하나와 볼넷 두 개를 내주면서 만루 위기에 몰렸다. 가까스로 마지막 아웃 카운트를 잡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재훈은 당시 상황에 대해 "투수로 전향한 첫해라 아직은 마운드에 올라가서 몸이 조금 힘들고 팔이 잘 안 나오는 느낌이 들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방법을 잘 모른다"며 "계속 '내가 이럴 때 어떻게 해야 하지?'라고 생각하다가 그냥 '무너질 때가 됐나 보다' 하고 던졌더니 오히려 마음이 편해졌다"고 돌아봤다. 무사히 벽을 넘어선 하재훈은 다음 등판인 지난 28일 kt전에서도 1이닝을 무실점으로 막고 또 한 번 1점 차 승리를 지켜 냈다.
고우석도 그렇다. 지난 29일 키움전에서 2점 차 리드를 지키기 위해 마운드에 올랐다가 1사 이후 제리 샌즈에게 솔로홈런을 맞았다. 지난달 17일 NC전 이후 14경기 만의 실점이자 3월 28일 SK전 이후 22경기 만에 나온 시즌 두 번째 피홈런이었다. 일격을 당한 고우석은 다음 타자인 임병욱에게도 연속으로 중전 안타를 내줘 1사 1루를 만들었다. 하지만 더 이상은 흔들리지 않았다. 다음 타자 장영석에게 2루수 땅볼을 유도해 병살타로 연결했다. 깔끔하게 아웃 카운트를 모두 채우고 다시 세이브를 추가했다.
둘은 입을 모아 "내가 나가서 맞더라도 어쩔 수 없다는 생각으로 던진다"고 했다. 하재훈은 "그냥 '내가 맞으면 어차피 누가 올라와도 맞는다'는 마음으로 부담을 버린다"는 얘기도 했다. '이 상황을 내가 꼭 막아야 한다'는 책임감은 많은 마무리 투수에게 종종 독이 된다. 오히려 '한 경기쯤 맞아도 상관 없다'는 마인드 컨트롤이 배짱 있는 투구로 이어진다. 초보 소방수들이 빠르게 터득한, 마무리 투수로 살아가는 법. 이들이 흔들리지 않고 꾸준히 성장해 가는 비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