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고의 야구팀과 축구 클럽을 동시에 소유한다면 어떨까. 실제로 있는 일이다. 지난해 월드시리즈 우승팀 보스턴 레드삭스와 2018~19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정상에 오른 리버풀(잉글랜드) 구단주 존 헨리(70)가 그 주인공이다.
보스턴은 지난해 월드시리즈 5차전에서 LA 다저스를 시리즈 전적 4승1패로 꺾고 우승했다. 이어 지난 2일에는 리버풀이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 토트넘 홋스퍼(잉글랜드)를 2-0으로 물리치고 챔피언이 됐다. 보스턴과 리버풀을 운영하는 FSG(펜웨이 스포츠 그룹) 설립자이자 최고경영자(CEO)인 헨리는 7개월 사이 두 개의 우승 트로피를 안았다.
헨리는 인구 5만의 작은 도시인 미국 일리노이주 퀸시 출신이다. 그의 아버지는 콩 농사를 지었다. 록스타가 꿈이었던 그는 아버지 농장을 물려받은 뒤, 농산물 거래 사업을 시작했다. 31살에는 금융업에도 뛰어들었다. 사업은 성공했고 부자가 됐다. 그는 보스턴 최대 미디어 그룹인 보스턴 글로브도 인수했다. 포브스에 따르면 헨리의 추정 자산은 27억 달러(약 3조2000억원·세계 838위)이다.
스포츠에 관심이 많았던 헨리는 1999년 MLB 플로리다 말린스(현 마이애미)를 사들였다. 헨리는 비인기 구단이던 플로리다 운영을 통해 경험을 쌓았다. 2002년 마이애미를 처분하고, 보스턴을 매입했다.
헨리의 구단주로서 성공 비결은 인재 영입이다. 2003시즌을 앞두고 오클랜드에서 ‘머니볼’로 성공했던 빌리 빈을 단장으로 영입하려 했다. 실패하자 대신 테오 엡스타인을 단장으로 데려왔다. 당시 만 28세였던 엡스타인은 로스쿨 졸업 뒤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에서 잠깐 일한 게 전부다. 엡스타인은 좋은 선수를 효율적으로 영입했다. 보스턴은 그해 아메리칸리그 챔피언십시리즈에 진출했다. 이듬해인 2004년 고액 선수까지 영입한 보스턴은 월드시리즈에서 우승했다. 헨리와 엡스타인이 1918년 베이브 루스를 뉴욕 양키스에 팔아치운 뒤 우승하지 못했던 ‘밤비노의 저주’를 86년 만에 풀었다.
보스턴에서 성공을 거둔 헨리는 2010년 4월,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명문 리버풀을 3억 파운드(약 4500억원)에 인수했다. 리버풀도 보스턴과 비슷한 처지였다. 전통의 명문이지만 근래 부진했고, 재정 상태도 나빴다. 미국인이 잉글랜드를 상징하는 구단을 소유한 데 대한 차가운 시선도 있었다. 인수 뒤 두 번째 시즌에 프리미어리그 2위를 차지했지만 다시 내리막길을 걸었다. 걸핏하면 매각설이 나돌았다.
이번에도 헨리는 ‘사람’에서 돌파구를 찾았다. 2015~16시즌을 앞두고 위르겐 클롭(독일·52) 감독을 영입했다. 헨리는 독일 분데스리가 도르트문트에서 성공을 거둔 클롭에게 전권을 맡겼다. 클롭은 새로운 선수를 영입하는 등 자신의 축구 철학에 맞춰 팀을 개편했다. 사디오 마네(세네갈), 모하메드 살라(이집트), 버질 반 다이크(네덜란드) 등이 클롭 작품이다. 클롭은 이들과 함께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일궈냈다.
리버풀 구단주 헨리에게는 남은 숙제는 프리미어리그 우승이다. 리버풀은 1992년, 현재의 프리미어리그가 출범한 이래 한 번도 우승하지 못했다. 마지막 우승이 프리미어리그 출범 전인 1989~90시즌이다. 올 시즌엔 30승7무1패(승점 97점)로 선전하고도, 맨체스터시티(승점 98점)에 우승을 내줬다. 헨리는 “(2022년까지 계약 기간인) 클롭과 연장계약을 할 계획이다. 그리고 이번 여름 이적 시장에서 더 많은 돈을 쓸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