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인생에 불어닥친 네 번의 큰 고비를 넘겼다. 신일고 재학 시절에는 나름 에이스였다. 2011년 고교 야구 광역리그(서울권) 우수투수상, 같은 해 고교 야구 주말리그(동일권) 감투상을 받았다. '공 좀 던진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그런데 2013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낙방했다. 예상하지 못한 결과였다. 그는 "프로에 많이 가고 싶었지만 잘 안 됐다. 성적이 나쁘지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2·3학년 때 성장이 멈췄던 것 같다"고 돌아봤다. 야구 인생의 첫 번째 고비였다. 벼랑 끝에 내몰린 순간 선택한 게 동국대다.
대학교 진학 이후 성장을 거듭했다. 양석환(LG) 고영표(kt) 등과 힘을 합쳐 동국대를 2013년 전국체육대회 우승, 전국대학야구선수권대회 우승 등으로 이끌었다. 이건열 동국대 감독은 "처음 왔을 때는 체중이 덜 나갔다. 그런데 2·3학년이 되면서 몸이 좋아졌다. 기본기가 잘돼 있었는데 몸이 커지면서 공도 좋아졌다"며 "대학교 2학년 때부터 대표팀에 들어갔다. (대학리그) 사이드암 중에서는 최고였다"고 말했다.
대학 입학 당시 체중이 78kg에 불과했다. 운동을 통해 몸집을 키웠고 자연스럽게 구위와 성적이 향상됐다. 2014년 21세 이하 세계선수권대회와 2015년 하계유니버시아드에서는 태극마크도 달았다. 3학년 때인 2015년 대학리그에서 5승1패 평균자책점 3.79, 이닝당출루허용률(WHIP) 1.08을 기록했다. 자연스럽게 프로의 꿈도 영글었다. 그런데 예상하지 못한 문제가 발생했다.
대학교 4학년 때인 2016년 2월 일본 전지훈련 중 팔꿈치에 통증을 느꼈다. 처음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최원준은 "다치기 일주일 전부터 팔꿈치가 안 좋았다. 12월과 1월에 공을 만지지 않게 해 주셨는데 오랜만에 공을 던져서 그런가 보다 했다"고 했다.
검진 결과 오른 팔꿈치 내측측부인대(MCL) 손상이 발견됐다. 야구 인생의 두 번째 고비였다. 처음엔 참고 던지려고 했다. 신인 드래프트 지명을 앞두고 수술을 받는다는 건 최악. 하지만 4월 수술대에 올랐다. 그는 "그해 5경기만 뛰고 수술받았다. 감독님께서 양해를 많이 해 주셨다. 아픈데 팀에 있으면 감독 입장에선 쓰고 싶을 수밖에 없다고 하시더라. 미래를 위해 수술했으면 좋겠다고 하셔서 결정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이건열 감독도 당시 상황을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다. 이 감독은 "관리를 했는데 의욕에 차서 연습하다가 다쳤다. 페이스가 정말 좋았다"고 했다.
감독 입장에서 결단이 필요했다. 최원준은 부상 전까지 평균자책점 2.70을 기록했다. 성적을 내야 하는 상황에서 주축 선수가 수술을 받는 건 부담이다. 이건열 감독은 "4학년이니까 지명을 앞둬 (선수도) 부담이 있었다. 아버님께서는 휴학도 생각하셨는데 장래를 위해선 수술이 낫다고 판단했다. 다행스럽게도 두산이 선수를 좋게 봐 다행이었다"고 했다.
수술 이후 재활까지 17개월이 걸렸다. 두산은 2016년 6월에 열린 2017년 신인 1차 지명에서 '아픈' 최원준을 찍었다. 그해 1차 지명 중 유일한 대졸이었다. 계약금만 1억8000만원을 받았다. MCL 재활 절차를 밟고 있던 투수를 1차 지명에 선택한 건 사실상 '도박'에 가까웠다. 어쨌든 우여곡절 끝에 프로의 꿈을 이뤘다. 하지만 행복이 오래가지 않았다.
지명 4개월 만인 2016년 10월 갑상선암(갑상샘암) 진단을 받았다. 세 번째 위기였다. 그는 "입단 이후 구단 검진에서 갑상선암이 의심스럽다는 판정이 나와 정밀검사를 받았는데 갑상선암이 확인돼 오른쪽 갑상선을 떼어 냈다"고 했다. 다행스럽게도 전이되지 않아 빠르게 완치 판정을 받았고 2017년 6월부터 2군 경기를 뛰었다.
그런데 네 번째 위기가 너무 빨리 찾아왔다. 2017년 12월 구단 정기검진에서 또 한 번 갑상선암이 발견됐다. 한 달 뒤 이번엔 왼쪽 갑상선을 제거했다. 이건열 감독은 "얘도 참 힘들게 사는구나 싶더라. 좀 잘해 보려고 하면 아프고 살도 쪽 빠져서 한 번 찾아왔는데 마음이 아팠다"고 했다.
불굴의 의지로 극복했다. 그리고 2018년 7월 1군 데뷔전을 치렀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이름도 바꿨다. 최원준은 "프로에 와서 계속 부상을 당하니 개명을 했다. 지난해 9월부터 최원준(개명 전 최동현)이라는 이름으로 경기를 뛰고 있다. 작명소에서 여러 개의 이름을 해 줬는데 '높을 준(峻)'이 들어간 지금의 이름을 선택했다. 처음에는 너무 흔해 껄끄러웠는데 나한테는 이 이름이 좋다고 하니까 선택했다"고 했다.
올해 초반 기대는 높지 않았다. 1군 스프링캠프 명단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하지만 주전 선수들의 부진과 부상 공백을 채우기 위해 지난 4월 한 차례 1군 콜업을 받았다. 얼마 뒤 2군에 내려갔지만 5월 25일 두 번째 등록됐다. 그리고 승승장구를 거듭하며 오는 16일 잠실 LG전 '임시' 선발이라는 중책까지 맡게 됐다. 어깨 부상으로 1군에서 제외된 외국인 투수 세스 후랭코프의 빈자리를 채우는 게 역할이다. 시즌 7경기 불펜 등판해 평균자책점 1.17로 호투한 뒤 얻은 달콤한 결과였다. 피하지 않고 결전에 들어가는 부분에서 김태형 감독의 높은 점수를 받았다.
최원준은 "이렇게 뛸 거라고 생각도 못 했다. 지난해 열심히 하다 보니까 감독님께서 불러 주셨는데 너무 임팩트가 없었다. 그때 못 보여 줬던 모습을 보여 주고 싶었다. 열심히 하면 기회가 올 것으로 생각했다"고 말했다.
욕심은 크지 않다. 드래프트 미지명과 팔꿈치 수술 그리고 두 번의 갑상선암 수술까지 남들이 한 번 겪기 힘든 일을 모두 버텨 냈다. 그는 "목표는 없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이어 "지금처럼 한 걸음 한 걸음씩 가면서 1군에 오래 있고 싶다. 두산은 분위기도 좋고 항상 상위권에 있는 팀이다. 1군에서 하는 게 재밌다"고 강조했다.
적지 않은 우여곡절을 겪은 최원준의 야구 인생은 이제 출발선에 섰다. 그가 던지는 공 하나를 허투루 볼 수 없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