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20세 이하(U-20) 축구대표팀은 축구를 넘어 우리 사회 전반에 의미 있는 메시지를 남겼다. ▶목표를 명확히 설정하고 ▶구성원이 다 함께 뜻을 모으고 ▶가장 효율적인 방법을 찾아 실행하면, ‘언더독(underdog·약체)’이라도 세상을 놀라게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첫 경기였던 지난달 25일 포르투갈과 조별리그 1차전(0-1패)부터, 마지막 경기였던 16일 우크라이나와 결승전(1-3패)까지, 한국 U-20 대표팀은 국제축구연맹(FIFA) U-20 월드컵 무대를 23일간 도전을 누비며, 준우승이라는 값진 열매를 수확했다. 결승전 패배로 우승으로 가는 ‘마지막 한 걸음’을 내딛지 못한 게 아쉬웠다.
그래도 이번 U-20 대표팀은 1983년 멕시코 대회(당시는 세계청소년선수권)에서 세운 최고 성적(4위)을 뛰어넘어 새 역사를 썼다. FIFA 주관 대회에서 한국 남자 축구가 거둔 최고 성적이다. 기대 이상의 성과를 낸 배경에는 정정용(50) 감독의 ‘수평적 리더십’이 있었다. 대회를 준비하며 정 감독은 아들뻘 제자들과 격의 없이 대화하고 장난치고 어울렸다. 감독과 선수라기보다, 30살 차이의 형과 동생 같았다. 감독과 코치 등 스태프들, 코치들과 선수들 관계도 이와 다르지 않았다.
선수들끼리도 나이는 숫자일 뿐이었다. 팀의 주축인 1999년생 형들은 2001년생이지만 팀의 ‘에이스’라는 무거운 짐을 진 동생 이강인의 기를 살려주기 위해 기꺼이 “막내 형” “강인이 형”이라고 말했다. 동생의 짓궂은 장난을 웃으며 받아줬고, 시시콜콜한 잔소리도 들어줬다. 대표팀 소집훈련 초반, 언론과 팬의 관심이 온통 이강인에게 쏠릴 때도말없이 조연을 자처했다. 모두 한 마음으로 목표에 집중했다.
정정용 감독은 선수들에게 두 가지를 주문했다. 스무살 청춘에게만 출전 기회가 주어지는 이번 대회를 최대한 즐기라는 것, 그리고 가급적 많은 경기를 치러 경험을 쌓자는 것이었다. 선수들은 매 경기 신바람을 냈고, 전진에 전진을 거듭한 끝에 결승까지 올라가며 정 감독의 주문을 모두 달성했다.
대회가 진행되면서 이강인 외에도 많은 선수가 서서히 주목받기 시작했다. ‘한국 축구의 레전드’ 박지성(38)의 현역 시절 별명이기도 한 ‘언성 히어로(unsung hero·알려지지 않은 영웅)’라는 수식어가 그들에게도 따라붙었다.
대표적인 선수는 매 경기 수퍼 세이브 행진을 펼쳤던 골키퍼 이광연(20·강원)이다. 이번 대회에서 전 경기(7경기)에 출전, 수차례의 실점 위기를 놀라운 선방으로 막아냈다. 팬들은 그에게 ‘빛광연’이라는 별명을 선물했다. ‘빛현우’ 조현우(28·대구) 뒤를 이어 국가대표팀 차세대 수문장으로 성장해달라는 팬들의 염원이 깃든 별명이다.
1m93㎝의 큰 키를 앞세워 머리로 2골을 넣은 장신 스트라이커 오세훈(20·아산)은 ‘오렌테’로 불렸다. 토트넘(잉글랜드)에서 손흥민(27)과 함께 뛰는 스페인 출신 장신 공격수 페르난도 요렌테(34)에서 따온 별명이다. 또 경기 후반 ‘조커’로 투입돼 빠른 발로 상대 수비를 허문 엄원상(20·광주)은 리버풀(잉글랜드)의 이집트 공격수 모하메드 살라(27)에 빗대 ‘엄살라’다. 아르헨티나전과 세네갈전에서 골을 넣은 미드필더 조영욱(20·서울)은 ‘슈팅 몬스터’로 불렸다.
정정용 감독은 출전 기회가 적었던 선수들도 각별히 신경 썼다. 정 감독은 이들을 ‘특공대’ ‘응원단’ 등으로 부르며 관리했다. 경기 내내 “후반에 교체 투입돼 경기 흐름을 바꾸는 게 너희들 몫” “언제든 출전 지시가 떨어지면 기량을 100% 발휘할 수 있게 몸을 만들라”며 등을 두드렸다. 백업 미드필더 고재현(20·대구)은 “내가 특공대장, 수비수 이규혁(20·제주)이 응원단장을 맡았다”며 “선발진이 혹시라도 우리에게 미안함을 느낄까 봐 일부러 더 밝은 표정을 지었다”고 말했다.
백업 골키퍼 최민수(19·함부르크), 박지민(20·수원)은 비록 단 1분도 그라운드를 밟지는 못했지만, 훈련과 준비 과정에서 최고의 훈련 파트너를 자처했다. 또 동료들의 득점 순간에는 가장 먼저 그라운드로 달려나가 축하를 건넸다. 정 감독이 추구했던 ‘원 팀(one team)’의 마지막 소중한 퍼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