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팀 친구들이 ‘빛광연’이라는 별명을 두고 놀려요. ‘어깨 너무 올라갔다. 그만 내려라’라고도 해요. 크크.”
동물적 감각과 선방으로 한국을 국제축구연맹(FIFA) 20세 이하(U-20) 월드컵 준우승까지 이끌었던 골키퍼 이광연(20·강원FC). 그는 특유의 눈웃음을 지으며 이렇게 말했다. 한국 축구 최후방 수호신으로, 지난해 러시아 월드컵에 ‘빛현우’ 조현우(28·대구)가 있었다면, 이번에는 ‘빛광연’ 이광연이 있었다.
이광연을 18일 서울 서소문 중앙일보 본사에서 만났다. 그는 “지난해 6월 인천대 숙소에서 치킨 먹으면서 러시아 월드컵 TV 중계를 봤다. 독일전(2-0 승)을 보며 ‘진짜 멋있게 잘 막는다. 한국 축구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했다”고 회상했다. 그 대단한 일을 이번엔 그가 해냈다.
이번 대회에서 이광연은 이강인(18·발렌시아)과 함께 U-20 대표팀에서 가장 ‘핫’했다. 벌써 인터뷰와 예능 프로그램 출연 요청이 쇄도하고 있다. 그는 “지금 가장 하고 싶은 게 알람 끄고 자는 것”이라면서도 막상 카메라 플래시가 터지자 헐크 포즈를 취했다.
이광연의 선방쇼는 대회 내내 계속됐다. 지난 5일 16강전인 일본전에서도 눈부셨다. 운도 실력이랬던가. 후반 33분엔 일본 슈팅이 골포스트에 맞고 나오는 운까지 따랐다. 그는 “경기 때마다 골대를 만지며 ‘지켜달라’고 혼잣말을 한다. 정말 골대가 지켜준 것 같았다”며 웃었다.
한국은 9일 8강전 세네갈전에서는 승부차기 접전 끝에 3-2로 이겼다. 골키퍼인 이광연에게 스포트라이트가 집중됐다. 상대 다섯 번째 키커(카뱅 디아뉴)의 슛이 크로스바를 한참 넘어갔다. 그는 당시를 떠올리며 “승부차기에서는 골키퍼보다 키커가 더 부담된다. 그래서 무조건 눈을 마주치고 일부러 웃었다. 마지막 키커가 고개를 숙인 채 걸어오길래 막을 것 같다는 느낌이 확 왔다”고 말했다.
이광연은 4강전 에콰도르전 후반 추가시간에 레오나르도 캄파나의 헤딩슛을 몸을 날려 막아냈다. 그는 “상대가 머리를 트는 게 보여서 몸이 반응했던 것 같다. 경기 후 영상을 보면서 ‘내가 어떻게 막았나’ 소름이 돋더라. 선수들, 코치진, 국민 모두가 간절했기 때문에 막은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에콰도르전 종료 휘슬이 울린 직후에도 몸을 던져 슛을 막았다. 그런 집념이 깊은 인상을 남겼다. 그는 “휘슬 소리를 듣긴 했는데, 종료 휘슬인지 몰랐다. 이번 대회에 VAR(비디오 판독)이 많아서 ‘끝까지 방심하지 말자’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이광연에게는 자신만의 루틴이 있다. 축구화는 왼발부터 신는다. 바지는 오른쪽 다리부터 입는다. 또 전반전이 끝나면 유니폼으로 새로 갈아입는다. 그는 “고등학교 때부터 시작된 나만의 루틴이다. 이번 대회에서도 (그렇게 했는데) 결과가 좋아서 대회 내내 그랬다”고 말했다.
김대환(43) 골키퍼 코치는 훈련 때마다 1990년대 히트곡을 크게 틀어 이광연의 흥을 끌어올렸다. 이광연은 4강전 승리 후 김 코치 등에 업혀 기뻐했다. 그는 “코치님이 자신의 모든 경험을 다 넘겨주신다. 마치 전 재산을 넘겨주는 것처럼”이라고 고마워했다.
이광연은 결승전에서 패한 뒤 눈물을 쏟았다. 동생 이강인이 그의 두 뺨에 손을 대고 위로했다. 그는 “코치님이 ‘3년간 고생했다’고 말하는 순간, 지난 3년이 떠올라 울컥했다”며 “강인이가 ‘너무 잘해줬다. 시상식에 웃으며 올라가자’고 말했다”고 전했다.
오른쪽 풀백이었던 이광연은 초등학교 5학년 때 코치의 권유를 받아 골키퍼로 전향했다. 그는 “처음에는 새 장비(골키퍼 장갑)를 받아서 좋았다. 그런데 해보니 스릴 넘치는 포지션이었다”고 말했다. 지금의 그를 만든 건 노력이었다. 그는 “고교(김포통진고) 3년간 매일 6시에 일어났다. 학교 앞 계단에서 스텝을 밟아 오르내리는 훈련을 매일 많으면 1000개까지 했다”고 말했다.
1m84㎝의 키는 골키퍼로선 크다고 할 수 없다. 하지만 이광연은 “한 번도 작다고 생각해 본 적 없다. 오히려 더 빨리 반응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키가 그와 같지만 ‘거미손’으로 불리는 권순태(35·가시마)가 롤모델이다.
그는 “키가 작아서 골키퍼를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그들에게 희망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올해 강원에 입단했지만, 아직 데뷔전은 치르지 못했다. 그는 “U-20 월드컵 때처럼 간절하게 노력하면 기회가 오지 않을까”라며 희망에 부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