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인터뷰] 대한민국 아웃도어의 새로운 문화…'블랙야크'의 '명산100' 프로젝트를 아시나요
등록2019.06.24 07:00
패션 업계는 빠르다. 봄에는 가을을 생각하고, 겨울에는 여름을 떠올린다. 그만큼 민감하다. 유행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출시된 제품의 반응과 매출에 예민하다. '패스트 패션' 경쟁이 극에 달한 패션 업계에서 살아남기 위한 나름의 전략이다.
아웃도어 브랜드 블랙야크는 여타 브랜드와 사뭇 다른 길을 걷는다. 물론 빨라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무작정 빠르기만 하면 가장 빨리 무너진다는 사실도 인지한다. 브랜드를 옮겨 다니는 '빅 모델'에 지나치게 의존하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브랜드 라인 확장에도 신중한 편이다.
블랙야크는 2013년부터 산악 문화 활동 '명산100' 프로젝트를 운영하고 있다. 산림청이 선정한 대한민국 명산 100여 곳을 앱에 담고, 완등할 때마다 인증받을 수 있다. 11만 명의 회원이 '블랙야크 알파인 클럽(이하 'BAC')'에 모여 한국의 명산을 오른다. 아름다운 한국의 산을 오르고, 100개 산을 완등하는 과정 속에 블랙야크라는 브랜드 정체성과 소비자 결속이 단단해진다.
지난 19일 서울 강북구 우이동에 위치한 블랙야크 알파인 클럽 센터에서 명산100 기획자인 김정배 블랙야크 익스트림팀 팀장을 만났다. 그리고 “22년 전 동진레저에서 출발해 한국 대표 아웃도어 브랜드가 된 블랙야크만이 할 수 있고, 또 해야 하는 문화 마케팅”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블랙야크에 대한 자부심과 충성도가 높은 사람이었다.
- 블랙야크 알파인 클럽 센터는 어떤 곳인가. "BAC는 등산 교육 중심의 산악 문화 활동 및 교육 공간으로 기획된 장소다. 원래 인공 빙장이 있던 건물인데, 지난해 9월 블랙야크가 인수했다. 지층에 어린이들이 안전하게 등반을 체험하고 배울 수 있는, 전문 등반인 교육을 위한 실내 암장 '야크돔'이 있다. 이 밖에 매장은 물론이고 강의실·교육인들을 위한 숙소 등을 갖췄다. 히말라야 등반가들이 1~3세대까지 빠르게 양성됐으나, 4세대 성장은 느린 상황이다. BAC에서 '알피니스트(높고 험난한 산을 대상으로 모험적인 도전을 하는 등산가)'를 양성한다."
- BAC를 위한 투자금이 상당했을 것 같다. 등반과 등산의 차이점은. "어느 날 강태선 블랙야크 회장님이 '네가 그렇게 말하던 등반 교육 문화센터 한번 만들어 보라'면서 건물 매입 소식을 전해 주셨다.(웃음) 상당히 비싼 건물로 안다. 리모델링 작업도 대대적으로 이뤄졌다. 아웃도어 업계가 10년 전과는 또 다른 상황을 맞이했다. 기업의 수장이 상업적 목적이 아닌 교육과 문화를 위해 투자하기란 쉽지 않다. 이곳이 BAC라고 이름 지어진 배경에도 이런 블랙야크의 뜻이 담겼다."
- 산을 타게 된 계기는. "대학교에 복학한 뒤 온라인 카페를 통해 암벽등반을 하는 산악회인 '청암산우회'를 알게 됐다. 평소 등산하면서 인수봉을 오르는 등반가를 보며 늘 하고 싶었다. 그러나 등반은 등산과 달리 일정한 교육과 훈련·전문 장비가 필요하다. 청암산우회는 유명한 산악인을 다수 배출한 곳이라고 해서 취미 삼아 가입했다. 원래 대학 시절에 법조인을 꿈꿨는데…산에 빠져 살다가 이렇게 됐다.(웃음)"
- 명산100 프로젝트의 기획자다. "이 프로젝트는 산림청에서 한국의 명산 100곳을 발표한 것을 토대로 만들었다. 2016년에는 100곳의 명산을 BAC라는 스마트폰 앱에 담았다. 도전자들은 전국의 산을 오르고 인증받는다. 일종의 '게이미피케이션(관심 유도 혹은 마케팅 등에 게임 요소를 접목시키는 것)' 요소를 염두에 뒀다. 전국에 50명 단위의 알파인 클럽이 150여 개 있다. 그들이 경쟁적으로 산을 타고, 이를 통해 1~3등을 선정한다. 순위가 높으면 현금처럼 사용할 수 있는 '그린카드 포인트'를 주고, 최종 1등은 히말라야를 보내 준다. BAC는 약 11만 명이 속해 있다."
- 산을 잘 알지 않나. 명산 100곳을 추리는 데 영향을 많이 미쳤을 것 같은데. "산림청 제공 100곳 중 80~90%가 일치한다. 입산 금지 구역은 빠졌고, 지역적으로 약간의 형평을 맞췄다. 나는 산을 잘 알지만, 20년의 등산·등반 경험 동안 가 봤던 산이 총 10여 곳을 넘지 않더라. 유명하고, 가기 편하고, 내가 좋아하는 산에만 간 것이다. 대한민국에 산은 어느 곳에나 있지만 모두 다르다. 능선 뷰와 계곡은 물론이고 계절에 따라 다 다르다. '죽기 전에 100곳의 산은 가 봐야 하지 않을까'란 생각이 들었다. ‘100’이라는 숫자의 성취감도 있고…."
- 기획 계기는. "2010년만 해도 등산은 '공짜'라는 인식이 강했다. 동네 등산복 브랜드 대리점에서 버스를 무료로 대절해 주고, 점심 식사도 공짜로 제공한다. 일종의 공짜 마케팅이다. 산은 공짜로 오르면 되고, 할인가에 쇼핑만 하면 된다는 생각이 대중에게 퍼지기 시작한 지점이다. 이런 문화는 잘못됐다고 봤다. 산은 싸구려 마케팅이 어울리는 곳이 절대 아니다. 2013년 명산100 프로젝트를 시작하면서 이런 공짜 마케팅을 모두 중단했다. 훌륭한 등산 활동이 싸구려로 전락하는 걸 막고 싶었다."
- 그런 공짜 마케팅이 아직도 존재하나. BAC는 전액 자비로 움직이나. "이제 상당 부분 사라졌다. 아웃도어 시장과 매장들이 과거에 비해 가라앉으면서 불필요한 공짜 마케팅 비용을 쓰지 않는다. BAC 앱에 등록된 약 11만 명은 '도전단'을 꾸려 자신들이 비용을 모아서 버스를 섭외하거나, 카풀한다. BAC의 경우 명산100 프로젝트를 하고 있기 때문에 클럽은 매장에서 운영하는 경우가 많다."
- 마케팅과 매출에 도움이 됐나. "처음에는 블랙야크가 등산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제공하는 서비스 수준에 만족했다. 그런데 점차 도전자들이 늘어나고 BAC가 커지면서 브랜드에 활력이 생겼다. 매장에서 클럽을 운영하니, 다들 편하게 매장을 드나든다. 매장이 활성화된다는 것 자체가 긍정적이다. 소비로 연결될 확률도 높아지고, 이들의 결속력과 브랜드 충성도도 함께 강화된다. 앞으로 BAC 도전자들을 위한 제품을 공급하면서 선택의 폭도 넓어지리라 본다. 명산100 프로젝트를 위주로 한 BAC 앱 플랫폼이 브랜드에 긍정적 영향을 미친다."
- 패션 업계는 특성상 시간이 걸리는 마케팅을 망설인다. "아웃도어는 일반 패션과는 달라야 하나. 보통의 브랜드는 마케팅을 시작할 때 누가 보고, 얼마나 빨리 확산되고, 얼마나 빨리 매출이 나오냐에 관심을 갖는다. 그러나 아웃도어는 얼마나 빨리가 아니라, 얼마나 오래 잘 하느냐가 중요하다. 어떤 프로그램을 론칭할 때 올해만이 아니라 10년 후에도 이어지고 번성할 수 있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는 10년 후를 고민한다."
- 명산100 중 개인적으로 소개하고 싶은 산은. "소백산이다. 그동안 갈 이유가 없었는데, 명산100 프로젝트를 하면서 처음 갔다. 답답한 일이 많았던 시점인데, 소백산 바람을 맞으면서 '정말 와 볼 만한 산이구나' 싶었다. 소백산 정상에서 스트레스를 날렸다."
- 기억에 남는 도전자나 클럽이 있나. "11만 명의 도전자마다 다양한 사연과 이력을 갖고 있다. 아버지와 아들·암 투병 환자·청각장애인·가족·친구들까지 다양하다. 산에서 나를 만나면 '명산100 프로젝트로 큰 힘을 얻었다'고 말한다. 서로 끈끈한 연대가 있다. 클럽 내 도전자가 100곳을 완등하는 날에는 꽃다발을 들고 산 아래서 기다리기도 한다. 사람이 나이가 들면 퇴직 등으로 늘어난 시간과 여유만큼 인간관계를 새로 맺어야 한다. BAC 내에서 각종 경조사를 서로 챙기고 친하게 지낸다. 인간관계를 완전히 새롭게 쓰더라."
- 친구 단위 위주가 많은가. "아니다. 요즘은 가족 단위로 오거나 젊은이들도 산에 많이 온다. 아버지와 아들이 말은 많이 하지 않지만 함께 도전한다는 목표를 갖고 산을 오르면서 부자간 정이 끈끈해진다. 아버지와 딸, 어머니와 아들도 있다. 이미 명산 100곳을 완봉한 부모님이 자녀를 위해 새로 시작한다. 요즘 젊은이들은 떼 지어 다니기보다 삼삼오오 소규모로 모여 산을 타고 교류한다. 독립적이고 개인적이나 연결되는 묘한 매력이 산에 있다."
- 아웃도어 업계에서 브랜드가 이렇게 대규모로 명산100 프로젝트나 BAC 형태를 운영하는 사례가 없던 것으로 아는데. "블랙야크는 22년 전 동진레저에서 출발해 히말라야에서 탄생한 브랜드다. 강태선 회장님은 산악인이고, 히말라야를 수차례 다녀온 분이다. 그래서 등산과 등반의 근간을 이해한다. 알파인 클럽 센터 이름을 BAC로 지은 것도 이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가장 잘 만드는 것을 우리를 가장 잘 아는 고객에게 판매해야 한다. 포도 상자를 열었는데 포도가 아닌 사과가 나온다면 말이 되지 않는다. 유행 따라 아웃도어를 만들면 말이 안 된다. 결국 고객도 다 알아챈다. 11만 명의 BAC는 블랙야크에 엄청난 자산이자 고객이다."
- 이 밖에 지원이 있나. "현재 BAC의 산행을 이끌어 주는 '셰르파'라는 조직이 있다. 산행 경력이 있고 교육받은 이들로 구성됐다. 교수·학자·선생님·회사원·사업가 등 다양한 분들이 셰르파로 활동하고, 블랙야크로부터 약간의 지원을 받는다. 나는 익스트림팀 팀장으로 이런 모든 것을 기획하고 이끈다. 블랙야크에서 익스트림 팀원을 증원하고, 센터를 열고, 향후 프로젝트를 꾸준하게 이어 갈 수 있도록 지원한다."
- 넥스트 BAC는 무엇인가. "BAC는 플랫폼을 지향한다. 등산·등반을 하는 사람은 누구나 다운받고 들어올 수밖에 없는 플랫폼으로 진화하는 것이 목표다. 국내 명산 100곳 외에도 향후 중국과 일본·세계의 명산 정보도 넣고 취합할 예정이다. 특히 블랙야크는 백두대간을 연결하는 북한의 산에 관심이 많다. 4월 20일에는 '블랙야크 클럽데이'를 맞이해 3000명이 모여 '하나의 백두대간을 위하여'라는 퍼포먼스를 했다. 우리는 지속 가능한 마케팅을 원한다. 환경보호를 위한 '클린 마운틴' 평화, 하나의 백두대간이라는 지향점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