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장가 최대 성수기 여름시장 출격을 선언한 네 편의 영화 중 세 편이 공식 시사회를 통해 드디어 공개됐다. 15일 사극 '나랏말싸미(조철현 감독)'를 시작으로 17일 코믹 '엑시트(이상근 감독)', 22일 오컬트 '사자(김주환 감독)'까지 만반의 준비를 마친 대작들은 각기다른 장르로 다양성을 높였고, '보는 맛'을 뒤따르게 만들었다.
완성본 공개 전 사전 반응은 강자도 약자도 없었지만, 공개 된 후 반응은 꽤 엇갈리고 있어 눈길을 끈다. 언제나 그랬듯 '100% 만족'이란 없다. 기본적으로 이전 여름시장들과 비교하면 '하향평준화 됐다'는 의견도 지배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흥행작의 윤곽은 사실상 드러났다. 물론 최종 선택은 오로지 관객에게 달렸다. 이변과 반전 역시 관객의 몫이다. 관객의 선택이, 곧 결과다.
무엇보다 '라이온 킹'이 잡아 먹을 것으로 예측됐던 스크린에 여백이 생겼다는 점은 한국영화들에는 호재다. 흥행 자체는 청신호가 켜졌지만 그 이상의 신드롬급 화제성은 이미 물 건너간 모양새다. 때문에 한국영화 빅4를 기다리는 예비 관객들의 기대치는 조금 더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꽤 오랜시간 디즈니에 빼앗겼던 자리들을 하나 둘 되찾아 올 때가 됐다.
출연: 조정석·임윤아·고두심·박인환·김지영 감독: 이상근 장르: 코미디 줄거리: 유독가스로 뒤덮인 도심을 탈출 하는 청년백수 용남과 대학동아리 후배 의주의 기상천외한 용기와 기지를 그린 재난탈출액션 등급: 12세관람가 러닝타임: 103분 개봉: 7월31일 한줄평: 오락성>>>>>>개연성·작품성
신의 한 수: 전 연령층 타켓 확보는 확실하다. 작품 구성원부터 '가족'으로 설정해 각 연령층을 꼭 한 명씩은 출연하게 만들었다. 어떤 연령층의 관객이든 공감 포인트가 있을 수 밖에 없다는 뜻이다. 시작부터 영리하다. 생사가 오가는 재난 상황을 코믹하게 그려냈다는 것에 거부감 섞인 우려가 오가기도 했지만 이 역시 현실성을 발판삼아 응원의 목소리로 뒤바뀌게 만들 전망이다. 재난 속 이 악물고, 내 능력으로, 악착같이 살아남은 사람들. 목숨을 담보로 누군가에게 구걸하지도 않는다. 나를 가장 잘 알고, 내 목숨을 지킬 수 있는건 나 밖에 없다는 빠른 판단 능력은 '엑시트'를 그저그런 민폐 재난영화로 비춰지지 않게 만든다. 재난 현장 속 학생들의 등장은 그 자체만으로 눈물버튼이지만 '엑시트' 만큼은 작위적이지 않다. 상업오락영화의 첫번째 목표인 오락과 재미를 확실히 잡았다. 이미 절반의 성공이다. 무엇보다 '엑시트'는 "지금 우리가 처해있는 현실이 재난"이라며 취업난에 허덕이는 백수, 과거의 영광을 뒤로한 채 삶에 찌든 직장인을 주인공으로 유독가스 재난을 현실 재난에 빗대 표현하며 의미있는 메시지까지 전달한다. 앞이 보이지 않는 뿌연 가스 속에서도 길은 찾아지기 마련이고, 남들은 그저 무시하기만 했던 내 취미와 능력도 빛을 발하는 순간이 온다. 집안의 천덕꾸러기 골칫덩어리에서 엄마를 등에 업을 수 있는 자랑스런 아들로, 모두가 불가능할 것이라 발을 동동 굴렀지만 맨 손으로, 맨 발로 가장 높은 크레인 위에 올라선 용남(조정석)과 의주(임윤아)의 모습은 그래서 같은 길을 걸었던, 혹은 걷고 있는 많은 이들에게 짜릿한 카타르시스를 선물한다. 이 세상 쓸모없고 가치없는 일은 없다는 것을 '엑시트'는 시원한 코믹 오락영화로 펼쳐내는 도전을 감행했다. 그 모험의 끝은 성공적인 '완등'이 될 것이라는걸 믿어 의심치 않게 만든다. 여기에 함께 달리는 파트너까지 있다면 금상첨화. '엑시트'의 조정석·임윤아는 열심히 달렸고, 잘 뛰어 놀았다. 욕심내지 않았고, 잘 할 수 있는 것을 더 잘 해내는 재능을 뽐냈다. 찰떡같은 호흡에 능청스러운 열연으로 매력까지 더했다. 매 장면 '잘한다, 잘한다' 소리가 절로 터진다. 극중 주어진 모든 미션에 성공한 용남과 의주처럼, 조정석·임윤아도 다 해냈고 잘 해냈다. 크레인 꼭대기, 최정상에 오를 일이 머지않아 보인다. '엑시트'의 출구는 오직 흥행 길 뿐. 용남이 밟고 올라선 '이빨 빠진 사자상'이, '어쩌다보니 우연찮게' 경쟁작으로 맞붙게 된 '라이온 킹'과 '사자'의 운명이 될지도 지켜볼만한 장외 관전 포인트다.
신의 악 수: 꽤 오랜만에 'CJ 감성'으로 버무려진 영화를 마주했다. A급과 B급 사이 그 어느 경계선에 놓여있다. 대과거의 '퀵'(2011)이 슬쩍 떠오른다. 약 10여년 전 쏟아졌던 유행 장르가 2019년 버전으로 다시 만들어진 느낌이다. 신파·분노유발 캐릭터·수동적 주인공이 없다며 '3無'를 자신하지만 아주 없다고 볼 수도 없다. 한국, 전통의, 대가족이 등장하는데, 지극히 한국적이면서도 전형적인 분위기가 녹여지지 않을 수 없다. 민간인 사찰을 당하는 듯 현실성과 공감대를 불러 일으키지만 설정 자체가 신선하지는 않다. 재난이 발생하는 시작점도 마찬가지. 결국 음모·복수·자폭이 무고한 희생을 만든다. 오락적 요소와 가벼움을 살리기 위해 과감하게 잘라버린 것도 많다. 재난 영화지만 희생자를 디테일하게 비추지 않고, 뚝뚝 끊어지는 개연성도 마음으로 이해해야 한다. 주인공들의 결과는 해피엔딩이지만 열심이 벌여놓은 '재난'이라는 판에 대해서는 딱히 갈무리하지도 않는다. 쉽게 훌쩍 넘겨버린다. 현실성을 부각시키지만 결국 영화는 영화다. 맨 손으로 벽을 타고 오르는 용남, 크레인까지 기어 올라간 두 주인공의 모습은 아무리 마음을 열고 이해하려 해도 좀 난감하다. 드론과 유투버들의 등장도 개개인의 성향에 따라 철저히 호불호가 갈릴 것으로 보인다. 딱히 반갑지도, 웃기지도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