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공항에서 내려 해안도로를 따라 오른쪽으로 움직이면 나오는 동네가 ‘구좌읍’이다. 제주도를 4등분했을 때 오른쪽 윗동네 정도로 보면 되는데, 이곳은 이미 수많은 명소들로 관광객들의 발길이 이어지는 곳이기도 하다.
구좌를 대표하는 해변인 월정리 해수욕장이나 김녕 해수욕장은 여름이면 해수욕을 즐기기 위한 파라솔들이 그림을 연출하고, 해변을 바라보며 풍광을 즐길 수 있는 카페들이 지금도 계속 생겨나고 있는 제주의 핫 플레이스다. 얼마 전까지는 수국의 향연으로 구좌의 종달리 수국길에는 자동차 행렬이 이어졌고, 2800여 그루의 비자나무가 그늘을 만들어 주는 비자림은 여름 더위를 가시게 해 줘 관광객들의 발길을 사로잡는다.
지난 14일 찾은 제주시 구좌읍에는 이렇게 잘 알려진 곳들 말고 숨겨진 곳들도 많다.
분화구 한 바퀴 도는 ‘아부오름’
제주도는 360여 개의 오름이 있어 ‘오름의 왕국’이라 불리기도 한다. 제주도 여행을 하며 길게는 30~40여 분 걸리는 오름을 오르기도 했었는데, ‘아부오름’은 10분이면 정상에 도달할 정도로 쉬운 등산 코스였다.
아부오름은 건영목장 안에 위치한 오름으로 앞오름·압오름·아부오름이라고 불리는 곳이다. 제주의 오름은 비슷해 보이지만 다양한 모양을 하고 있는데, 아부오름은 마치 가정에서 어른이 좌정해 있는 모습 같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아부오름은 JTBC 프로그램 '효리네 민박'에서 가수 이효리가 방문하며 관광객들의 코스에 본격적으로 자리를 차지했지만,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건 역사적으로 제주 ‘신축민란’을 다룬 영화 ‘이재수의 난’에서 주요한 무대가 되면서부터였다.
신축민란은 천주교와 조선시대 제주 토호 세력, 관이 결탁해 민중을 탄압하자 이에 맞서 농민들이 봉기한 난이다.
아부오름은 대부분 풀밭으로 이뤄져 있어 여름이 그 어느 때보다 가장 아름다운 제주를 만날 수 있게 해 줬다. 게다가 정상을 만끽하는 다른 오름들과 다르게 분화구를 따라 한 바퀴 쉬엄쉬엄 걸을 수 있으니 푹푹 찌는 더위만 아니라면 여름의 푸름을 만끽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곳이었다.
인공으로 심은 삼나무와 상수리나무, 보리수나무 등이 숲을 구성하고 각종 야생화들이 오름 이곳저곳에서 자라는데, 가장 큰 볼거리는 분화구를 둘러싸고 가지런히 서 있는 삼나무라고 할 수 있다. 삼나무가 동그란 모양으로 심어져 있어 분화구를 따라 돌며 내려다보는 풍광이 특히 매력적이다. 나란히 줄 서 있는 삼나무 행렬이 잘 보이는 곳에 피크닉 매트를 깔고, 그림같은 경치를 만끽하며 소풍을 즐기는 이들도 있었다.
1990년대에는 나무 한 그루 없던 이곳은 현재 소나무가 자연번식하면서 서서히 숲오름으로 모습이 바뀌어 가는 중이다. 그 때문에 분화구 중심부의 삼나무들이 소나무에 가려지며, 아래가 잘 내려다보이는 곳을 찾아 한 바퀴를 돌아야 하는 수고로움이 생기게 됐다. 이국적인 초원이 눈앞에 펼쳐지는 ‘제주 마방목지’
제주대학교에서 5·16도로를 타고 한라산 방향으로 달리다 보면 양옆으로 펼쳐지는 초록 언덕이 눈을 사로잡는다. 흰 울타리가 도로와 초원을 나누며 ‘양떼 목장’이 떠오르기도 하지만, 이따금 보이는 갈색 말들이 제주마 방목지임을 알아채게 한다.
목적지가 아니었음에도 우연히 발견해 차를 세우는 관광객들도 꽤나 돼 보였다.
‘제주 마방목지’에 갓 도착한 한 관광객은 “여기 이런 데가 있었네”라며 말들이 모인 곳에서 눈길을 떼지 못했다.
비가 스산하게 오는 날이었음에도, 관광객들은 제주의 너른 초원을 배경으로 말과 함께 사진을 남기는 데 주저함이 없었다. 이날은 산안개가 초원을 휘감으며 먼 풍경은 감상할 수 없었지만, 날씨가 좋을 때는 남쪽으로 한라산 백록담이 보여 경치가 굉장하다고 한다.
말의 고장 제주에서 만나는 토종 제주마들이 한라산을 배경으로 풀을 뜯는 모습은 다른 지역에서 볼 수 없는 멋진 볼거리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많은 말들이 한라산 중턱인 견월악 인근 해발 700m 제주 마방목지에 모여 있는 이유는 종을 보호해야 할 천연기념물인 ‘제주마(일명 조랑말)’를 초원에서 마음껏 뛰놀 수 있게 하기 위함이라고 한다. 이곳은 규모만 해도 축구장(7140㎡)의 127.5배인 91만㎡다.
하지만 1년 내내 이 말들을 이곳에서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날이 추워지는 11월부터 4월 중순까지 말들의 월동을 위해 제주도 축산진흥원 내 제주마 보호구역으로 말들이 옮겨진다. 제주마가 따뜻하게 겨울을 보낼 수 있게 하기 위해 방목지보다 해발고도가 200m 낮고 인근의 숲이 겨울바람을 차단해 주는 곳으로 옮기는 것이다.
제주도와 문화재청은 제주마의 순수 혈통을 천연기념물 제347호로 지정해 보존하고 있다. 제주마는 성질이 온순하고 발굽이 강해 다른 말에 비해 질병 저항력이 강한 게 특징이다.
해녀가 잡은 제철 회로 맛보는 ‘회국수’
구좌읍과 조천읍의 경계 즈음에 위치한 동복리에 ‘회국수’로 유명한 곳이 있다. 동복리 해녀회에서 운영하는 해녀촌은 언제나 탱글탱글 싱싱한 회를 매콤하게 무쳐 국수와 함께 내는 회국수를 계절에 따라 다르게 맛볼 수 있다. 보통 여름에는 광어 등이 들어가고, 겨울이면 방어나 부시리 등이 횟감으로 사용된단다.
고추장 베이스에 고소한 기름 향이 듬뿍 밴 회국수는 우리가 늘 맛보던 그 맛일수도 있지만, 시큼한 맛은 식초를 사용하지 않는 제주도 스타일이라고 한다. 창밖으로 펼쳐지는 제주 바다를 눈에 담으며, 입으로는 제주의 맛을 담으니 ‘해녀촌’ 자체가 제주도나 다름없다.
회국수 외에도 성게알이 굵은 면발 위에 투박하게 올려진 ‘성게국수’도 이 집의 별미다. 보통 면발보다 굵은 면이 쫄깃함을 더하고, 바다 내음 짙은, 허여멀건 국물은 입맛을 돋우니 회국수와 함께 즐겨도 일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