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스포츠에서 구단-선수 계약의 상한액을 제한할 수 있을까. 가능하다고 해도 그게 맞는 방향일까.
KBO리그에 프리에이전트(FA) 계약 상한제가 도입될 전망이다. 다른 종목, 다른 스포츠에서 찾아보기 힘든 기이한 규제다. FA 상한제가 정말로 도입된다면 부작용도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지난주 KBO리그는 '프리에이전트(FA) 계약 상한선' 도입으로 시끄러웠다. 선수 노조의 성격을 갖고 있는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선수협)가 이를 받아들이기로 했다는 보도가 나오면서였다.
이에 앞서 지난해 9월 KBO 실행위원회(10개 구단 단장 모임)는 선수협에 4년 80억원의 FA 상한액을 제안했다. 연 20억원이 넘지 않으면 장기 계약도 가능하도록 했다. 아울러 FA 연한(9년, 대졸 선수는 8년) 단축, 선수 최저연봉(2700만원) 인상 등 저연봉·저연차 선수들에게 유리한 옵션도 함께 내걸었다.
선수협은 FA 상한제에 강한 거부감을 드러내며 이를 거부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여론은 선수협에게 우호적이지 않았다. 때문에 10개월 후 선수협이 구단과 KBO의 제시안을 받아들인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선수협 이대호 회장(37·롯데)은 지난 18일 취재진에게 "선수들이 FA 상한선을 수용한 게 아니다. 아직 협상을 시작하지도 않았다. 우리는 FA 보상제도 철폐만을 이야기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앞서 김선웅 선수협 사무총장은 다른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FA 총액 상한제를 수용한다는 입장을 KBO에 전달했다"고 밝혔다.KBO도 지난 17일 선수협의 입장을 전달받았다고 밝혔다. 이 문서에는 FA 상한제를 수용하겠다는 내용이 담겨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선수협은 FA 상한제를 조건부로 받아들이려는 것 같다. 선수협은 FA 보상 규정이 선수에게 과도하게 불리하다고 주장하며, 이를 바꾸기 위해 FA 상한제까지 수용하려는 것이다. 현행 KBO규약은 다른 구단의 FA 선수를 영입한 구단은 선수의 원 소속 구단에 해당 FA의 전년도 연봉의 200% 보상금과 선수 1명(보호선수 20명 외)을 줘야 한다. 보상선수를 주지 않으면 해당 FA의 전년도 연봉 300%를 보상해야 한다.
FA 제도 정비는 구단은 물론 이제 대부분의 선수들도 원하는 바다. 시장이 뜨거울 때는 각 구단은 보상선수와 보상금을 내주면서도 FA를 영입했다. 그러나 최근 경기가 좋지 않고, 각 구단의 선수 운영 방침이 '외부 영입'보다 '내부 육성'으로 바뀌고 있는 추세다.
이로 인해 벌어진 현상이 'FA 양극화'다. 지난 겨울 두산을 떠난 '특급 포수' 양의지(32)는 NC와 4년 125억원에 계약했다. 반면 중소형 FA들의 계약은 크게 위축됐다. 노경은(전 롯데)은 반 강제로 은퇴한 상태다.
KBO와 선수협은 올해 안으로 개선안을 마련할 예정이다. 보상제도가 완화되면 FA 이동이 수월해지고, 이런 경우 약팀의 전력 상승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선수와 구단이 원하는 크게 다르지 않다.
그렇다고 FA 상한선을 도입하는 게 서로에게 정말 이익이 될까. 이에 대해 양측은 더 고민해야 할 것 같다.
FA 상한제는 지난해 KBO 실행위원회에서 나온 아이디어다. 모든 구단이 찬성한 것도 아니다. 특급 FA를 영입해 우승에 도전하려는 경우, FA 상한제가 오히려 발목을 잡을 수 있다는 걸 구단도 안다.
특급 선수를 연 20억원 이내로 묶으려면 초장기 계약이 이뤄질 가능성이 크다. 또 여러 편법과 불법(FA 자격을 얻기 전 다년계약 등)이 등장해 시장을 왜곡할 수도 있다.
그러나 "KBO리그의 거품을 빼야 한다"는 위세에 FA 상한제를 반대하는 목소리가 묻혔다. 10개월 후 선수협이 이를 받아들일 수 있다고 한 것은 더 놀랍다. 시장경제에서 특정 선수의 계약을 제한하는 게 정당한 일인지 구단과 선수 모두가 의문을 가져야 한다.
자본주의의 천국이라는 미국도 프로스포츠에서 샐러리캡(Salary cap·연봉 총액 상한제) 또는 사치세(Luxury tax·한도를 초과한 총연봉에 대한 벌금) 제도를 운영한다. 리그의 균형발전, 자원의 분배정의 실현을 위해서다. 특정 선수의 계약을 제한하는 방법을 사용하지 않는다.
FA 상한제는 새 외국인 선수 계약 상한제(100만 달러)와 비슷한 시기에 논의됐다. 외국인 선수 보유 한도나 연봉 상한제는 국내 유치산업(국내 선수) 보호를 위한 제도다. 외국인 선수 계약은 2년째부터 제한이 풀린다. 이대로라면 국내 선수들이 더 강력한 규제를 받게 된다.
뛰어난 FA를 4년 80억원에 묶겠다는 것도, FA 보상제도를 철폐하자는 것도 지나친 욕심이다. 양측이 본격적인 협상을 시작하기도 전에 FA 제도만이 부각되고 있다. 선수협과 KBO의 이번 협상은 부디, 핑퐁게임이 아니라 위기의 KBO리그를 전체를 위한 토론의 장이 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