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영은 지난해 10월13일 잠실 두산전 출전을 마지막으로 현역에서 물러났다. 1999년, 쌍방울에서 데뷔한 그는 1군 무대에서 20시즌을 뛰며 리그를 대표하는 외야수로 인정받았다. 역대 9번째로 통산 2000경기에 출장했고, 10번째로 2000안타를 돌파했다. 16명에 불과한 3000루타도 넘어섰다.
의미 있는 수식어를 남겼다. 이진영은 2006년 3월 5일 도쿄돔에서 열린 2006 월드베이스볼클래식 예선 1라운드 3차전 일본과의 경기에서 선발 출장했다. 0-2으로 뒤진 4회말 2사 만루에서 상대 타자 니시오카 츠요시의 안타성 타구를 다이빙캐치로 잡아냈다. 대표팀은 이후 1점을 추격한 뒤 이승엽이 8회 공격에서 역전 투런포를 치며 3-2로 승리했다. 이후 그는 국민 우익수라로 불렸다.
KBO 리그에서도 족적을 남겼다. 2008시즌에는 SK의 한국시리즈 우승을 이끌었고, 2013시즌에는 LG가 11년 만에 포스트시즌에 진출하는데 기여했다. 현역 마지막 세 시즌은 신생팀 KT에서 후배들을 이끌며 리더 역할을 했다.
현재 그는 일본 구단 라쿠텐 소속으로 코치 연수를 받고 있다. 오는 11월 열리는 프리미어12 국가대표팀 전력 분석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28일 수원 케이티위즈파크에서 열린 KT와 LG전을 앞두고는 팬들과 현역 선수로 마지막 인사를 할 기회를 가졌다. 다음은 현역 생활 20년을 돌아본 이진영의 일문일답.
- 정식 은퇴식을 앞둔 심정은. "현역으로 뛴 20년 동안 정말 열심히 했다. 마지막이 다가올 줄 몰랐다. 전날에는 잠을 설치기도 했다. 날씨가 좋지 않아서 기상청 소식을 계속 확인했다. 그래도 팬분들을 보니까 그런 근심이 잊혀졌다. 좋은 추억이 생겼다"
- 팬 사인회에서 오랜 만에 팬들과 호흡했다. "선수로는 마지막 팬 사인회였다. 마음이 뭉클했다. 우시는 팬도 계셔서 울컥했다. '선수 인생은 마무리됐지만 꼭 돌아올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전해 드렸다."
- 은퇴를 아쉬워한 팬이 많다. "추측이나 오해도 있던 것으로 안다. 그러나 모두 내가 결정한 것이다. 많은 선배의 양보를 받은 덕분에 저연차 시절부터 뛸 수 있었다. 고참이 되면 후배들에게 자리를 양보할 줄 아는 선수가 되고 싶었다. 내 선택에 후회는 없다."
-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다면. "국가 대표팀에서 뛰면서 얻은 영광의 순간, SK에서 우승을 하고 느낀 환희, 포스트시즌 진출에 기여한 LG 시절 모두 기억이 난다. KT에서도 후배들에게 도움이 되는 선배가 되고 싶었다. 뜻깊은 시간이었다. 20년 동안 정말 긴 시간을 보냈다."
- 가장 의미 있는 별명이 있다면 "아무래도 국민 우익수가 아닐까. 안 좋은 별명조차도 정말 감사했다."
- 은퇴 뒤 오랜 시간이 지났다. 달라진 점이 있나. "정해진 스케줄로만 생활했다. 자율이 어색하다. 처음에는 가정에 충실했다. 그동안 좋은 아빠나 좋은 남편은 아니었다. 일본에서 코치 연수를 할 때는 또 다른 야구를 배웠다."
- 선배들에게 받은 조언이 있다면. "은퇴를 결정한 뒤 힘든 시기가 있었다. 그러나 먼저 은퇴한 이병규 선배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좋은 얘기를 해줬다. 박용택 선배도 그랬다. 많은 얘기를 듣고 다시 한 생각이지만 은퇴를 후회하진 않는다."
- 가장 기억에 남는 지도자가 있다면. "김성근 감독님이 정말 많은 훈련을 시켜주셨다. 배운 게 많다. 강병철, 조범현, 김재박 감독님께서도 기회를 많이 주셨다. 개인적으로도 많은 사랑을 받은 것 같다."
- 어떤 선수로 기억되고 싶은가. "내세울 수 있는 성적은 2000안타라고 생각한다. 군산에서 올라온 촌놈이 야구계에 이름을 남길 수 있는 기록이었다. 성적도 중요하지만 결정적인 순간 강했던 선수, 좋은 흐름에서 좋은 결과를 이끌어줄 수 있는 기가 좋은 선수로 기억되고 싶은 마음도 크다."
- 제2의 야구 인생에 대한 각오를 전한다면. "코치 연수를 받으면서 많은 생각을 했다. 어린 시절에는 코치님은 다 선생님 같았다. 요즘에는 다른 모습의 지도자도 있다고 생각한다. 곁에서 선수의 성장을 진심으로 도와주는 지도자가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