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원큐 팀 K리그와 유벤투스(이탈리아)의 친선경기가 열린 26일 밤 서울월드컵경기장. 비안코네리(흰색과 검은색 줄무늬를 뜻하는 말로 유벤투스의 애칭) 유니폼을 입은 관중이 자조적으로 중얼거렸다. 45분 이상 출전을 약속했던 크리스티아누 호날두(33·유벤투스)가 후반 시작 후에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자 반 농담으로 한 농담이었다.
그러나 후반 시작 후 20분 가량이 지난 상황에서 중계 카메라가 벤치의 호날두 를 비추자 관중석에선 "우우~"하는 야유가 쏟아졌다. 전반전까지 그의 모습이 비출 때마다 환호와 박수가 쏟아지던 것과는 180도 달라진 풍경이었다. 야유에 그치지 않고 관중들은 "호날두! 호날두!"를 외치며 그가 그라운드에 등장하길 재촉했다. 하지만 호날두는 미동도 하지 않았고, 출전은커녕 몸푸는 모습조차 보이지 않았다. 결국 호날두는 단 1분도 뛰지 않았고, 팬들은 "메시! 메시!"를 연호하며 성난 팬심을 표출했다.
호날두가 '노쇼' 논란에 휩싸이면서, 9년 전 FC 바르셀로나 방한에서 메시가 보여준 모습이 재조명을 받고 있다. 이번 호날두의 '노쇼'로 인해 당시 '보여주기식' 15분 출전에 그쳤다고 비난받았던 메시의 재평가가 이루어지는 중이다. 메시는 2010년 8월 4일 열린 K리그 올스타와 바르셀로나의 친선경기에서 전반 29분 교체로 출전해 15분을 뛰며 2골 1도움을 기록하고 전반 종료와 함께 교체됐다. 몸상태가 좋지 않은데다, 출전 보장 조항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15분을 나와서 뛰고 떠난 메시와 출전시간 0분의 호날두가 비교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메시를 재평가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건 9년 전 바르셀로나가 남긴 상처가 또 한 번, 더 끔찍한 형태로 반복됐다는 점이다. 메시의 15분 출전 재평가로 미화되긴 했지만 9년 전 한국을 찾은 바르셀로나의 무성의한 태도를 기억하는 팬들은 유벤투스의 오만한 행동에 또 한 번 상처받았다. 당시 바르셀로나는 팀의 주축 선수였던 스페인 국가대표 8명을 방한 명단에서 은근슬쩍 제외하고, 메시는 기자회견 내내 "피곤하다"는 말을 반복하며 성의없는 태도를 보였다. 한술 더 떠 페프 과르디올라 주제프 감독은 전날 기자회견에서 컨디션 조절을 이유로 메시가 결장할 것이라고 알려 대규모 환불 사태가 벌어졌다. 주최사와 연맹 측이 밤새 설득해 겨우 이뤄 낸 결과가 메시의 15분 출전이었지만, 경기장을 찾은 관중은 3만2000여 명에 그쳤다. 국내 축구팬들에겐 그야말로 다시 떠올리기도 싫은 사건으로 남았다.
유벤투스 방한 소식이 알려지면서 많은 이들이 9년 전 기억을 떠올리며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한국프로축구연맹과 주관사 더페스타 측은 계약서에 '호날두 45분 이상 출전' 조항이 삽입돼 있다며 안심시켰지만 보기 좋게 뒤통수를 맞았다. 바르셀로나 방한 때보다 더 촉박한 스케줄에 더 무성의한 태도 그리고 한국 축구와 K리그에 대한 존중이라곤 눈곱만큼도 보이지 않은 호날두의 결장까지 이어지면서 유벤투스전은 9년 전을 뛰어넘은 최악의 기억으로 남았다.
분명한 것은 9년 전에 이어 이번 유벤투스전으로 연맹이 잃어버린 올스타전의 본질을 찾아야 한다는 과제를 받았다는 사실이다. 올스타전은 K리그의 축제가 돼야 한다. 리그를 뛰는 선수들이 주인공이 되고, 리그 팬들이 즐길 수 있는 잔치가 올스타전이다. 흥행을 이유로 유명 외국 구단을 초청해 K리그를 들러리로 전락시키며 자청해서 수모와 굴욕을 당하는 일은 더 이상 없어야 한다.
물론 연맹은 이번 경기가 '올스타전'이 아니라고 강조한다. 그러나 '하나원큐 팀 K리그'라는 이름으로 각 구단의 선수들을 한 팀으로 불러 모아 치르는 경기를 올스타전이 아니라고 할 수 있을까. 행사 주최가 아닌 참가팀이라는 말로 책임을 모두 피하기도 어렵다. 9년 전과 같은 잘못을 반복한 연맹은 바르셀로나 때와 똑같이 이번 사태 이후에도 사과문을 발표했다. 이게 연맹이 발표하는 마지막 사과문이 되길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