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4년간 침체기를 겪은 여자 유도. 하지만 2020도쿄올림픽을 1년 앞두고 신예들이 국제 무대에서 두각을 드러내며 부활의 날개짓을 시작했다. 이런 세대교체의 중심에는 배상일 여자 유도 대표팀 감독이 있다. 최근 일간스포츠는 배상일 감독과 만나 한국 여자 유도의 세대 교체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봤다. 사진=아디다스 제공 한국 유도는 역대 올림픽에서 11개의 금메달을 수확한 효자 종목이다. 하지만 여자 유도만 따지면 얘기가 달라진다. 2012년 런던 대회에서 금 2개를 따낸 남자 대표팀과 달리, 1996년 애틀란타 대회에 나섰던 조민선이 마지막 금메달리스트(66kg급)다. 지난 24년간 침체기를 겪은 여자 유도는 2020 도쿄올림픽 1년 앞두고 부활의 날개짓을 시작했다. 리우올림픽 이후 발굴한 신예들이 국제 무대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세대교체의 중심에는 배상일(50) 여자 대표팀 감독이 있다. 최근 서울 방이동 한 카페에서 만난 배 감독은 "지난달 30일 자그레브(크로아티아) 그랑프리에서 돌아오자마자 진천선수촌으로 복귀했다"며 "은메달 1개와 동메달 1개를 수확했지만 세대 교체 마무리 단계에 접어든 지금 휴식보다는 회복 운동으로 컨디션을 조절하는 게 우선이라고 판단했다. 선수들도 분위기를 아는 지 더 열심이다"고 말했다.
배 감독은 1996년 선수생활을 마친 이후 15년 째 여자팀만 지휘하고 있는 베테랑이다. 사진=배상일 감독 제공 배 감독은 국내 유도계에서 첫 손가락에 꼽히는 여자 유도 전문가다. 여자 유도에서 대표팀 코치와 감독을 모두 지낸 지도자는 배 감독이 유일하다. 1996년 선수 생활을 마친 배 감독은 화봉공고에서 지도자 경력을 쌓은 뒤 2004년 신생 여자팀 동해시청 감독으로 부임했다. 이후 그는 여자 대표팀 코치(2010~2012년)와 현 사령탑 기간을 포함해 15년째 여자팀만 지휘하고 있다. 체육과학연구원과 함께 연구해 한국 선수들이 취약한 굳히기(누워서 하는 유도) 기술 훈련 프로그램을 도입하고 여자 유도의 성적 향상에 기여한 경력도 있다.
배은혜(2010년 아시안게임 은), 김민정(2014년 아시안게임 은), 박유진(2018년 아시안게임 은) 등은 배 감독이 길러낸 대표적인 선수들이다. 대표팀에서 지도한 선수들까지 더하면 제자는 셀 수 없이 많다.
여자팀 부임 초기에는 여자 선수의 생각을 읽지 못해 종종 난처한 상황을 겪었다. 그는 "동해시청에 부임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대표팀이 차출돼 오랜만에 팀에 복구한 선수가 '감독님, 다른 선수들만 너무 예뻐하시는 거 아녜요'라고 서운함을 드러낸 적이 있다. 다른 선수들도 대표팀에 뽑히기를 바라는 마음에 상대적으로 더 많은 지도 시간을 할애했는데, 그 얘기를 듣는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평생 남자들과 동고동락하다보니 여자 선수들의 생각과 관점이 다르다는 것을 몰랐다"며 웃었다.
이후 배 감독은 여자 운동선수를 연구한 논문을 닥치는대로 다 찾아 읽었다. 동시대에 대표팀 생활을 한 여자 국가대표 출신 조민선(47·한체대 교수), 정성숙(47·진천선수촌 부촌장), 현숙희(46·광영여고 감독)에게도 조언을 구했다. 한동안 중단했던 학업도 다시 시작했다. 그는 트레이닝 주기와 방법에 대해 파고들어 2010년 용인대에서 체육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여자팀 부임 초기 소통에 어려움을 겪었다는 배 감독. 이에 배 감독은 여자 운동 선수 관련 연구 논문을 읽고, 동 시대 대표팀 여자 국가대표 출신 동료들에게 조언을 구했다. 최근 배 감독은 훈련을 앞둔 스트레칭 시간땐 DJ로 변신해 흥겨운 음악으로 선수들의 부담감과 스트레스를 풀어주는 유도박사가 됐다. 지난 2017년 파리 그랜드슬램에서 여자 57KG급 금메달을 목에 건 권유정(오른쪽)과 기뻐하는 배상일 감독의 모습. 배 감독은 '여심'을 궤뚫어보는 '유도 박사' 됐다. 배 감독은 본격 훈련을 앞둔 스트레칭 시간엔 DJ로 변신하기도 한다. 그는 직접 선곡한 최신곡을 직접 들고온 스피커로 튼다. 흥겨운 음악에 맞춰 몸을 풀다보면 부담감과 스트레스도 조금씩 풀린다. 그렇다고 훈련이 느슨한 건 아니다. 그는 훈련 중엔 직접 몸을 던져 시범을 보이는가 하면 20여 명의 대표팀 선수들을 일일이 쫓아다니느라 더 많은 땀방울을 흘린다. 그러면 선수들도 기합이 들어간다. 훈련장에선 자상하고 평소에는 친구처럼 다가오는 그를 두고 선수들은 '훈련장 아빠' '매트밖 오빠'로 부른다.
배 감독은 "고민이 있는 선수는 훈련 때 몸을 푸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여자와 남자 선수의 훈련은 완전히 다르다. 서두르기보다는 충분히 기다려주며 소통해야 동기부여와 기량 향상에 도움이 된다"며 "결국 '디테일'의 차이"라고 말했다.
진심을 다해 지도한 선수들은 세대 교체의 주역으로 떠올랐다. 자카르타아시안게임 여자 52kg급에서 은메달을 따낸 박다솔은 용인대 시절까지 국내용 선수에 그쳤다. 하지만 배 감독을 만나 세계 정상급 선수로 올라섰다. 박다솔은 작년 자카르타아시안게임에서 은메달을 따내며 상승세를 타기 시작했다. 여자 유도는 이 대회에서 7체급 중 5체급(금1·은4)이나 결승에 오르며 세계 최강 일본(금6·은1)을 위협했다. 아시안게임 이후부터 두각을 나타낸 강유정(48kg급)과 권유정(57kg급)은 차세대 에이스로 성장했다. 재일교포 김지수(57kg급)과 조목희(63kg급)도 가파르게 성장하고 있다.
배 감독은 내년 이맘때 유도 종국 일본에서 한국의 금빛 메치기를 꿈꾼다. 사진=배상일 감독 제공 가족은 배 감독의 든든한 응원군이다. 배 감독은 스포츠 집안이다. 아내 연수미(49) 씨는 대한테니스협회에서 근무중이고, 아들 배강열(22)와 배규열(19)은 나란히 유원대와 여주대 야구부에서 프로 선수를 꿈꾸고 있다. 배 감독은 "국제대회, 전지훈련, 선수촌 합숙생활을 병행하면 1년에 집에 가는 건 50일도 안 될 만큼 고되다"며 "다행히 아내와 두 아들 모두 스포츠계에 몸을 담고 있어 많을 힘을 준다. 나도 가족을 떠올리며 각오를 다시 다진다"고 했다.
배 감독은 내년 이맘때 유도 종주국 일본에서 금빛 메치기를 꿈꾸고 있다.
"현역 시절 모든 대회에 다 나가봤는데, 올림픽 무대 만큼은 밟아보지 못했습니다. 도쿄올림픽에서 올림픽 금메달의 한도 풀고, 국민에게 오랫동안 전하지 못한 여자 유도 금메달 소식을 전해야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