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사자(김주환 감독)'로 관객들과 만나고 있는 한국영화 역사의 산증인 안성기는 6일 방송된 MBC FM4U 'FM영화음악 정은채입니다' 보이는 라디오에 출연, 세 곡의 아름다운 영화음악을 추천하며 다양한 영화 이야기를 나눴다.
평소 라디오를 좋아한다는 안성기는 "기억하는 분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나도 과거에 6개월 정도 라디오 진행을 한 적이 있다. 83년도에 FM이 아닌 AM으로 '0시의 플랫홈'이라는 채널이었다. 녹음을 많이 하기는 했지만 그 6개월의 시간이 너무 좋았다. 좋아하는 음악 듣고, 청취자들과 속삭이듯이 이야기 나누고, 하루의 정리를 하면서 나만의 시간을 갖는 것 같아 정말 좋았다"고 회상했다.
여름시장 텐트폴 영화로 공개된 '사자'는 격투기 챔피언 용후(박서준)가 구마 사제 안신부(안성기)를 만나 세상을 혼란에 빠뜨린 강력한 악(惡)에 맞서는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안성기는 이번 영화에서 강한 신념을 바탕으로 목숨을 걸고 악을 쫓는 구마 사제 안신부를 맡아 캐릭터와의 높은 싱크로율로 뜨거운 반응을 얻고 있다.
'퇴마록' 이후 다시 한번 신부 역할을 맡아 사제복을 입게 된 안성기는 "'사자'의 안신부는 '퇴마록' 때와는 또 다른 캐릭터다. 이번에는 액션도 있고, 많이 회자되고 있는 라틴어도 외워야 했다. 재미도 있었지만 힘도 많이 들었다"며 "다만 김주환 감독이 처음 시나리오 갖고 왔을 때부터 안신부는 안신부였다. 애초 나를 두고 썼다고 하더라. 무척 감동했고 기분이 너무 좋았다. 구마부터 인간적인 모습까지 배우로서 많은 것을 전달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안성기는 이번 영화에서 엄청난 분량의 라틴어 대사를 소화했다. "지난해 5월에 시나리오 받고 촬영 두 달 전부터 라틴어 연습을 시작했다"고 밝힌 안성기는 "여름에 시작해 겨울에 끝났으니 한 6개월 정도는 계속 외우고 또 외웠다. 그래서 지금까지 후유증이 남아있다. 빨리 털어내야 하는데 혼자 멍하지 있으면 여전히 중얼중얼거린다"고 토로해 웃음을 자아냈다.
이어 "무엇보다 내가 R 발음이 잘 안 된다. 혀가 돌아야 하는데 아무리 해도 그게 안되더라. 라틴어 선생님께 '이렇게 해도 되냐'고 했더니 '상관 없다'고 하더라. 잘 들으면 내가 하는 라틴어는 일반적인 라틴어와 좀 다르다. 특별출연 한 최우식 씨는 발음이 아주 좋더라. 자랑스럽게 '잘했다' 하지는 못하지만 최선을 다 했다. 힘있게 몰아부치려 애썼다"고 겸손함을 표했다.
액션 도전은 희망사항으로만 남았다. 안성기는 "액션은 극중 격투기 챔피언인 박서준과 악의 화신 지신 역할의 우도환 씨가 맡았다. 굉장한 액션을 보여준다"며 "사실 나도 처음엔 액션을 하려고 했다. 시나리오 읽고 내 나름대로 액션 합을 꾸며봤는데, 첫 촬영날 무술 감독에게 '이렇게 이렇게 보여주겠다' 했더니 '선배님 안 됩니다. 선배님은 그냥 당하셔야 합니다'라고 하더라. 굉장히 아쉬웠다. 그래서 유일한 내 무기라 생각한 라틴어에 더 많은 공을 들였다"고 설명했다.
박서준·우도환 등 젊은 배우들과 호흡에 대해서는 "아무래도 날 부담스러워 할 것 같았다. 아버지보다 내가 조금 더 나이가 들었을테니까"라며 미소짓더니 "그런 부담감을 빨리 떨치게 하고 싶었다. 먼저 확 다가갔고, 선생님이라 부르기 전에 '선배님'으로 호칭 정리까지 끝냈다. 이야기도 많이 나눴다. 그러니까 한결 편안해지면서 호흡도 잘 맞아 떨어졌다. 즐거운 시간이었다"고 회상했다.
이날 청취자들은 안성기의 수 많은 필모그래피를 하나하나 읊으며 재미있고, 감동 받았던 사연들을 쏟아냈다.
이 과정에서 안성기는 영원한 충무로 콤비 박중훈을 언급하며 "박중훈과는 '칠수와 만수'로 처음 만났고, '투캅스'에 이어 '인정사정 볼 것 없다', '라디오스타'까지 네 작품을 같이 했다. 그리고 전부 성공했다 둘이 만날 때마다 '이렇게 다 성공시켰는데 왜 우리를 안 써주냐. 둘이 해서 실패한 것이 뭐가 있니'라는 말을 하곤 한다. 박중훈 씨와는 좋은 케미가 있는 것 같다"고 껄껄 웃었다.
오랜시간 다양한 작품과 캐릭터를 기억해 주는 관객들의 이야기를 듣는 기분은 어떨까. 안성기는 "당연히 너무 고맙다. '영화를 하는 의미가 이런 것이구나' 싶다"며 "전쟁 후 57년도부터 영화를 시작했고, 고등학교·대학교·군 시절을 잠시 제외하고는 다시 영화를 했다. 올해사 한국영화 100년인데 그 속에 62년을 있었다. 하지만 내 욕심은 여기서 끝이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계속 꾸준히 하고 싶다"고 강조했다.
또 "내가 지난 연말에 기자협회에서 공로상을 받았다. '예전에 공로상 받으면서 이제는 공로상 안 받겠다고 선언했는데 주면 어쩌냐. 그래도 한국영화 100년을 앞두고 주는 상이라 하니 의미있게 잘 받겠다. 최근 뜸했지만 곧 배우로 다시 돌아오겠다'는 소감을 남겼다. '사자'로 돌아왔고, 앞으로도 열심히 해 볼 생각이다"고 거듭 약속했다.
"하루하루 후회없이 살았을 것 같은 인생 대선배의 분위기가 느껴진다. 그럼에도 돌아가고 싶은 순간이 있냐"는 질문에는 "돌이켜 보면 시대에 맞게는 잘 살아 온 것 같다. '그 시대가 그렇지 않았으면 어땠을까' 싶은 생각이 드는 순간들은 있다. 70년대 사회상은 별로 안 좋았다. 특히 영화에 대한 인식이 떨어졌다. '그때 분위기가 지금과 같았다면 얼마나 더 좋았을까'라는 생각은 한다"고 귀띔했다.
이와 함께 오랜시간 평정심을 유지하며 안성기만의 부드러운 매력을 잃지 않은 나름의 비법에 대해서는 "누구든지 화는 나기 마련이다. 나라고 화가 안 나겠나. 하지만 순간적으로 확 감정을 폭발시키면 안 된다. 약간만 멈칫하면 삭혀지고, 조금씩 완화되면서 '아휴 뭐 그럴 수 있지' 하게 된다. 상대방 입장을 생각하고 전체를 생각하면 상황이 넘어가진다. 발끈 발끈하면 결국 자기 손해다"고 당부했다.
"청년 안성기는 어땠냐"고 묻자 "난 예전에도 노인네였다. 젊지 않았다. 나이는 젊었지만 생각은 젊지 않았던 것 같다. 생각보다도 행동이 더 젊지 않았다. 스스로 태도나 자세는 잘했던 것 같다"며 "그런 집안 분위기에서 자란 영향도 있는 것 같다. 사실 어릴 땐 실수도 하고 사고치는 맛이 있어야 하는데 난 그런 맛이 없었다. 그래서 영화에서 사고를 많이 치고 있다. 영화 안에서 이런 세상, 저런 세상, 이런 인물, 저런 인물들을 다 만나고 싶다"고 강조했다.
브라운관이 아닌 스크린에서만 배우 안성기를 만날 수 있는 이유도 결국 '영화'이기 때문이다. 안성기는 "영화가 좋아서. 스크린이 좋아서 영화를 하고 연기를 한다. 영화관의 어두운 공간에서 스크린을 집중해 보는 것이 좋다. 그래서 그 스크린 안에서만 보여지고 싶은 마음이 있다"고 밝혔다.
한국영화의 살아있는 전설이자 산증인. 배우들의 대배우 안성기가 오랜시간 관객들의 사랑과 애정, 그리고 존경을 받을 수 있는 이유는 바로 '배우 안성기' 그 자체임을 안성기는 매 순간 증명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