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쯤되니 '세력'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여전히 '설마'의 시선이 강하지만 분위기가 썩 공익적이지는 못하다.
지난 4일 각종 유명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개봉을 앞두고 있는 영화 '봉오동전투(원신연 감독)'와 관련, 환경훼손 이슈가 담긴 게시물이 동시 다발적으로 올라 이목을 집중시켰다.
요지는 "'봉오동전투' 측이 촬영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환경을 훼손시켰고, 그 훼손 지역은 '동강 할미꽃 자생지'로, 환경청의 경고를 무시한 채 촬영을 강행하다 동강 할미꽃이 함께 훼손되면서 결국 자생 불가 판정을 받았다"는 것이다.
이는 "'봉오동전투' 팀이 동강 할미꽃을 멸종시켰다"는 강력한 프레임으로 굳어지면서 융단폭격 대상이 됐다. 그 사이 게시물의 스케일은 점점 커졌고 "'봉오동전투' 팀이 멸종시킨 동강 할미꽃", "'봉오동전투'로 초토화 된 꼴"이라며 꽃 자체에 주목하는 내용도 쏟아졌다. 비난은 당연한 수순. 더 나아가 5일에는 '국토 지킨 조상 업적 기리는 영화에서 환경 훼손은 모순'이라는 주장과 함께 '벌금 및 과태료를 강화해 달라'는 청와대 국민청원도 등장했다.
하지만 '비난의 팩트'는 명확해야 한다. 결론적으로 "동강 할미꽃 서식지를 멸종시켰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촬영 장소는 동강 할미꽃 자생지가 아니었고, 일반 할미꽃이 자라는 장소도 아니다. '봉오동전투' 환경훼손 문제를 지적했던 한국내셔널트러스트 김금호 사무국장 역시 "환경훼손은 사실이지만, 개봉을 앞두고 일어난 현재 논란은 악의적으로 왜곡된 부분이 있다"고 지적했다.
'봉오동전투' 팀이 환경훼손 이슈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은 맞다. '봉오동전투' 제작진은 지난해 12월 환경운동 시민단체 한국내셔널트러스트로부터 '촬영 중 생태계보전지역 안에서 야생 동물들을 놀라게 하고, 야생 동식물을 훼손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이후 '봉오동전투' 제작사 더블유픽처스 측은 "원주시의 허가를 받고 촬영을 진행했지만 환경청과의 논의가 누락되는 실수가 있었다"는 공식 사과문을 발표했다.
제작진은 환경청 등 요구에 따라 동강 촬영분은 전면 삭제, 재촬영을 진행해 영화를 완성했다. 부과된 과태료와 법적 처분에 따른 벌금 납부를 완료했고, 환경청 담당자 확인 아래 식생훼손에 대한 복구 작업도 진행했다. 제작자와 배급사 쇼박스 측은 환경단체와 함께 모인 자리에서 '재발방지책을 마련해 영화 촬영과 관련한 윤리강령을 제정해 보자'는 적극적인 움직임도 보였다.
그러나 대중들의 관심은 '추후'에 있지 않다. 오로지 '너희의 잘못'에만 초점을 맞춘다. 물론 잘못은 잘못이다. 이로 인해 영화 개봉 레이스에 악영향이 끼쳐진다면 그건 '봉오동전투' 팀의 업보이자 감내해야 할 몫이다. 계기조차 마련하지 말았어야 하는 것이 맞다. 문제는 왜곡된 논조가 사실인양 이슈를 위한 이슈, 논란을 위한 논란, 비난을 위한 비난으로 그 분위기가 오로지 '한 가지 목적'만 향하고 있다는데 있다. 그 시점과 주도면밀함은 '합리적 의심'을 앞세우기 충분하다.
김금호 사무국장도 "정작 처음 문제제기를 했을 때는 이렇게 화제성이 크지 않았다. 개봉을 앞두고 주목도가 더 높은 탓도 있겠지만, 현재 이슈의 내용과 패턴을 보면 영화가 갖고 있는 정치적 혹은 이념적인 측면의 차이를 공격할 목적이 큰 것으로 보여 씁쓸하다. 다른 공격에 환경이 이용당하는 느낌도 든다. 바람직하지는 않다"고 당부했다.
왜곡 문제를 의식한 듯 '봉오동전투'와 관련 잘못된 내용을 담은 첫 게시물은 삭제됐고, 일각에서는 다시 명백한 팩트를 알리고 상황을 수습하려는 움직임도 보이고 있다. 하지만 이미 마음을 돌린 이들을 설득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한 영화의 이슈를 물고 늘어지는 움직임은 최근 들어 극심해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성격은 다르지만 '나랏말싸미(조철현 감독)'도 개봉 직전 역사왜곡 논란이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급속도로 퍼졌다. 같은 내용의 게시물이 시간 차를 두고 끊임없이 올라왔고, 2차, 3차 게시물이 추가적으로 게재되면서 채 하루도 되지 않아 영화는 목적과 의미를 상실한 채 만신창이가 됐다.
'기생충(봉준호 감독)'으로 한국영화 최초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하고 금의환향한 봉준호 감독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도 디렉팅 논란과 10여 년이 훌쩍 넘은 과거 인터뷰 논란이었다. 논란은 흥행에 직격타가 되는 경우도 있고, 큰 흔들림 없이 많은 관객들과 그대로 만난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1000만 돌파에 성공했다고 해서 생채기 난 상처까지 쉽게 아무는 것은 아니다.
충무로의 한 관계자는 "과거에는 큰 이슈도 눈 가리고 아웅 식으로 넘어가려는 영화들이 많아 눈살을 찌푸리게 했지만 어느 순간 관객들의 눈과 귀를 속일 수 없는 시기가 왔고 잊지않고 꼬집어내는 관객들에게 영화인들이 역으로 박수를 보내는 일이 많았다. 몰랐던 사실을 모른채 지나가는 것 보다는 알고 각자 판단하는 것이 맞다. 하지만 최근에는 커뮤니티·SNS 등 온라인 영향력이 커지면서 '조직적이다' 싶을 정도로 '영화 죽이기'가 심각하게 느껴지는 것이 사실이다. 다양한 의견과 비판은 좋지만 '망해라, 망해라' 고사를 지내거나 어떤 악에 받힌 것이 아니라면 '왜 이렇게까지 할까' 느껴지기도 한다. 우려가 크다"고 토로했다.
또 "비슷한 상황이 여러 번 반복되자 혹자들은 다양한 세력을 추정하기도 한다. '봉오동전투' 같은 경우는 눈여겨 봐야하는 항일영화로 주목 받다가 한 순간 보이콧 대상이 되고 말았다. 추정은 추정일 뿐 결코 공론화 할 수 없기 때문에 속앓이를 할 뿐이다. 때로는 흥행보다 큰 이슈없이 잘 지나가길 더 바라기도 한다. 뭐든 과하면 지나칠 때가 있다. 사실 적시 비난은 누구를 탓할 수도 없지만 왜곡은 반드시 지양돼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