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내내 날씨와 꽃 피는 장소에 따라 눈에 담을 거리들이 진득하게 이어지는 전라남도 해남이다. 옛부터 사계절 내내 보고 그림에 담아낼 것들이 넘쳐나는지, 해남은 남도 수묵의 고장으로 자리잡았다.
이를 알리고자 해남군은 행촌문화재단과 ‘예술과 함께 떠나는 남도수묵기행’을 기획, 계절에 따라 다른 해남을 맛볼 수 있는 색다른 ‘아트 투어’를 진행하고 있다.
투어에 따라 사찰에서는 주지 스님과 차를 우려내 마시며 담소를 나누기도 하고, 수묵화가의 지도 아래 그림을 그리기도 한다. 소음이 일절 없는 산 속의 암자에서 판소리 공연도 즐길 수도 있다.
지난 8일 다녀온 해남 예술의 성지는 ‘녹우당’에서 예술을 배우고, ‘대흥사’에서 수묵을 그리고, ‘일지암’에서 차 한 모금을 머금는 코스였다.
녹우당에서 공재의 ‘자화상’ 만나다
녹우당은 해남윤씨 고택의 당호이자, 600년 이상 이어온 대표적인 종가의 이름이기도 하다. 현재 녹우당 하면 고택과 박물관 일대를 말하기도 하지만, 본래 고택 사랑채의 이름이었다.
녹우당은 말 그대로 ‘녹색 비’라는 뜻인데, 고택 뒤편의 비자림에서 이는 바람소리가 빗소리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 비자숲은 뒷산의 바위가 보이면 마을이 가난해진다는 해남윤씨 입향조의 유훈에 따라 500년 전부터 후손들이 가꾼 숲이란다.
녹우당은 보존이 잘 된 조선시대 건축 유산이기도 하다. 한때 아흔 아홉칸에 달하는 저택이었던 녹우당의 건축형태는 시대에 따라 중건하거나 보수해 현재 55칸 정도만 남아있다. 현재 녹우당의 주 건물로는 안채, 사랑채, 행랑채, 헛간 그리고 안사당, 어초은사당, 고산사당 어초은 추원당이 남아 있다.
이 일대로 들어서면 가장 먼저 성인 남자가 두 팔을 벌려 끌어안아도 채 손이 맞닿지 않을 정도의 몸통을 자랑하는 거대한 은행나무가 보이는데, 수령만 500년이다. 이 은행나무는 입향조 윤효정이 아들 윤구의 진사시 합격을 기념해 심은 것이다.
이 나무를 왼편으로 끼고 길을 오르다 보면 왼편에 사랑채로 들어가는 문이 보이는데, 해남윤씨 후손이 이 터를 지키고 있는 곳이라 자유롭게 방문하기는 어려운 듯 했다. 이날은 양해를 구하고 녹우당이라는 글씨가 적힌 낡은 현판을 볼 수 있었는데, 그 세월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윤효정은 해남의 대부호 해남정씨 정귀영의 사위가 되면서부터 이 곳에 터를 잡았다. 이후 해남정씨의 소유였던 엄청난 땅을 상속받고 강진 덕정동에서 해남 백련동으로 터전을 옮긴 것이라고 했다. 임진왜란 이전에는 남녀차별 없이 균분상속하는 것이 관습인 터라 처가의 많은 재산을 물려받게 된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윤효정 이래 6대가 내리 문과에 합격해 호남의 대표적인 명문가문으로 자리를 잡았다. 윤효정의 4세손, 공재 윤두서는 이 집안이 배출한 인물 중의 인물이다.
공재는 조선 후기 회화의 개척자이자 조선 유일의 자화상 화가로 불리고 있다. 그의 대표 작품 역시 당시의 거울을 닦으며 확인해 자신의 모습을 그려낸 작품 ‘자화상’이다. 국보 240호인 ‘자화상’은 녹우당 일대에 위치한 ‘고산윤선도유물전시관’에서 볼 수 있다. 공재가 40대 후반에 그린 것으로 알려진 이 그림은 한 올 한 올 수염을 그려낸 섬세한 붓놀림이 금방이라도 입김에 흩날릴 것 같고, 사진을 찍은 것만 같은 꾹 다문 입과 깊게 패인 팔자주름 등 세밀한 묘사는 반백살(50세) 선비의 카리스마까지 느껴진다.
자화상을 두고 전시관 해설사는 “프랑스에 ‘모나리자’가 있다면, 한국에는 공재 선생의 ‘자화상’이 있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불교 간직한 전통문화예술의 보고, ‘대흥사’
로마의 성바오로성당이 395년에, 성 베드로성당이 440년경에 각각 세워졌고, 해남 두륜산 아래 대흥사는 426년에 창건돼 지금까지 자리를 지키고 있다. 1600년 동안이나 불교를 통해 가르침을 받고 위로를 받는 ‘산중절집’으로서의 역할을 해오고 있는 곳이다.
본래 두륜산을 ‘대둔산’이라고 부르기도 해서 사찰명도 대둔사였으나 근대 초기에 ‘대흥사’로 명칭을 바꾸었다.
서산대사가 “만년을 허물어지지 않을 곳”이라며 자신의 가사와 발우를 전하게 했다는 곳이기도 하다. 대흥사는 이후 사세가 계속 확장된 것은 물론 당대의 고승들을 배출한 명찰이 됐다. ‘남도수묵기행’에서는 역사 깊은 대흥사와 그 뒤를 든든히 지키는 두륜산을 바라보며 수묵체험을 할 수도 있다. 이날 수묵화가의 지도 아래 대흥사 대웅보전을 바라보며 그리는 서툰 그림 실력으로 부채에 그림을 그려 가져갈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더불어 대흥사에서는 템플스테이도 가능하다고 했다. 대흥사가 ‘산사, 한국의 산지 승원’으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면서 이 곳의 템플스테이는 내국인은 물론, 외국인들에게까지 인기가 부쩍 높아졌다. 또 우리나라 다도문화를 중흥시킨 초의선사가 머물렀던 곳으로도 잘 알려져 있는 대흥사에는 ‘한국의 다성’ 초의선사가 머물렀던 일지암이 있다. 두륜산 깊숙한 암자에서 초의선사는 차 이론서인 ‘동다송’을 집필하는 등 조선 후기 차 문화를 이끌었다. 동다송은 차의 효능과 산지에 따른 품질, 만들고 마시는 법 등을 적은 것으로 우리나라 최초의 차에 관한 책이다. 다시 말해 일지암은 오늘날 우리 차 문화의 발원지라고도 할 수 있다. 차는 삼국시대 불교문화와 함께 전래됐으나, 조선 유교문화에 밀려 겨우 명맥만 남아있던 것을 초의선사가 일지암에 차 나무를 심어 복원했단다. 굽이굽이 두륜산을 올라야 닿는 일지암은 깊고 고요하다. 한여름의 푸른 하늘과 산의 푸름이 눈 앞에 펼쳐지는 전부다. 이 풍광을 문의 네모난 틀을 통해 보는 광경이 작품이나 다름없다. 그리고 일지암 법인스님의 이야기와 함께 마시는 차 한 잔의 시간이 수묵여행의 피날레를 장식하니 더할나위 없이 완벽한 기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