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4일 뉴욕양키스와의 홈경기에 플레이어스 위크엔드 유니폼을 입은 류현진. 유니폼의 색 때문에 별명이 잘 보이지 않는다. 연합뉴스 제공 올해로 3년째를 맞이한 메이저리그 '플레이어스 위크엔드(players weekend)'는 첫 출발부터 팬들의 큰 사랑을 받았다. 처음에는 계속 진행될 수 있을지 불투명한 부분도 없지 않았다. 하지만 예상을 깬 호응에 힘입어 세 번째까지 그 명맥이 이어졌다. 선수들은 자신의 개성을 담은 별명이나 그래픽을 활용해 번뜩이는 재치를 보여줬고, 숨겨진 뒷이야기는 또 다른 즐거움을 낳았다. 선수들의 의견이 반영된 배트나 스파이크도 쏠쏠한 볼거리였다.
그런데 올 시즌에는 상황이 약간 바뀌었다. 문제의 출발은 메이저리그 사무국이 지정한 유니폼이었다. 기본적으로 홈팀은 흰색 유니폼에 은색의 팀 로고와 선수의 별명 등을 새겨 넣었다. 원정팀은 검은색 유니폼에 역시 은색 팀 로고와 별명을 추가했다. 일단 이해하기 힘든 색상 배치로 '플레이어스 위크엔드' 최대 재미 요소인 선수들의 별명이 보기 힘들어졌다.
'미리 보는 월드시리즈'로 관심을 끌었던 LA 다저스-뉴욕 양키스전. 좀처럼 보기 힘든 인터리그 맞대결인 만큼 자신들의 색깔을 뚜렷하게 나타내는 유니폼을 입길 원했다가 거절당하기도 했다. 메이저리그에서 사상 첫 줄무늬가 들어간 유니폼을 사용해 '핀 스트라이프'라는 별명이 붙은 양키스와 '다저 블루'라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던 다저스만의 고유 유니폼을 보지 못하게 된 것이다.
2019년 플레이어스 위크엔드때 펼쳐진 LA다저스와 뉴욕 양키스전. 두 팀은 고유의 유니폼 색이 아닌, 사무국이 지정한 흰색과 검정색 유니폼을 착용했다. 다저스와 양키스는 과거 11번이나 월드시리즈에서 만났던 메이저리그를 대표하는 명문 구단이다. 게다가 두 팀은 모두 소속 리그에서 최고 승률을 기록하며 '포스트시즌을 홈 어드밴티지를 누가 차지하느냐'의 문제로 꽤 큰 볼거리를 제공했다.
다저스와 양키스에만 특혜를 주긴 어렵다. 그런 점을 고려하더라도 다저스는 사무국에 '이번 시리즈 3경기 중 한 경기만이라도 양 팀의 기존 유니폼을 입게 해달라'고 청했지만 거절당했다고 한다. 이와는 약간 다르지만, 시카고 컵스는 흰색 모자를 거부하고 원래 구단 모자를 착용하기도 했다. 올 시즌 '플레이어스 위크엔드'에 불만을 표한 선수도 많다. 코디 벨린저(LA 다저스)는 귀를 청소하는 '큐 팁' 같다고 표현했고, 브렛 가드너(뉴욕 양키스)는 유니폼이 너무 하얀색이라 눈에 부실 지경이라고 했다.
'플레이어스 위크엔드'의 아이디어는 최근 SNS 등을 통해 팬들과 소통하는 선수들이 많아진 것처럼 팬들에게 자신의 개성을 보일 수 있는 또 다른 형태의 소통을 원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현지 언론에서 이번 이벤트에 불만을 쏟아내는 이유는 선수들과 팬들에게 작은 즐거움을 주는 것보다 '이익' 추구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모습을 보이기 때문이다. 즉 선수들의 개성을 표현하면서 팬들의 얼굴에 미소 짓게 하는 작은 시도가 사무국의 '물욕'에 변질되고 있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일관적으로 강요된 유니폼에 선수들의 개성이 묻혀버렸다.
리틀 야구 선수들의 사인을 표기한 스파이크를 신은 애런 저지 선수들은 자신의 별명이 등 뒤에 붙은 것 이외에는 크게 달라진 점을 느끼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다 보니 선수들은 착용하는 스파이크를 통해 제한된 개성을 표출하기 위해 상당한 공을 들였다. 애런 저지(뉴욕 양키스)는 200명이 넘는 리틀 야구 선수들의 사인을 스파이크에 표기했고 무키 베츠(보스턴)는 최근 총격 사건으로 사선을 넘나들던 팀 선배 데이빗 오티즈를 표현했다.
메이저리그는 스포츠를 표방한 산업이다. 다양한 마케팅을 통해 수익 창출을 해야 하는 게 당연하다. 하지만 자칫 지나친 욕심으로 주객이 전도돼 아이디어가 퇴색되고 상업주의 일변도로 흐른다면 선수들 스스로가 향후 이를 거부할 수도 있다. 당장 SNS에 올라온 선수, 감독, 기자, 팬들의 반응은 최소한 긍정보다 부정적 평가가 주류를 이룬다. 어떤 기자는 사무국의 공과 엄청난 차이를 보이는 헛스윙을 했다고 비난했고, 휴스턴 팬은 흰색 유니폼을 입은 선수들이 마시멜로 같다고 비웃었다. 심지어 어떤 팬은 왜 성인 선수들을 멍청이처럼 보이게 만들었느냐고 어이없어했다.
디자인은 개인에 따라 호불호가 갈릴 것이다. 하지만 중계 스태프조차 읽기 어려운 선수들의 별명과 의미를 찾기 어려운 유니폼 색상은 사무국의 선택에 의문을 던지게 한다. 부디 내년 '플레이어스 위크엔드'에는 조금 더 선수들과 구단의 의견이 반영돼 더 흥미롭고 재미있게 경기를 즐길 수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