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마트와 롯데하이마트·쇼핑 등 국내 간판 유통업계 수장들이 앞다퉈 자사주를 매입하고 있다. 올 상반기 실적이 저조한 가운데 주가를 방어하는 한편 아직 기업이 건재하다는 시그널을 시장에 보내는 것으로 분석된다. 그러나 경영자들의 눈물나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주가 반응은 신통치 않다.
부진의 늪…자사주 매입 카드 꺼낸 유통가 수장들
롯데지주는 지난달 29일 롯데쇼핑의 지분 20만주를 추가 취득했다고 공시했다. 이로써 롯데지주가 보유한 롯데쇼핑의 주식은 1117만5000주로 지분율 39.5%를 기록하게 됐다.
롯데지주가 지주사 전환 이후 롯데쇼핑 주식을 매입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유통부문 실적 부진에 따른 주가 하락을 방어하기 위해서 자사주 매입을 결정한 것으로 보인다.
롯데지주 측 역시 지난달 30일 "롯데쇼핑 실적 개선을 위한 책임 경영 차원의 조치"라고 입장을 밝혔다.
롯데쇼핑의 올해 상반기 영업이익은 2968억원으로 지난해 동기보다 3.5% 감소했다. 온라인 유통채널의 공세와 최저가 경쟁, 일본 제품 불매운동 이슈가 맞물리면서 고전했다. 주가 하락세가 지속될 경우 주주 불만이 높아질 수밖에 없어 지주사 차원에서 방어에 나선 것으로 분석된다.
롯데그룹 내에서 자사주 매입 카드를 먼저 꺼낸 건 국내 1위 전자제품 유통채널인 롯데하이마트였다.
이동우 롯데하이마트 대표이사는 지난달 20일과 21일 이틀 동안 자사주를 각각 3000주씩 총 6000주를 매입했다고 공시했다. 롯데하이마트는 지난 2분기 영업이익은 458억 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31.5% 감소했다. 온라인 비중을 높이면서 시스템 구축과 행사비가 늘어났고, 채용과 매장 리뉴얼을 위해 비용을 썼다. 최근 불고 있는 오프라인 유통매장의 전반적인 침체도 마진율 감소에 영향을 미쳤다.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은 지난달 13일 이마트 창사 이래 첫 자사주 매입을 발표했다. 취득 예정 주식은 90만주로 발행주식 총수의 3.23%다. 취득 예정기간은 오는 11월 3일까지다. 이마트는 올 2분기 실적에서 매출액은 4조5810억원으로 14.8% 늘었으나 당기순손실은 266억원으로 적자 전환했다. 영업이익은 지난해 2분기 대비 832억원 줄었다.
시장 반응은 '신통치 않네'
오너와 대표이사까지 팔을 걷어부쳤으나 주가는 제자리 걸음 중이다.
이마트는 정 부회장이 자사주를 매입한 당일 종가 11만2500원을 기록하면서 전일 대비 8000원 상승했다. 그러나 14일 11만1000원으로 떨어졌고, 8월의 마지막 날인 30일에는 11만6000원으로 장을 마쳤다.
신용평가사인 무디스는 지난달 14일 이마트의 등급 전망을 하향 조정하며 "올해 2분기 영업실적이 부진하고 향후 1~2년간 수익성이 매우 낮은 수준에 머무를 가능성이 확대됐다"고 진단했다.
이마트 측은 "이번 자사주 매입은 회사의 미래 실적 성장성에 대한 자신감을 바탕으로 내린 결정이다. 회사는 앞으로도 사업 포토폴리오 다각화, 기존점 리뉴얼, 수익성 중심의 전문점 운영 등 미래 현금흐름 개선을 위한 다양한 노력을 통해 주주이익을 더욱 강화할 것"이라면서 자사주 매입 외 추가 조처도 가능하다는 점을 시사했다.
하이마트 주가도 큰 폭의 오름세는 없었다. 21일 3만2200원이던 종가는 30일 3만1300원대 선으로 마무리됐다. 이처럼 자사주 매입 효과가 크지 않자, 롯데쇼핑 자사주 매입에 대한 기대감도 시들한 분위기다.
업계 관계자는 "기업 경영인들의 자사주 매도는 시장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오너와 고위 임원들의 먹튀 논란을 빚은 '신라젠'이 대표적이다. 그런 면에서 대표나 오너의 자사주 매입은 책임 경영을 한다는 이미지를 통해 주주들을 안심시킬 수 있다는 면에서 긍정적"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 관계자는 "주가를 움직이는 건 결국 실적이다. 자사주 매입과 함께 실적 개선이 이뤄져야 하는데 최근 국내 유통가 분위기가 하나같이 좋지 않다. 자사주 매입이 일시적 주가 반등에 그친 이유"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