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7월 개막하는 도쿄올림픽이 여러 가지 논란으로 말썽이다. 이번엔 2차 세계대전에 사용한 전범기인 '욱일기' 사용을 대회 조직위원회가 사실상 허락하기로 하면서 큰 반발을 샀다.
일본 산케이신문은 4일 "2020 도쿄올림픽·패럴림픽 조직위원회가 한국의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와 외교부에서 욱일기 사용을 올림픽·패럴림픽 때 사용하지 말 것으로 요청한 것과 관련해 반입 금지품으로 하는 걸 상정하지 않고 있다는 방침을 밝혔다"고 전했다. 이 신문에 따르면 조직위는 욱일기가 일본 내에서 사용되고 있고, 그 자체가 정치적인 의미를 담은 건 아니라는 입장을 밝혔다. 지난달 외교부와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가 도쿄올림픽 전후 경기장 내 욱일기와 이를 활용한 유니폼·소품 반입, 응원 행위 금지를 촉구한 것에 올림픽 조직위가 배치되는 반응을 내놓은 셈이다.
후쿠시마 원전 인근 지역 방사능 문제, 독도 표기 문제 등 정치·외교적으로도 민감한 문제들이 연이어 터진 상황에서 이번엔 욱일기 문제가 도쿄올림픽과 관련한 논란에 기름을 더 끼얹었다. 앞서 조직위는 지난달 25일 발표한 도쿄패럴림픽 메달 디자인에도 방사형으로 뻗은 문양이 욱일기를 연상케 해 대한장애인체육회가 국제패럴림픽위원회(IPC)에 항의를 한 바 있다. 메달을 디자인한 디자이너는 이 디자인에 대해 "국적과 인종에 상관없이 선수들이 하나로 모이는 것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다 이번엔 조직위가 노골적으로 욱일기 사용을 용인하기로 하면서 반발을 더 크게 샀다.
올림픽에서 정치적인 표현을 드러내는 건 '올림픽 헌장' 50조(정치적, 종교적, 인종차별적 시위나 선전 활동을 금한다)에도 명기할 만큼 절대적인 금지 사항이다. 그러나 일본이 월드컵 등 각종 국제 대회에서 꾸준하게 욱일기를 응원 도구로 사용하는 등 상대적으로 '욱일기가 전범기'라는 인식이 부족한 틈을 타 이를 자주 활용하면서 관련 논란이 꾸준하게 이어지고 있다. 그러면서 국제올림픽위원회(IOC)나 국제축구연맹(FIFA)에서도 욱일기와 관련한 문제를 심각하게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앞서 FIFA도 지난 2014년 일본 축구를 집중 조명한 공식 주간지 표지에 욱일기 문양을 사용했다 항의를 받고 일장기 장식으로 바꿨다. 당시 일본 축구대표팀의 유니폼에 11개의 방사형 문양이 새겨진 것을 두고 FIFA 공식 인터넷 쇼핑몰에서는 '떠오르는 태양에서 뻗어나가는 빛을 형상화한 디자인(A rising sun ray textured designs)'이라고만 설명한 바 있다.
일본 조직위의 이같은 반응에 국내 여론은 다시 들끓고 있다.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위원장인 더불어민주당 안민석 의원은 4일 한 라디오 방송에서 "욱일기와 독도 표기, 후쿠시마산 식자재 등 방사능 문제 등 세 가지가 해결되지 않으면 우리 선수들의 도쿄올림픽 참여를 국민 정서가 허용할지 우려스럽다"고 밝혔다. 이어 "욱일기 문제를 국내에서 공론화하고, 국내외적으로 여론화해야 한다. 우리뿐 아니라 과거 침략 피해를 당한 아시아 국가들, 특히 중국과 북한을 중심으로 하는 국제적인 연대를 모색하면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욱일기 퇴치 운동을 꾸준히 펼치고 있는 서경덕 성신여대 교수는 "전 세계인들이 다 지켜보는 도쿄올림픽에서 욱일기가 나치 하켄크로이츠와 같은 전범기임을 전 세계에 제대로 알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로 잘 활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부와 체육계도 발빠르게 대응한다. 문화체육관광부는 IOC에 욱일기 사용 금지를 요구하는 서한을 보낼 계획이다. 특히 다음 주 중에 도쿄에서 열릴 패럴림픽 참가국 단장 회의에서 욱일기 사용, 독도 표기 문제 등에 대한 한국의 입장을 대회 조직위 측에 다시 전달한다는 방침이다. 외교부도 "욱일기가 주변 국가들에게 과거 군국주의와 제국주의의 상징으로 인식되고 있다는 점은 일본 측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일본이 겸허한 태도로 역사를 직시할 필요가 있다"며 "관련 사항이 시정될 수 있도록 관련 부처와 함께 계속 노력해 나가겠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