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세계 각국의 유망주들이 출전하는 국제빙상경기연맹(ISU) 주니어 그랑프리에서 들려온 낭보에 한국 피겨계가 활짝 웃었다. 피겨 불모지에서 등장한 '피겨여왕' 김연아(29)의 은퇴 이후 걱정이 태산이었던 한국 피겨계가 어린 선수들의 활약 속에 미소를 감추지 못하고 있다.
7일(한국시간) 라트비아 리가에서 끝난 2019~2020시즌 ISU 주니어 그랑프리 3차 대회. 여자 싱글 시상대 위에 작은 소녀가 올라섰다. 쇼트프로그램 점수 66.93점, 프리스케이팅 점수 130.70점을 더해 총점 197.63점으로 1위에 오른 이해인(14·한강중)은 당당하게 시상대 가장 높은 곳에 서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한국 여자 싱글에서 주니어 그랑프리 금메달을 목에 건 선수는 김연아(2004~2005시즌 1회, 2005~2006시즌 2회) 김해진(2012~2013시즌 1회)에 이어 세 번째이며 햇수로는 김해진 이후 7년 만이다. 값진 기록을 쓰며 주니어 그랑프리 한국 여자 싱글 최고점(김예림·2018년 9월·196.34점)도 갈아치웠다.
이해인의 입상은 세계 무대를 정조준한 한국 여자 피겨의 성장세를 증명한다. 앞서 1차 대회 위서영(14·도장중) 2차 대회 박연정(13·하계중)이 연이어 은메달을 따내며 쾌조의 출발을 한 한국 여자 피겨는 3차 대회 이해인의 금메달로 3대회 연속 메달이라는 놀라운 성과를 거뒀다. 시니어 무대에 진출한 '김연아 키즈 트로이카' 임은수(신현고) 김예림(이상 16·수리고), 유영(15·과천중)의 뒤를 이어 새로운 주니어 기대주들이 등장한 셈이다. 특히 이들은 가파른 상승세를 바탕으로 선배들의 뒤를 바짝 쫓고 있어 기대감이 더욱 크다. 이번 대회 금메달로 발전 가능성을 증명한 이해인은 귀국 인터뷰에서 "주니어 그랑프리 6차 대회에서도 좋은 결과를 얻어 주니어 그랑프리 파이널에 진출하고 싶다"고 당당한 포부를 밝히기도 했다.
한국 피겨의 낭보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3차 대회에서 시상대 정상에 올라 당당히 애국가를 울려퍼지게 한 이해인의 활약에 이어, 같은날 열린 남자 싱글에서도 또 한 번 태극기가 내걸렸다. 그 주인공은 이시형(19·고려대). 이시형은 쇼트프로그램 점수 77.3점에 프리스케이팅 점수 141.01점을 더해 총점 218.31점을 기록하며 안드레이 모잘레프(16·러시아·223.72점)에 이어 2위로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그동안 주니어 그랑프리 대회에 여섯 번 출전하며 한 번도 시상대에 오르지 못했던 이시형은 '6전7기'에 성공하며 사실상 시니어 데뷔 전 마지막 무대가 될 올 시즌을 기분 좋게 시작했다.
한국 남녀 싱글 선수들이 주니어 그랑프리 무대에서 나란히 시상대에 오른 건 이번이 처음이다. 여자 싱글에 비해 상대적으로 선수층이 얕은 남자 싱글에선 '투톱 체제'를 이뤘던 이준형-김진서(이상 23) 이후 이렇다 할 기대주가 없다가 차준환(18·휘문고)의 등장으로 간신히 숨을 돌렸다. 여기에 이시형이 주니어 그랑프리 입상에 성공하면서 발전 가능성을 증명, 경쟁 체제를 꾸릴 기반을 다졌다. 특히 힘든 상황 속에서 여러 차례 세계무대에 도전했다가 좌절했던 아픔을 딛고 끝내 시상대에 오른 이시형의 끈기는 남자 싱글 선수들에게 긍정적인 자극이 될 수 있다는 평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