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태국 등 주한 대사들이 국내 글로벌 햄버거 프랜차이즈 매장에 잇달아 등장하고 있다. 이들은 햄버거를 먹으며 외교적 수사를 던지고 자국 간판 먹거리를 홍보하기도 한다. 업계는 국내 경쟁이 갈수록 치열해지는 가운데 주한 대사들의 방문이 싫지 않은 분위기다. 대중에 햄버거 브랜드를 또 한 번 각인할 수 있어서다. 정치권 인사 역시 자신의 메시지를 햄버거를 통해 부드럽게 전달할 수 있어 서로 '윈윈'할 수 있다.
해리 해리스 주한 미국대사가 지난달 29일 서울 종로구 공평동의 쉐이크쉑버거 매장을 방문해 햄버거를 먹고 있다.
외교관 방문에 '방긋'…쉐이크쉑버거·맥도날드
지난달 29일 서울 종로구 공평동에 문을 연 '쉐이크쉑버거(이하 쉑쉑버거)'에는 좀처럼 보기 힘든 손님이 깜짝 방문했다.
주인공은 해리 해리스 주한 미국대사였다. 해리스 대사는 이날 예정됐던 DMZ평화경제국제포럼과 대한민국재향군인회(이하 향군)의 안보강연 일정 대신 오후 1시30분께 대사관 직원들과 쉑쉑버거 매장으로 향했다.
점심식사로 햄버거를 선택한 해리스 대사는 자신의 트위터에 글도 올렸다. 그는 "한국 쉐이크쉑 10호점의 성대한 개점 행사에 다녀왔다. 100% 미국산 앵거스 소고기를 쓰는 맛좋은 미국 브랜드 쉐이크쉑에 축하를 전한다"면서 햄버거를 들고 큼지막하게 입을 벌린 사진을 함께 게시했다.
추석 연휴를 앞둔 지난 10일 맥도날드 상암DMC점에도 비슷한 장면이 연출됐다.
씽텅 랍피쎄판 주한 태국대사가 맥도날드 스낵 메뉴인 '콘파이' 재출시를 기념해 방문했다. 대사관 직원들은 물론 씽텅 대사의 아내, 태국 출신 가수인 2PM의 멤버 닉쿤 등 태국 주요 인사가 총출동했다.
부드러운 소스와 고소한 옥수수가 일품인 콘파이는 태국을 대표하는 맥도날드 현지 메뉴다.
콘파이는 태국을 방문한 한국 관광객 사이에 '태국 여행 시 반드시 먹어봐야 할 디저트'로 인기가 높다. 맥도날드 고객들은 국내에서도 콘파이를 출시해달라고 요청해 왔다.
씽텅 대사는 "한국에 온지 올해로 2년째인데 맥도날드에서 고향의 맛을 느낄 수 있어 정말 행복하다"며 "콘파이에 대한 관심에 감사함을 표한다"고 말했다.
지난 10일 맥도날드 상암 DMC점을 찾은 씽텅 주한 태국대사 부부(맨 왼쪽)와 귀빈들.
햄버거 찾는 정치인들, 이유는
보름 간격으로 대사들이 햄버거 매장을 찾자 업계와 정치권은 배경과 이유를 찾고 있다.
특히 해리스 대사가 안보행사 대신 쉑쉑버거 매장에 간 것은 정치적 행보로 해석된다. 앞서 지난달 27일 해리스 대사는 한국 정부의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종료에 반대 입장을 피력한 바 있다. 이에 조세영 외교부 1차관은 해리스 대사를 외교부 청사로 불러 "미 행정부의 실망 표시를 자제해달라"고 당부했다.
업계 관계자는 "해리스 대사가 불참한 안보 행사는 지소미아 종료 결정 후 진행됐다. 안보 행사 대신 햄버거를 먹은 건 한국 정부의 지소미아 입장에 대해 불만을 넌지시 전달한 것 아니겠는가"라고 말했다.
씽텅 대사의 맥도날드 방문은 정치적 목적 보다는 태국의 주요 산업인 관광과 맥이 닿는다. 태국 대표 메뉴로 성장한 콘파이를 한국에 알리고 이를 통해 태국 방문을 독려한다는 것이다. 맥도날드 관계자는 "맥도날드는 미국을 대표하는 브랜드이지만 동시에 각 나라별 국민의 입맛에 맞게 메뉴를 출시하는 등의 현지화에 굉장히 공을 쏟아왔다"며 "콘파이 역시 같은 맥락으로 탄생했다. 국내 출시된 콘파이를 보면서 태국 역시 자국을 알릴 수 있는 또 다른 창구로 판단하지 않았을까 싶다"고 말했다.
찾은 이유야 어찌됐건 쉑쉑버거와 맥도날드는 주한 대사들의 방문이 나쁘지 않다.
해리스 대사가 쉑쉑버거 방문 뒤 트위터에 올린 글과 사진은 1200여 건의 '좋아요'와 500여 건의 '리트윗'을 기록했다. 평소 해리스 대사의 트위터 게시물이 100~200개의 리트윗과 ‘좋아요’가 눌러지는 것과 비교하면 폭발적 인기다.
국내 각 매체도 해리스 대사의 쉑쉑버거 매장 방문 소식을 앞다퉈 보도했다. 해리스 대사 덕분에 홍보 효과를 톡톡히 본 셈이다.
콘파이 역시 출시 당일 한국맥도날드 단일 제품 기준 최고 판매량을 기록하며 품절됐다.
맥도날드 관계자는 "역대 국내 매장에 정치인이나 대사 등이 방문한 건 이번이 처음"이라면서 "이번 행사를 통해 맥도날드는 고객의 니즈를 맞출 수 있어 좋고, 태국 역시 자국 문화와 음식을 알릴 수 있어서 서로 윈윈할 수 있었다"고 자평했다.
2002년부터 약 4년간 청와대 양식담당 요리사였던 박기홍 우석대 외식산업조리학과 교수는 "미국을 대표하는 음식으로 통하는 햄버거는 본래 간단한 레시피와 캐주얼한 재료로 서민에게 적합한 메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최근 미국과 태국 대사들이 햄버거 매장을 찾는 것도 정치 메시지를 담는 동시에 홍보도 하려는 것 아니겠는가"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