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들은 '가심비(가격 대비 마음의 만족을 추구하는 소비 형태)'를 채울 수 있는 물건이라면 아르바이트로 몇달 동안 모은 돈을 기꺼이 쏟아붓는다. 명품업계와 유통가는 무섭게 몰려오는 90년대생을 잡기 위해 대대적인 변화에 나서고 있다. '버버리', '구찌', '발렌시아가' 등은 고리타분한 스타일을 과감하게 내던지고 젊은층을 사로 잡을 수 있는 디자인을 내놓고 있다.
명품에 열광하는 90년대생…"자기 만족 위해"
대학내일20대연구소는 지난 19일 '밀레니얼과 Z세대가 생각하는 패션명품소비'를 주제로 한 설문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밀레니얼세대는 80년대 초반에서 2000년대 사이, Z세대는 95년 이후 출생한 세대를 일컫는다.
이에 따르면 최근 6개월 사이 명품을 구매해 본 전국 15~34세 소비자 중 절반 가량인 48.4%는 "누구나 알아보는 유명한 명품을 사고 싶다"고 답했다. 특히 Z세대인 10대 후반은 59.5%나 이 같이 답하며 강한 명품 소비욕을 드러냈다.
응답자 대부분은 명품을 사는 이유로 자신의 만족을 꼽았다. 전체 평균 76.6%가 "명품은 내 만족을 위해 사는 것"이라는 인식을 갖고 있었다. 이 같은 대답은 나이가 어릴수록 많은 편이었다.
명품을 위해 기꺼이 지갑을 여는 90년대생은 주변에서도 쉽게 찾을 수 있다.
대학생 박범우(24)씨는 "최근 발렌시아가의 110만원짜리 명품 운동화를 구매했다. 평소 좋아하는 뮤지션들이 이 운동화를 신는 것을 보고 고민 끝에 샀다"고 했다. 학생이 사기에는 다소 비싼 편이었지만 후회는 없다고 한다. 박 씨는 "용돈과 방학에 벌어둔 아르바이트 월급을 털어넣었다. 일반 브랜드와 비교하면 비싸지만 마음에는 정말 꼭 든다. 깨끗하게 신어서 나중에 중고로 팔수도 있으니 괜찮다"고 말했다.
신지연 대학내일20대연구소 연구원은 "스트릿 패션과의 컬래버레이션, SNS 마케팅 등 정통 명품 브랜드의 발 빠른 변화와 힙합 가수들의 소유물을 자랑하는 문화가 밀레니얼·Z세대의 명품 선호도를 높인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백화점과 유통가는 밀려드는 90년대생 고객을 보며 함박웃음을 짓고 있다.
신세계백화점에 따르면 1020세대의 명품 소비 증가율은 2016년 8.5%이후 매년 20%대로 급증하고 있다. 올해 상반기 실적 역시 작년 같은 동기와 비교해 24% 늘었다. 이는 같은 기간 전체 명품 부문 매출 증가율인 22.9%보다 높은 수치다.
현대백화점 역시 20대의 명품 소비 증가율이 해마다 크게 오르고 있다고 밝혔다. 특히 올해 상반기에는 35.1% 기록하면서 올 상반기 전체 명품 매출 증가율인 28.8%보다 높은 수치를 달성했다. 온라인쇼핑 사이트 G마켓은 올해 1분기 20대 고객의 수입 명품 구매량이 전년 동기와 비교해 큰 폭으로 증가했다고 했다.
명품업계, 팝업스토어 열고 디자인 바꾸고
고객층이 젊어지면서 명품 업계도 변화하고 있다.
브랜드가 성장하기 위해서는 무서운 속도로 달려오고 있는 90년대생을 고객층으로 끌어들여야 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전통적으로 고수해왔던 디자인을 과감하게 버리고 90년대생이 좋아하는 스트리트 패션 디자인을 차용 중이다.
버버리가 대표적이다. 2018년 전 지방시 디자이너 리카르도 티시를 버버리 총괄 크리에이티브 책임자를 맞은 뒤 모든 걸 뜯어고치고 있다.
버버리의 상징이었던 말을 탄 기사 로고를 지웠고, 그 자리에는 ‘BURBERRY’라는 간결한 로고만 새겼다. 이와 함께 버버리 창립자인 토마스 버버리의 이니셜 ‘TB’를 이용한 모노그램도 만들었다. 올해 상반기에는 글로벌 톱 모델인 지지하지드를 앞세워 새로운 모노그램의 섹시하고 트렌디한 매력을 대중에 공개했다.
'한물 간 브랜드'란 평가를 받았던 구찌도 확 달라졌다.
2015년 수석 디자이너로 등장한 알렉산드로 미켈레를 필두는 구찌에 화려한 로고와 원색의 문양을 녹였다. 국내외 배우와 셀러브리티는 달라진 구찌 가방과 의류를 걸치기 시작했다.
2016년 매출 17% 신장에 그쳤던 구찌의 매출은 2017년 전년 대비 44.5%, 영업이익은 27.4% 성장을 기록했다. 구찌 브랜드를 소유한 케링그룹은 2017년과 2018년 매출이 각각 42%, 33% 증가했다.
발렌시아가는 1020세대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는 '어글리슈즈'로 대박을 쳤다. 90만~100만원에 달하는 가격에도 불구하고 일부 디자인은 품절이 됐다.
유통가도 젊은 세대를 끌어 당기기 위해 어깨에 힘을 빼고 있다.
90년대생들은 다양한 브랜드를 한데 모아놓은 편집숍이나 일반 매장보다는 문턱이 낮은 '팝업스토어'에 익숙하다. 신세계·롯데·현대·갤러리아 등 국내 백화점들은 최근 경쟁적으로 명품 팝업스토어를 여는 이유다.
G마켓 관계자는 "최근 명품 브랜드들이 스트리트 패션 브랜드와 협업을 통해 파격적인 디자인을 선보이면서 자신에 대한 투자를 아끼지 않는 밀레니얼 세대들의 선택을 많이 받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