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 다저스 류현진(32)이 메이저리그 데뷔 7년 만에 첫 홈런을 신고했다. 자신의 야구인생에 가장 빛나는 순간을 또 하나 만들어냈다.
류현진은 23일(한국시간) 다저스타디움에서 열린 콜로라도와 홈경기에 선발 등판해 7이닝 동안 볼넷 없이 6피안타(2피홈런) 8탈삼진 3실점으로 호투했다. 다저스가 7-3으로 승리하면서 6경기 만에 시즌 13승(5패)째를 올리는 데 성공했다. 평균자책점은 2.35에서 2.41로 조금 올랐지만 이 부문 메이저리그 선두 자리는 변함없이 유지했다.
이 경기가 류현진에게 유독 특별했던 이유가 있다. 오랫동안 기다렸던 첫 번째 홈런이 마침내 터져 나왔다. 류현진은 0-1로 끌려 가던 5회말 공격에 선두 타자로 나서 콜로라도 선발 안토니오 센사텔라를 상대로 동점 솔로 홈런을 쳤다. 시속 151㎞짜리 직구를 걷어 올려 우중간 담장을 넘겨 버렸다. 2013년 메이저리그 데뷔 이후 255타석 만에 나온 첫 홈런. 한국 야구팬들은 물론 LA 현지 중계진들까지 모두 열광하며 박수를 쳤을 정도로 짜릿한 장면이었다.
지명타자 제도가 있는 내셔널리그에서는 투수들도 자신의 등판날 타석에 선다. 하지만 쟁쟁한 메이저리그 선발 투수들을 상대로 홈런을 때려내는 투수는 그리 흔하지 않다. 류현진의 팀 동료 클레이튼 커쇼도 메이저리그에서 12시즌을 뛰는 동안 2013년에 단 한 차례 홈런을 친 게 전부다. 샌프란시스코 에이스 매디슨 범가너 정도가 '홈런 치는 투수'로 독보적인 명성을 날리고 있다. 범가너는 2012년 2개, 2014년 4개에 이어 2015년에는 무려 5개의 타구를 홈런으로 연결했다. 2016년과 2017년에도 3개씩 아치를 그렸다.
동산고 재학시절까지 4번 타자로 활약했던 류현진도 타격 성적은 나쁘지 않았다. 데뷔 첫 해인 2013년에 2루타 3개와 3루타 하나를 때려내면서 전설의 강타자 베이브 루스에 빗댄 '베이브 류스'라는 별명을 얻었고, 지난 시즌에는 0.269(26타수 7안타)라는 수준급 타율을 기록하기도 했다. 주자가 1루에 있을 때 희생번트 성공률도 높아 9번 타자로서 괜찮은 활약을 해왔다. 다만 빅리그 일곱 번째 시즌이 다 끝나갈 때까지 좀처럼 홈런 소식을 전하지 못한 게 유일한 아쉬움이었다.
하지만 이날 마침내 메이저리그 데뷔 255타석, 210타수 만에 자신의 타구를 담장 밖으로 날려 보내는 데 성공했다. 호투하던 상대 선발투수를 와르르 무너트리고 팀 타선의 추가 득점을 이끄는 신호탄이 됐기에 더 값졌다. 류현진이 타석에 들어서자 "여기서 홈런 한 방 쳐줬으면 좋겠다"고 기대를 표현했던 다저스 중계진은 타구가 우중간을 향해 뻗어나가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환호성을 내뱉었다.
팀 동료들도 더그아웃에서 펄쩍펄쩍 뛰며 열광적인 반응을 보였다. 자신의 배트를 빌려줬던 코디 벨린저가 가장 큰 기쁨을 표현했고, 엔리케 에르난데스가 구단 직원을 향해 "저 홈런볼을 회수해달라"고 부탁하는 장면도 중계 화면에 포착됐다. 애써 담담한 표정으로 더그아웃으로 돌아온 류현진도 자신의 첫 홈런공을 손에 쥔 뒤 활짝 웃어 보였다. 류현진은 그렇게 박찬호(2000년 2개, 2009년 1개)와 백차승(2008년 1개)에 이어 메이저리그에서 홈런을 친 역대 세 번째 한국인 투수로 남게 됐다.
여러 모로 기념비적인 시즌이다. 일단 데뷔 첫 개인 타이틀 수상이 눈앞으로 다가왔다. 이전까지 류현진은 데뷔 시즌인 2013년 평균자책점 3.00으로 내셔널리그 8위에 오른 게 최고 순위였다. 올해는 당당히 맨 윗자리에 올라선 뒤 좀처럼 내려오지 않고 있다. 8월 들어 긴 슬럼프에 빠지면서 1점대 평균자책점을 사수하지는 못했지만, 류현진은 여전히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점수를 뽑아내기 어려운 투수다.
이뿐만 아니다. 5월에는 6경기에서 5승 무패, 평균자책점 0.59라는 경이적인 성적을 올려 데뷔 첫 '이달의 투수상'을 수상하는 감격을 누렸다. 제이콥 디그롬(뉴욕 메츠)이나 맥스 슈어저(워싱턴)와 같은 내로라하는 명 투수들과 내셔널리그 사이영상 레이스를 펼쳤고, 여러 매체가 발표한 사이영상 포인트와 사이영상 모의 투표에서 한때 1위를 휩쓸기도 했다. 야구 인생에서 가장 큰 관심과 환한 스포트라이트를 동시에 받았던 시기다.
류현진의 명예는 곧 팀의 발자취이기도 했다. 지난 3월 29일 애리조나와의 정규시즌 개막전에 선발 등판해 팀에 시즌 첫 승리를 안긴 데 이어 23일 역투로 올 시즌 팀의 100번째 승리까지 손수 이끌었다. 메이저리그 올스타전 선발 등판도 빼놓을 수 없는 환희다. 류현진은 데뷔 후 처음 출전하는 올스타전에 내셔널리그 선발 투수로 나서 1이닝 무실점을 기록하고 마운드를 내려왔다. 빅리그 올스타전에 선발 등판한 역대 최초의 한국인 선수로 기록됐다.
'대한민국 최고'는 세계에서도 통한다. 부상을 떨치고 일어선 류현진이 올해 그 명제를 입증했다. 이제 류현진은 샌프란시스코 원정 한 경기 등판을 남겨놓고 있다. 그 후에는 정규시즌보다 더 중요한 포스트시즌 등판이 기다리고 있다. 그 어느 해보다 찬란했던 류현진의 2019시즌이 지금보다 더 빛날 수도 있다는 의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