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1학년부터 4학년까지 다 모였는데 어떻게 4학년한테 존댓말 하는 사람이 한 명도 없어?"
문경은(48)이 기가 막히다는 표정으로 입을 열자 이상민(47)이 바로 받아친다. "형, 우리 전부 오십이 다 돼가는데 존댓말은 무슨. 뭘 그런 걸 기대하고 그래?" 동시에 후배 우지원(46)과 김훈(46)이 입을 모아 "아 그러니까"를 외치며 웃는다. 막내 서장훈(45)은 맏형의 항변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오랜만에 잡아 본 농구공을 손에서 놓지 않는다. 슛 시도가 번번이 링을 빗겨가자 주변의 야유가 쏟아진 것은 물론. 그런 동생들을 물끄러미 지켜보던 문경은은 갑자기 쓸쓸한(?) 한 마디를 내뱉는다. "너희는 아직 선수 더 해도 되겠다. 나만 망가졌어, 나만."
폭소로 시작해 감동으로 끝난 현장. 프로농구가 존재하지 않았던 1994년, 농구대잔치에서 성인팀들을 줄줄이 꺾고 대학팀 최초로 우승을 차지한 연세대 농구부의 주역들이 일간스포츠 창간 50주년을 맞아 한 자리에 모였다. 장소는 그들이 과거의 영광을 함께 일군 연세대 체육관. 최신식 시설로 변모한 모교 코트를 보며 연신 감탄사를 내뱉던 다섯 영웅은 "정말 오랫만에 모였다"고 혀를 내두르면서도 어색한 기색은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인생에서 가장 빛나던 순간을 함께한 동지들과 조우한 기쁨에 입가에 번진 미소가 사라질 줄 몰랐다.
그리고 또 한 사람. '독수리 5형제'의 재회를 이들만큼이나 감격에 젖어 바라보던 인물이 이 인터뷰 현장에 동석했다. 코트에서 활약하던 다섯 선수의 모습을 농구장 관중석에서 지켜보고 환호했던 '오빠부대' 출신 기자다. 1994년의 대한민국을 뜨겁게 달군 연세대 농구부의 인기를 한복판에서 체감했던 증언자로서 그들의 재회 소식을 듣고도 그냥 지나칠 수는 없었다.
연세대 농구부의 승승장구 비결을 분석한 책이 출간되고, '오빠들'의 사진이 담긴 화보집이 베스트셀러에 오르던 시절이다. 대학생 농구선수들이 갈대밭을 배경으로 풋풋한 미소를 지으면서 TV 광고에 등장했고, 그들의 브로마이드를 별책부록으로 끼워주던 하이틴 잡지들은 불티나게 팔려 나갔다. 같은 반 학생들은 종종 "이상민이 잘 생겼냐, 우지원이 잘 생겼냐"는 화두로 언쟁을 벌였고, 김훈의 사진이 담긴 액자를 책상 위에 세워 놓고 수업을 받던 친구도 있었다. 스포츠신문을 통해 공개된 그들의 애창곡은 얼마 지나지 않아 친구들의 애창곡으로 바뀌었다. 요즘 아이돌그룹 팬들이 얘기하는 '덕질'의 기초가 그들로 인해 만들어졌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농구장과 체육관은 물론이고 신촌 이화여대 후문 근처에 있던 농구부 숙소 앞까지 늘 소녀팬으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연세대 농구부 매니저는 선수단 관리보다 팬 통제로 더 애를 먹었을 정도다. 다섯 선수의 집까지 찾아가 무작정 '오빠'가 나타나기만을 기다린 팬들도 많았다. 때로는 선수의 부모들이 팬들을 집 안으로 불러 들여 밥을 먹이기도 했다. 문경은은 "어느 날은 합숙 끝나고 집에 갔더니 팬들이 우리 어머니랑 차를 마시고 있더라"며 웃었다. 확실히 웬만한 아이돌그룹은 저리 가라 할 만큼 대단한 열풍이었다.
연세대 농구부가 한국 스포츠 역사에 가장 특별한 존재로 남게 된 이유는 단순히 '인기' 때문만이 아니다. 이 정도 외모에 이 정도 기량을 가진 선수 다섯 명이 차례로 입학해 같은 시기에 뛸 수 있었던 것 자체가 연세대와 한국 농구에는 '천운'이었고, 또 그런 다섯 명이 완벽한 팀워크와 시너지 효과를 보여주면서 성인 무대 최강의 자리까지 정복한 것은 이전에도 이후에도 없던 발자취다. 실력과 스타성 면에서 도무지 흠 잡을 데가 없는 '완전체'였던 셈이다.
그런 이들은 일간스포츠 창간 50주년을 기념하기에 가장 적합한 인물이었다. 졸업 이후 한 번도 카메라 앞에서 함께 인터뷰한 적이 없다는 다섯 명을 한 자리에 모으기 위해 일간스포츠 스포츠팀 최용재·김희선·김지한 기자가 역할을 나눠 섭외에 나섰다. 각자 자신의 자리에서 누구보다 바쁘게 활약하고 있는 다섯 사람의 일정을 조율하는 것 자체가 '미션 임파서블'. 하지만 충분한 가치가 있는 일엔 어떠한 노력도 다 쏟아 붓는 것이 일간스포츠의 자세다.
무엇보다 다섯 명 모두 "우리가 함께 모일 수 있다면 무조건 참석하겠다"고 흔쾌히 마음을 열면서 '독수리 5형제 리유니언 프로젝트'는 급물살을 탔다. 대선배들의 '합체' 소식을 들은 연세대 농구부 은희석 감독은 밤늦은 시간에도 흔쾌히 체육관 문을 열어 주며 힘을 보탰다. 그렇게 문경은, 이상민, 우지원, 김훈, 서장훈이 25년 만에 연세대 체육관에 나란히 서는 명장면이 만들어졌다.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 다시 만났지만, 이들의 역할은 과거와 같았다. 언제나 듬직하고 믿음직스러운 선배였던 문경은은 여전히 아이돌 그룹의 리더처럼 후배들을 진두지휘했다. "팬들이 준 종이학 20억 마리를 함께 놔뒀더니 알을 낳아서 30억 마리로 불어났다"는 문경은의 '아재 개그'에 연세대 체육관이 떠나가라 웃음이 터졌을 정도다.
'컴퓨터 가드'라 불릴 만큼 명석한 경기 리드와 자로 잰 듯한 패스가 일품이었던 이상민은 이날도 인터뷰의 완급을 조절하는 최고의 포인트 가드로 활약했다. 대화가 여기저기로 잔가지를 뻗칠 때마다 다시 원래 질문으로 돌아와 방향을 잡았고, 진지함과 익살의 밸런스를 맞추는 역할도 했다.
여성팬이 가장 많았던 선수로 인정 받은 우지원은 3점슛처럼 적절하고 재미 있는 에피소드를 풀어 놓으면서 모두가 무릎을 치게 만들었다. 예나 지금이나 사람 좋은 미소를 뽐내는 김훈 역시 활발한 입담을 뽐내는 선배와 후배들에게 연신 엄지를 치켜 세우면서 지원 사격했다.
한국 프로농구 통산 최다 득점 기록 보유자인 서장훈은 '황금 막내'의 위용을 뽐냈다. 골밑에서 당대 최강 센터로 군림했던 그는 이날 인터뷰 자리에서도 '센터'에 앉아 때로는 과감하고 때로는 조심스러운 화법으로 대화를 이끌었다. 행여 오해의 소지가 있는 발언이 나올 때면 "이건 기사에 나가면 안되겠다"고 센스 있게 막아내는 것도 그의 역할이었다.
오후 9시에 시작돼 11시를 넘겨서까지 이어졌던 추억 여행.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았던 두 시간 남짓 동안 그들과 기자들은 모두 1994년으로 돌아가 과거의 찬란했던 기억들을 되짚었다. 이제 어느덧 40대가 된 독수리 5형제와 왕년의 소년·소녀팬 모두에게 잊지 못할 순간이었다.
우지원은 인터뷰를 마치면서 "이렇게 우리가 한 자리에 모여 있다는 것 자체가 무척 행복했다. 더 할 말이 없다"고 했다. 우리도 그랬다. 다섯 명이 함께 마주보고 웃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설레고 감격했다. 서장훈은 "앞으로 우리도 계속 나이를 먹을 텐데, 더 자주 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했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그들을 앞으로도 더 자주 보고 싶다. 그리고 모두가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늘 환하게 빛났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