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50 단독인터뷰]②'25년' 만에 뭉친 연세대 농구 5인방 "최고 권위 대회서 대학생이 우승한 최초 사례"
등록2019.09.25 06:00
독수리 5인조의 폭발적 인기는 화려한 외모에서만 나온 것이 아니다. 외모로서는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이들은 비주얼과 함께 최고의 실력도 갖췄다. 그렇기에 이런 열광을 이끌어낼 수 있었다. 1993~1994시즌 농구대잔치에서 연세대는 정규리그에서 14전 전승을 거뒀고, 플레이오프를 포함해 20연승을 내달렸다. 그 누구도 연세대의 독주를 막을 수 없었다.
상무와 결승 3차전에서 유일하게 1패를 안았고, 4차전에서 다시 승리하며 우승을 차지했다. 21승1패. 꽃미남 대학생 오빠들은 역대 최고 승률로 우승컵을 안았다. 서장훈은 리바운드왕과 함께 MVP와 신인상을 독식했다. 문경은은 득점왕, 이상민은 어시스트왕에 올랐다.
-농구대잔치 최초의 대학팀 우승을 일궈냈다.
서 : 기아랑 대등하게 붙을 수 있는 팀이 연대밖에 없었다. 기아전에서 마지막골을 넣은 사람이 훈이 형이다.
문 : 훈이가 드리블 세번인가 네번 쳐서 들어가 골을 넣었어. 훈이가 우리 중에 제일 느린데.
우 : 돌려봐도 1.9초 안에 넣을 수 없는 상황이었는데.
김 : 나도 빨랐어.
우 : 기아와 대적할 수 있는 팀이 연대말고는 없었어.
문 : 우리가 기아를 잘 이겼어. 기아를 이긴 게 기억에 많이 남지.
우 : 4강을 삼성이랑 하고 상무랑 결승에서 했어. 최초로 우승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이 : 아쉬운 건 결승에서 한 번 안 졌으면 전승우승이었는데. 농구대잔치 최초로.
문 : 한 번 만 이기면 전승우승이었는데. 아쉬웠지. 정말 아쉬웠어.
-화려한 외모와 함께 최고의 실력도 자랑했다.
문 : 3학년 때 최희암 감독님이 나보고 장훈이를 데려오래. 다 있는데 센터만 없다면서. 스피드와 높이를 다 갖춘 팀을 생각하셨어. 그런데 정말 장훈이가 운명처럼 왔어. 희철이가 고대가고, 주엽이도 고대를 갔고.
서 : 지금 생각하면 우리 5명이 한게 현대 농구에 맞는거야. 그때까지만 해도 가운데가 튼튼해야 이긴다고 빅맨 두 명을 세웠단 말이야. 그게 옛날 농구였어. 우리는 달랐어. 혁신적인 팀이었다니까. 한 팀에 3명의 슈터가 뛰는 팀은 그때도 없었고 지금도 없어. 3명 모두 고등학교 때부터 슈터였으니까.
우 : 그런 농구를 하는 팀이 없었지. 장훈이가 가운데 있으니까 가능했어. 장훈이 믿고 우리는 공격에 집중했지. 뛰는 농구했고 장점이 많았어. 특히 공격에서 장점이 컸어.
서 : 마이너스보다 플러스가 더 많았지. 내가 가운데 있으니까 공격이 수월했어. 우리 슈터들을 상대 빅맨들이 스피드로 못 따라갔으니까. 슛을 자신있게 던졌지. 정말 트렌디한 농구였어. 앞선 농구를 했다는거지.
이 : 장훈이가 센터지만 3점슛 능력도 가지고 있었어. 장훈이가 뒤로 나와서 슛도 많이 던졌어. 당시 센터가 외곽슛을 던지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었지.
우 : 장훈이처럼 빅맨이 밖으로 나와서 슛 던지는 게 한국 농구에는 없었어. 당시에는 찬반 논란도 있었던 것으로 기억해. 지금 생각해보면 현대 농구랑 더 잘 맞는 것 같아.
문 : 3명이 슈터가 아니야. 4명이 슈터지. 상민이도 슈터였어.
이 : 나 고등학교 득점왕 출신이야. 그런데 연대에 오니 슈터가 너무 많았어. 나보고는 패스만 하라고 했어. 슛을 쏠 필요도 없었어. 다들 슛도사들이라서.
서 : 어떤 종목을 통틀어서 그 나라에서 가장 권위있는 대회에서 대학생이 우승한 최초의 사례였어. 그 뒤로도 없었어. 우리가 실업팀과 세미프로를 이기고 우승한 최초이자 마지막 팀이었어. 이게 가장 중요한 거라고 봐. 이것 때문에 인기도 얻을 수 있었어.
문 : 전승으로 우승했어야 했는데.
-고려대에 대한 이야기가 빠질 수 없다.
문 : 연고전. 이기면 휴가받고 지면 죽는거지. 그것밖에 없었어. 경기를 금요일에 해. 이기면 다음 주 일요일까지 쉴 수 있어. 지면 바로 훈련. 그런데 한 번도 진 적이 없어 훈련은 못해봤어. 사실 고등학교 때 그렇게 많은 관중 앞에서 뛰어본 적이 없었어. 연고전은 경기장이 꽉 찼어. 4년 동안 이런 경기를 뛴 게 자랑스러워. 졸업하니까 더욱 자랑스럽더라.
우 : 연고전 이기면 1년이 편했고, 지면 1년이 힘들었고. 고대는 많이 힘들었겠다.
문 : 고대 애들이 우리를 못이겨서 그렇게 얼굴에 여드름 생기고 못생겨지고 그랬지. 하하.
이 : 연고전은 나에게 꿈이었어. 중학교 때 장충체육관에서 하는 정기전을 갔는데 관중이 어마어마하게 많은거야. 그 무대에 뛰는 꿈을 가지기 시작했어. 그때는 키도 작았고 농구도 못해서 막연한 꿈이었지. 그런데 정기전을 내가 뛴거야. 첫 경기를 잠실실내체육관에서 했는데 점프도 더 올라가고. 꿈을 이룬거지. 경기는 정말 터프했어. 나 역시 고대에 진 기억이 없다.
문 : 연고전은 정말 치열했지. 터프하기도 했고. 최희암 감독님이 작전타임 불러서 '참아, 참아' 이 얘기를 가장 많이 한 것 같아.
우 : 형들은 4년 내내 고대에 안 졌잖아. 난 3학년 때 처음 져봤어. 상민이 형과 장훈이가 대표팀으로 빠지니까 어떻게 할 수가 없더라. 그때 고대에는 주엽이가 있었고 선수 구성이 완벽했어. 차포떼고 하니 쉽지 않았어. 4학년 때도 장훈이가 없었고.
서 : 나는 형들과 조금 달라. 정기전을 1학년 때 한 번 출전했어. 2학년 때 국가대표로 빠졌고, 3학년 때는 경기가 안 열렸고. 마지막에는 부상을 당해서 못나갔을 거야. 그래서 연고전보다 농구대잔치 이런 경기가 나에게는 더 중요했던 것 같아. 우리에게 중요한 건 고대가 아니라 농구대잔치 우승이었어. 기아자동차와 경기가 더 중요했어. 우리가 연세대에 시험보고 들어온 것도 아니잖아.
문 : 야 나는 시험봤어. 학력고사 봤어.
서 : 시험은 나도 봤어.
우 : 주엽이 때부터 수능일껄.
-라이벌이 고려대가 아니라 문화대통령 서태지와 아이들이라는 분석이 있다.
문 : 내가 서태지 팬이었다. 비교도 안 되지.
서 : 93년, 94년 연세대 북문 앞에 서태지 씨가 살았다. 그래서 그런 이야기가 나온 것 같다. 또 우리 형들이 그런 얘기가 나올만큼 팬들이 많았다는 얘기지. 어디를 가도 팬들이 많았어. 팬들이 차를 둘러싸고 그랬으니까. 우리가 막 도망치기도 했어. 옷 찢기고 넘어지고. 우리가 탄 것 처럼 해서 차를 보내고 다른 차를 타고 뒷문으로 간 적도 많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