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환의 가수 인생이 이립(而立)을 맞았다. "최고가 아니면 안된다"는 일념 하에 명반을 고집해온 그의 확고한 신념이 빛을 발하는 시기다. 데뷔 30주년에 내는 정규 12집엔 그의 가수 인생을 총망라한 10개의 트랙이 담겼다. 이승환은 "단언컨대 최고의 앨범"이라고 자신하면서도 "데뷔일에 발매되는 만큼 초심을 찾는 활동을 펼치겠다"고 말했다.
이승환은 15일 열 두 번째 정규앨범 'FALL TO FLY 後 (폴 투 플라이 후)'를 발매하고 5년 만의 정규 컴백을 알렸다. 그동안 미니앨범이나 싱글 활동은 펼쳤지만 정규로는 오랜만에 팬들을 만나는 그는 "나이든 가수에 호의가 없는 가요계이라지만, 트렌드를 놓치고 싶지 않고 현역의 음악인이라는 것을 30주년을 통해 보여주고 싶다. 나로 인해 수명이 연장될 수 있고, 음악인의 선례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후배들에게는 노쇠한 음악인이라는 손가락질을 받지 않고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선배의 음악을 보여주고 싶은 음반"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이번 앨범에도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미국에 체류하며 5억원을 들여 앨범을 제작해 "동양에서 왕자가 왔다"는 소문에 시달렸던 정규 4집만큼은 아니지만, 리얼사운드를 고집하며 완벽한 사운드를 구현해내는 것은 변함없는 그의 철칙이다. 그를 둘러싼 환경은 변했다. 이승환은 "미국 캐피톨 스튜디오에서 작업을 했는데, K팝 영향력에 깜짝 놀랐다. 전에 없었던 환대를 받기도 했다"며 현장에서 받은 느낌을 전했다.
타이틀곡 '나는 다 너야'는 트렌드인 뉴트로(뉴+레트로) 공식을 따른 노래로, 1960년대 모타운 사운드에서 착안했다. 빈티지 악기들과 앰프 등만을 사용하여 요즘 가요계에서 듣기 힘든 사운드를 만들었다. 녹음 당시에도 빈티지 드럼을 세팅하고 여러 명의 드러머가 연주한 것 중에 가장 예스럽고 정제된 트랙을 채택하여 빈티지 악기들을 쌓아나가는 방식을 택했다는 전언이다. '가끔 아니 자주 소중함을 잊고 살았네'라는 공감을 이끄는 가사에 경쾌한 재즈풍 멜로디가 어우러졌다. 이승환은 "어렸을 때 모타운 노래를 많이 듣고 자랐다. 어려서 듣는 노래는 커서도 마음에 남아 있지 않나, 최근 레트로나 뉴트로 열풍에 시도해보자는 생각을 했다. 미국에서 빈티지 악기를 섭외해 트랙을 쌓아가는 방식으로 작업했다. 요즘은 잘 하지 않는 스타일"이라고 설명했다. 이밖에도 앨범엔 1999년 이승환 밴드의 건반주자이자 미국 주류 영화음악가로 활동 중인 박인영과 호흡한 '백야', '천일 동안'·'어떻게 사랑이 그래요' 등과 같은 모던 록 장르의 '10억 광년의 신호', 정치적 목소리를 담은 '돈의 신', 청춘을 대변하는 '생존과 낭만 사이' 등 이승환 음악을 총망라한 트랙이 수록됐다. 많은 곡 중 가장 풋풋한 트랙인 '나는 다 너야'를 타이틀곡으로 뽑은 이유에 대해 이승환은 "20년 동안 타이틀곡 선정에 실패했다. 엉뚱한 노래들이 흥행에 성공하더라. 이번에는 처음으로 연령대 별로 앙케이트를 진행해서 타이틀곡을 선정했다. 3040대에서 '나는 다 너야'를 좋아하더라. 내 주변 음악하는 친구들은 다른 노래를 꼽았지만, 이젠 대중들의 선택을 따라야 한다는 생각"이라고 덧붙였다.
첫 번째 트랙엔 데뷔 30년을 곱씹는 노래 '30년'이 담겼다. '타임머신을 타고 30년 전으로 돌아간다면, 그때의 나에게 무슨 말을 해줄까'라는 궁금증을 노랫말로 풀었다. 그는 "다시 시작하라고, 아직 조금도 늦지 않았다고. 그 누구라도 될 수 있어"라는 응원을 담았다. 또 '30년 후의 지금 나를 본다면 실망할까, 자랑스러워할까, 수고했다 말할까, 고마워할까'라며 지금의 모습을 객관화 했다. 오랜 음악 파트너인 이규호의 노래다. 이승환은 "아무도 하지 않았던 단 하나를 했던 30년을 살아왔다고 생각한다. 철저하게 가요계에서 이방인으로 살았다"고 30년을 정의했다.
이승환은 그 시절로 돌아갈 순 없지만 마음만큼은 처음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어린왕자'의 변함없는 외모를 바탕으로 '초심의 클럽투어-모여라 드팩'을 통해 서울, 부산, 대구, 광주 클럽을 돌며 팬들을 가까이 만났다. 6월 열린 '라스트 빠데이-괴물' 공연은 무려 93곡의 세트리스트로 9시간 30분이라는 국내 최장 공연 시간을 기록했다. 11월에는 체조경기장에서 데뷔 30주년 기념 대규모 콘서트 '무적전설'을 펼친다. 국내 공연계 신화로 남은 1999년 공연 '무적'의 감동을 재현하고 30년 이승환 음악인생을 새로 쓰는 역사적 무대가 될 전망이다. 컴백 기대감은 벌써부터 곳곳에서 느껴진다. KBS는 지난 12일 유튜브 채널을 통해 '어게인 가요 톱10-이승환 데이'를 6시간 동안 실시간 방송했다. MBC라디오는 15일 '이승환 30th, 무적의 히어로'를 편성해 180분간 이승환의 명곡을 조명하는 방송을 한다. 방송 말미엔 이승환 출연해 청취자가 뽑은 명곡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12집 작업 비하인드 등을 전한다. MBC 측은 "이같은 특집은 조용필 데뷔 50주년 이후 처음"이라는 의미를 부여했다. 이승환은 "쏜살같이 지나간 시간들이다. 오래 음악하신 분들이 많은데 유난떠는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하다"면서 "앞으로도 정직하게 음악하고자 한다. 차트에 오르겠다는 기대를 줄이고 인기를 얻겠다는 욕심을 줄였다. 겸허하게 좋은 음악 만들면서 내 팬이나 후배 음악인들에게 귀감이 되길 바라는 마음"이라고 강조했다. 황지영기자 hwang.jeeyoung@jtb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