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가을을 예견한 듯한 최고의 트레이드 카드가 됐다. 키움 포수 이지영(33) 얘기다.
이지영은 지난해 12월 삼성→SK→키움으로 이어지는 삼각 트레이드를 통해 키움 유니폼을 입었다. 데뷔 후 줄곧 몸 담았던 삼성을 떠나 키움으로 왔고, 잠시 그라운드를 떠나 있던 주전 포수 박동원이 복귀하면서 선발 포수 마스크를 번갈아가며 쓰게 됐다.
장정석 키움 감독은 외국인 선수 둘과 젊은 선발 둘을 이지영과 박동원에게 각각 한 명씩 나눠 맡겼다. 제이크 브리검과 이승호가 나설 때면 이지영이 안방마님을 맡고, 에릭 요키시와 최원태가 선발 등판하는 날은 박동원이 주전 포수를 맡는 식이다. 이같은 기용 방식은 포스트시즌에서도 그대로 이어질 계획이었다.
하지만 뜻하지 않은 변수가 생겼다. 박동원이 포스트시즌을 앞두고 무릎 부상을 당했다. 3주에 걸친 치료를 받고 준플레이오프(준PO)에는 무사히 나섰지만, 3차전에서 홈으로 파고드는 주자를 태그하다 다시 탈이 났다. 대타로는 나설 수 있어도 포수 수비는 불가능한 상황이 됐다. 최원태 전담 포수인 박동원이 마스크를 쓸 수 없게 되자 장 감독은 부랴부랴 젊은 백업 포수 주효상을 4차전에 함께 내보냈다. 그러나 결과는 썩 좋지 않았다. 결국 선발 투수가 조기 교체되면서 포수도 함께 이지영으로 바뀌었다.
PO에서도 박동원은 포수로 나설 수 없다. 동시에 이지영의 어깨가 더 무거워졌다. 만약 키움이 한국시리즈까지 진출하게 된다면, 체력적인 부담도 무척 클 수밖에 없다. 장 감독도 "다른 부분은 다 어느 정도 계획이 있는데, 선발 포수 한 자리만 고민하게 된다"고 했다.
그러나 이지영은 공수 전반에서 보여주는 활약으로 그 걱정을 덜어가는 중이다. 2012년부터 2015년까지 4년 동안 삼성에서 꾸준히 한국시리즈 무대를 밟았던 이지영이다. 이번 포스트시즌 전까지 한국시리즈만 19경기에 나섰다. "가을에 준PO는 처음 치러봤다"고 말할 정도로 '삼성 왕조' 출신의 경험과 노하우가 몸에 배어 있다.
준PO 1차전과 PO 1차전에서 자신의 담당 투수인 브리검의 무실점 호투를 이끌어냈다. 브리검은 정규시즌에도 좋은 투수였지만, 이번 포스트시즌에서 더 강력한 피칭으로 LG 타선과 SK 타선을 제압했다.
이뿐만 아니다. 키움은 PO 1차전에 모두 9명의 투수를 투입했다. 1이닝도 아닌 ⅓이닝과 ⅔이닝 단위로 불펜 투수가 수 차례 바뀔 만큼 현란한 마운드 운영을 했다. 이지영은 이 투수들과 모두 호흡을 맞춰 무실점 경기를 이끌었다. 특히 늘 선발 배터리를 이뤄 온 이승호가 8회초 원포인트릴리프로 깜짝 등판한 뒤 직구-커브-직구 조합으로 스트라이크 3개를 연속으로 꽂아 넣고 고종욱을 순식간에 3구 루킹 삼진으로 잡아낸 순간은 둘의 찰떡 호흡을 보여주는 명장면이었다. 이지영은 공 3개만으로 임무를 완수하고 내려가는 이승호의 등 뒤에 말없이 박수를 보냈다.
포수로서만 활약한 것도 아니다. 공격에서도 2안타를 때려내고 볼넷 2개를 골라내며 고군분투했다. 키움의 막강한 상위타선과 그에 비해 상대적으로 무게감이 떨어지는 하위타선 사이에서 훌륭한 연결고리 역할을 했다. 비록 득점으로 연결된 안타는 아니었지만, SK에 경계심을 심어 주기엔 충분했다.
정규시즌에는 큰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못했던 이지영. 그러나 가을이 오자 비로소 큰 경기 경험이 많은 이지영의 진가가 드러나고 있다. 창단 첫 한국시리즈 우승에 도전하고 있는 키움에는 가장 든든한 자산 가운데 하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