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 팀 더그아웃의 화제는 1차전에서 오재일이 터트린 끝내기 안타나 2차전 선발 이영하와 이승호의 맞대결이 아니었다. 키움 한 선수의 '더그아웃 야유'가 그 어느 화두보다 크게 주목 받았다. 키움 내야수 송성문(23)이 1차전 당시 더그아웃에서 두산 선수들을 향해 '트래시 토크'를 하는 장면이 한 매체가 무단 게재한 영상을 통해 공개됐기 때문이다.
이 영상에는 더그아웃에서 응원을 하던 송성문이 두산 일부 선수들을 놓고 "팔꿈치 인대 나갔다!" "햄스트링으로 재활!" "최신식 자동문이다!"와 같은 고함을 치는 장면이 담겨 있다. 이 영상을 올린 업체는 이 내용에 친절하게(?) 자막까지 달아 '송성문 입덕(빠져들게 만드는) 영상'이라는 제목을 붙여 당당히 포털사이트에 내걸었다.
당장 인터넷이 난리가 났다. 두산 팬들은 분노했고, 키움 팬들도 "너무했다"며 손가락질을 했다. 2차전을 앞둔 김태형 감독은 느닷없이 상대팀 선수의 막말과 관련한 질문을 받아야 했고, 장정석 감독은 전날 대타로 나가 동점타를 친 선수를 선발 라인업에 올리고도 괜한 눈치를 봐야 했다.
가장 좌불안석이던 건 당사자인 송성문이다. 가뜩이나 1차전에서 끝내기 패배를 당해 상승세가 꺾였던 팀 분위기에 더 찬물을 끼얹었기 때문이다. 송성문은 결국 공식 사과의 자리를 자청해 수많은 카메라와 취재진 앞에서 고개를 숙였다. "나의 잘못된 행동으로 논란이 생겨 많이 후회하고 반성한다"며 "시리즈가 끝난 뒤 기회가 닿으면 직접 두산 선수들을 만나 진심으로 정중하게 사과하고 싶다"고 했다. 또 "팀 선배와 동료들이 나를 신경쓰지 않고 좋은 경기를 해주셨으면 좋겠다"고 미안해했다.
더그아웃에서 상대편 팀에게 이런 저런 야유를 보내는 것은 선수단의 음지 응원 문화 가운데 하나다. 키움뿐 아니라 수많은 팀 선수들이 경기 도중 비슷한 방식으로 조롱성 트래시 토크를 한다. 상대팀 기를 죽이겠다는 의도보다는 같은 팀 선수에게 기를 불어 넣기 위한 목적이 더 크다. 베테랑 포수들이 타석에 들어선 상대 타자에게 괜한 농담을 건네 집중력을 흐트러뜨리는 행위도 이와 비슷하다. 박수 받을 행동은 아니지만, 선수들 사이에서는 일반적인 일이기에 지나친 비난을 받을 필요도 없다는 얘기다. 송성문과 관련한 이야기를 들은 두산 선수들이 일반 팬들보다 오히려 더 너그럽게 받아들인 이유이기도 하다.
다만 송성문의 발언은 서로 용인할 수 있는 수위를 넘어섰기에 문제가 됐다. '자동문'과 같은 발언은 오히려 두산 선수단이 납득할 수 있는 내용이지만, 부상 경력이 있는 선수를 향해 내뱉은 "2년 재활!"과 같은 외침은 적정 수준을 넘어섰다는 게 중론이다. 응원과 조롱을 넘어 동업자 정신을 망각한 것으로 느껴질 수밖에 없다. 키움 주장 김상수까지 나서 "두산 선수들에게 죄송하다. 포스트시즌에서 활기차게 응원하는 분위기를 만들자고 했던 내 잘못인 것 같다"며 "내가 선수들에게 그 전에 미리 이야기를 하고 단속을 해야했는데 그렇지 못했다"고 함께 사과한 이유다.
무엇보다 더 큰 문제는 이 영상의 유출 경로다. 이 영상은 KBO 공식 영상을 제작하는 외주업체 담당 스태프가 사전 협의 없이 무단으로 한 매체에 몰래 제공한 것으로 밝혀졌다. KBO 홈페이지와 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 올릴 영상을 제작해야 할 직원이 사실상의 더그아웃 '몰래 카메라'를 외부에 팔아넘긴 것이다. 구단이 제작하는 영상이었다면 자체 필터링을 거쳐 두산 선수단을 자극할 만한 발언을 미리 편집했겠지만, 동영상 제공 업체와 촬영자 모두 어떤 권리와 책임도 없는 입장이라 경솔한 판단을 피하지 못했다.
KBO는 "이 스태프에게 지급된 출입증은 오직 KBO 공식 영상을 찍기 위해 발급된 것이다. 그리고 이 영상을 제공받아 올린 매체는 공식적으로 출입하는 매체가 아니다"라며 "해당 동영상을 촬영한 외주업체에 경위서 제출을 요구했고, 이번 일에 대해 법적 조치도 고려하고 있다"고 했다.
더그아웃에 드리워졌던 커튼이 불법 경로를 통해 열려 버렸고, 그 틈으로 드러난 한 선수의 민낯이 큰 파장을 일으켰다. 이 난장판 속 유일한 승자는 오직 꿋꿋이 승리를 가져간 두산뿐이다. 야유의 당사자였던 김재호는 "그렇게 커질 일도 아니다. 당사자가 직접 사과하면 될 일"이라고 감쌌고, 박건우 역시 "어린 선수가 너무 들떠서 벌어진 일이다.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