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리적인 선택을 했다. 이제 상식적인 지원에 전념 해야 한다. 롯데 프런트에 필요한 자세다.
2019 KBO 리그 정규시즌 최하위 롯데가 새 출발을 위한 주춧돌을 놓았다. 19대 감독으로 허문회(47) 전 키움 수석 코치를 선임했다. 27일 오전에 보도자료를 내고 공식화했다. 계약 기간은 3년. 몸값은 10억 5천만원(계약금 3억원·연봉 2억5천만원)이다. 구단은 "국내외 감독 후보들과 심층인터뷰를 진행했다. 소통 능력, 데이터에 기반한 경기 운영 능력, 지도자로서의 성과 및 선수단의 신임도 등을 중심으로 역량 평가를 했다"며 선임 배경을 설명했다.
롯데는 지난 9월에 이례적인 행보를 했다. 공석인 1군 감독 후보군을 발표했다. 제리 로이스터 전 감독, 현 2군 감독인 래리 서튼 그리고 전 현대 외인 타자이자 현 오클라호마시티(LA 다저스 산하 트리플A)에서 타격 코치를 하고 있는 스캇 쿨바를 내세웠다. 공필성 대행을 포함해 국내 지도자도 물망에 있다고 전했다.
외인 선임 방침을 드러낸 것이나 다름 없다. 마침 해외 스카우트 출신 성민규가 단장으로 부임했다. 전면적인 체질 개선을 도모하려는 의지였다. 그러나 최종 선택은 국내 지도자였다. 외인 1순위던 쿨바는 조건에 이견을 좁히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허문회 신임이 차선 인사라는 의구심을 줬다.
실상은 중요하지 않다. 롯데의 선택은 나쁘지 않다. 일단 허 신임은 전문성을 인정 받았다. 선수의 개별 스윙 메커니즘과 지향점을 인정하면서도 근력 강화와 심리 개조를 유도하는 성향이다. 성과도 뚜렷하다. 2014시즌에 그가 지도한 박병호는 홈런 52개를 치며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강정호는 유격수 최초로 40홈런을 넘어섰다. 서건창은 한 시즌 최다 안타(201개) 신기록을 세웠다. 이들은 모두 허 신임의 지원에 감사 인사를 전했다. 차명석 LG 단장, 이동욱 NC 감독처럼 야구 공부를 많이 하는 지도자로도 알려져있다.
이력도 초라하지 않다. 더이상 1군 사령탑 경험이 없는 지도자가 선임되는 결과가 파격으로 평가 받지 않는다. 올 시즌 5강팀 사령탑들이 증명한다. 모두 감독 데뷔 시즌 또는 두 번째 시즌 만에 팀을 포스트시즌으로 이끌었다. 경력이 실력을 대변하진 않는다.
허 신임은 전문성을 인정 받았을 뿐아니라 한국시리즈에 진출한 팀에서 수석 코치를 역임했다. 한용덕 한화 감독, 이강철 KT 감독처럼 '필수' 이력이 있다.
선후배 사이에 신망이 두터운 동료로도 여겨진다. 그의 야구 인생을 살펴보면 납득이 된다. 1994년 드래프트 1라운드에서 해태의 지명을 받은 유망주였다. 그러나 한대화와 김상훈을 메인 카드로 단행된 트레이드에 포함되며 LG 유니폼을 입었다. 이적 직후에는 주전감으로 여겨졌지만 상대적으로 무명이던 서용빈에 자리를 내줬다. 현역 내내 벤치 멤버였다.
이후에도 두 차례 더 트레이드를 겪었다. 2003시즌을 끝으로 은퇴했고, 프로가 아닌 고등학교에서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다. 이런 굴곡은 야구과 타인을 향한 이해와 배려를 키우는 밑거름이 된다. 그가 다양한 선수를 아우르는 지도자일 것이라는 기대감이 생기는 이유다. 선임 발표 직후 남긴 "편견 없는 선수 기용을 하겠다"는 각오에 진심이 전해진다. 허 신임이 갖춘 조건을 감안하면 롯데의 선택은 순리다.
기대감만 있는 건 아니다. 전임 감독들도 구단이 내세운 선임 기준에 부합했다. 양상문 감독은 주축 이대호부터 백업 멤버까지 두루 긴밀하게 소통 했다. 조원우 감독도 SK 수석 코치 시절에는 강단 있고 신뢰 받는 지도자로 평가 됐다. 데이터 활용은 현대 야구의 기본이다.
선임될 시점에 갖췄던 역량이나 평판을 비교했을 때 허 신임이 전임 감독들보다 더 나은 감독감으로 볼 수는 없다. 차별화된 경쟁력도 없다. 초짜 감독의 실패 사례가 반복될 수 있다는 우려가 더 크다.
롯데의 선택이 성공으로 평가 받으려면 최소한 허문회 신임이 자신이 선택 받은 이유를 온전히 증명할 수 있어야 한다. 이상과 현실의 간극을 좁히고 깨지고 배우며 자신의 야구를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 프런트는 지원하고 존중 해야 한다.
그동안 롯데의 현장 수장은 상대팀뿐 아니라 내부와도 싸워야 했다. 잡음이 끊이지 않았다. 이윤원 전 단장은 조원우 감독과의 불편한 관계가 외부에서도 알 수 있을만큼 드러났다. 이종운 감독은 결별 과정에서도 존중이 결여됐다. 양상문 감독도 부임 기간 내내 프런트 고위층의 성적 압박에 시달렸다
허 신임은 현 사장과 단장이 선택했다. 프런트의 압박과 개입, 입김이 작용할 소지가 있다. 반대로 지원과 존중을 보낼 수도 있다. 기존 코칭 스태프 다수가 퇴출되면서 분위기가 어수선하다. 외인 2군 감독 선임과 조직 개편으로 쇄신 의지를 전하기도 했다.
롯데는 어수선하다. 이런 상황일수록 감독이 중심을 잡아야 한다. 자율성 보장은 필수 조건이다. 구단이 숫자에 일희일비하지 않을 순 없다. 그러나 인내심이 필요하다. 이전과는 달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