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뷰티 업계가 남들은 사용하지 않는 나만의 원료를 찾아 방방곡곡을 헤매고 있다. 제주도에서 자라는 산뽕 열매는 물론 좀처럼 찾기 힘든 히비스커스와 뱀약초까지 세계에서 진귀하다는 원료는 죄다 화장품에 넣고 있다. 한국 화장품 업계 전반이 "피부 개선에 효과가 좋고, 다른 브랜드 화장품과 차별화만 된다면 어떤 원료라도 넣겠다"는 각오로 똘똘 뭉친 분위기다.
산뽕나무는 물이 깨끗한 산기슭에서 주로 나고 자란다. 과거에는 전국에서 볼 수 있었지만, 공해가 심해진 이후에는 제주도 등 공기가 맑은 지역에서 주로 볼 수 있다. 산뽕나무와 잎사귀, 열매는 과거부터 약재로 쓸 정도로 두루 몸에 좋다고 알려진다. 동의보감에는 혈압, 혈관, 중금속 제거에 효능이 있다고 설명된다. 특히 뽕잎 속 폴리페놀 성분은 세포 대사과정에서 발생하는 활성산소를 제거해 노화를 억제하는 효과가 있다.
어퓨는 산뽕나무에서 추출한 '산뽕나무 콤플렉스'를 앰플과 크림에 각각 72%, 60% 담았다. 한국피부과학연구원에서 잡티, 기미, 주근깨 완화 개선도 부분에서 긍정적이라는 설문 결과도 받았다. 조정민 에이블씨엔씨 어퓨사업본부장은 "산뽕나무 잡티 앰플과 크림은 잡티와 주근깨로 고민인 여성들을 위한 아이템"이라고 설명했다.
천연유래 기능성 화장품 브랜드 아이소이는 뱀약초를 넣은 일명 귀신앰플로 불리는 '시카 더블 이펙트 앰플'로 인기몰이 중이다.
뱀약초는 '사상자'의 다른 이름이다. 한방에서 뱀약초는 축축하고 가려운 피부를 개선하고, 허리 통증 완화에 도움이 된다. 귀신앰플에는 세리신, 겨우살이, 병풀 등 피부 진정 및 손상복원에 탁월하다고 알려진 원료가 들어가 있다. 쉽게 달아오르는 피부를 진정하고 톤을 개선하는데 영향을 미친다.
아이소이 관계자는 "시카고라인은 전 제품 모두 뱀약초, 세리신 등 피부 진정 및 손상복원에 탁월한 동서양 대표 성분을 활용하여 피부 자극 걱정 없이 매일 사용할 수 있다"며 "상위 10%의 민감성 피부에 좋은 원료를 엄선하고 있다. 독일 천연 화장품 전문가 바일란트 연구소장의 33년 연구결과 및 322개 테스트 제품을 통해 만들어졌다"고 말했다.
스킨케어 브랜드 듀이트리는 올해 초부터 단일 성분만 담은 '100 마스크'를 출시해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마스크팩마다 자작나무, 모과, 히비스커스 추출물로만 채웠다. 특히 히비스커스는 동인도와 열대지방, 북미, 중국에서 주로 생산된다. 항산화 효과 및 다이어트에 좋다고 알려지면서 최근 뷰티 제품은 물론 먹거리 원료로 많이 쓰인다.
듀이트리 관계자는 "앞으로도 자연의 긍정 에너지를 가득 품은 제품을 개발하여 소비자들에게 다가갈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전했다.
장어·새싹귀리·완두·…먹어도 되는 국내산 원료도 인기
먹어도 되는 식품에서 피부에 좋은 물질을 찾는 사례도 늘고 있다. 향후 화장품 원료로 발전시킬 경우 K뷰티도 풍성해질 수 있다.
농촌진흥청은 지난달 세계 처음으로 새싹귀리 추출물의 아토피 피부염 감소 효과를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르면 새싹귀리 추출물을 3주 동안 피부염이 있는 곳에 도포한 결과 무처리군에 비해 가려움증이나 홍반 같은 피부 이상 증상이 32%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새싹귀리 추출물이 염증을 억제하고 비만세포의 피부조직 내 침윤을 막아 피부 세포 증식과 항상 유지에 도움을 줬을 것으로 분석된다는 것이 농촌진흥청의 설명이다.
포항의 사회적기업 '더 해피트리'는 장어 표면 점액의 루신 성분을 활용해 화장품을 개발했다. 달팽이의 끈적이는 '루신' 성분이 장어의 미끈거리는 성분과 같다는 사실에 착안해 이뤄진 연구였다. 이 업체는 항생제를 쓰지 않은 포항지역의 영일만검은돌장어의 특허권도 갖고 있다.
2010년 제10차 생물다양성협약 당사국총회에서 채택된 국제협약에 따르면 토착 생물자원을 이용하려면 해당 국가에 사전 통보와 승인을 받아야 하고, 이익은 상호 합의된 계약 조건에 따라 공유해야 한다. 아모레퍼시픽은 2015년부터 나고야 의정서 태스크포스(TF)를 꾸리고 '울릉 국화' 같은 특이 자생식물이나 '납작콩'과 같은 신품종에 대한 연구개발을 진행하고 있다.
실제 먹어도 되는 국내산 원료를 화장품으로 출시해 주목받는 제품도 있다.
아모레퍼시픽의 자연주의 화장품 브랜드 이니스프리는 제주산 채소를 원재료로 한 미스트와 앰플로 구성된 '슈퍼푸드 베지워터 토닝 라인'을 선보였다. 제주산 당근, 밀싹, 방울양배추, 콜라비, 아스파라거스 등이 포함된 '채소수포뮬러'로 피부에 풍부한 비타민과 미네랄 성분을 전달한다. 동물성 원료와 부산물을 배제했으며, ‘EVE(프랑스 비건 인증 마크)’를 획득한 100% 비건 화장품이다. 당근의 베타카로틴 성분은 항상화 효과가 뛰어나 건강한 피부관리에 도움이 된다. 특히 이니스프리가 택한 제주산 당근은 국내산 중에서도 영양과 수분이 풍부하기로 유명하다.
아이소이도 국내산 완두콩 추출물 75%와 완두콩 단백질 및 천연보습인자 히알루론산으로 만든 '완두'를 출시했다. 완두콩은 비타민A, 비타민C, 글루타민산이 풍부하다. 완두 라인은 특히 수분이 부족한 20대가 자극 없이 탄력을 관리하기에 적합하다는 평가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국제협약에 따라 다른 나라 원료를 사용하려면 로열티 등 비용이 증가한다. 앞으로 국내산 희귀 원료를 발굴하고, 제품화하는 시도가 더 많아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