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창경찰서 민원실 A순경이 지난 7월 17일 여성 민원인에게 보낸 카톡 메시지. [사진 보배드림 캡처]운전면허증을 발급받으러 경찰서에 간 여성 민원인의 개인정보를 이용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마음에 든다"고 연락한 A순경에 대해 전북경찰청이 "개인정보 보호법 위반으로 처벌하기 어렵다"는 결론을 낸 것으로 확인됐다. "A순경을 개인정보 처리자로 볼 수 없다"는 유권 해석을 따랐다. 아직 내부 징계 절차는 남았지만, "경찰이 남녀 성별에 따른 문화적 차이와 경찰관의 연락을 받았을 때 여성이 갖는 두려움이나 공포심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북경찰청은 19일 "민원인의 개인정보를 이용해 사적으로 연락한 A순경에 대해 내사 종결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경찰은 대통령 소속 합의제 행정기관인 개인정보보호위원회의 법률 유권 해석 결과를 판단 근거로 삼았다.
전북경찰청에 따르면 개인정보보호위원회는 최근 "경찰서 민원실 소속 A순경은 정보 처리자로 볼 수 없다"는 취지의 유권 해석을 내렸다. 개인정보 보호법에 따르면 '개인정보 처리자'란 업무를 목적으로 개인정보 파일을 운용하기 위해 스스로 또는 다른 사람을 통해 개인정보를 처리하는 공공기관, 법인, 단체 및 개인 등을 말한다.
개인정보보호위원회는 "(해당 법률에서) 개인은 정보를 처리하는 주체로 관련 업무를 담당하는 직원이 아닌 법인의 사업자 등이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이런 이유로 "A순경은 개인정보 처리자가 아니라 '취급자' 정도로 봐야 한다. 처리자에 대한 처벌을 명시한 관련 법을 위반한 것으로 볼 수 없다"는 유권 해석 결과를 전북경찰청에 보냈다.
앞서 A순경은 지난 7월 17일 국제운전면허증을 발급받기 위해 고창경찰서를 찾은 여성 민원인 B씨의 개인정보를 이용해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내 논란이 됐다. "저는 아까 국제운전면허증 발급해 준 사람이에요.ㅎㅎ" "마음에 들어서 연락하고 싶어서 했는데 괜찮을까요?" 등의 내용이었다. 이튿날 모 온라인 커뮤니티에 B씨 남자 친구가 글을 올리면서 사건이 알려졌다.
당시 남자 친구는 해당 글에서 "메시지를 받는 순간 여자 친구가 너무 불쾌해했고, 저 역시 어이가 없었다"며 "아주 심각한 개인정보 보호법 위반"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여자 친구는 집 주소까지 (서류에) 적었는데 찾아오는 건 아닌지 매우 두려워한다"며 "일단 국민신문고에 처벌을 원한다고 민원을 냈다. 가벼운 처벌이 내려질 경우 직위해제를 요구하는 민원을 다시 넣겠다"고 했다.
논란이 커지자 전북경찰청은 A순경을 상대로 민원인에게 연락한 의도와 개인정보 보호법 위반 여부 등을 조사해 왔다. A순경은 정식으로 입건되지는 않아 참고인 신분이었다. 전북경찰청 관계자는 "자체적인 내사 종결에 따른 시비를 없애기 위해 공신력 있는 타 기관에도 법률 유권 해석을 의뢰했다"며 "조만간 해당 경찰서에서 징계위원회를 열어 A순경에 대한 처분을 결정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인권·여성단체에서는 "인권 감수성을 높이겠다는 경찰이 민원인의 정보를 사적으로 다룬 직원 입장에서 판단하는 건 전형적인 '제 식구 감싸기'"라고 지적했다.
황지영 전주시 인권옹호관(전 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 공동대표)은 "이 문제를 개인정보 보호법에 한정하거나 공무원과 민원인이 아닌 남녀 문제로 보는 건 부적절하다"며 "성 인지 감수성을 가지고 본다면 A순경이 한 건 스토킹이고 성희롱"이라고 비판했다. 성 인지 감수성이란 성별 간 불균형에 대한 이해와 지식을 갖춰 일상생활 속에서의 성차별적 요소를 감지해 내는 민감성을 말한다.
황 인권옹호관은 "공무를 수행하는 경찰관이 자기가 다루는 민원인의 정보를 업무와 무관하게 사적으로 취급해도 잘못이 아니라는 건 개인정보 보호법을 지나치게 협소하게 해석하는 것"이라며 "청장이 인권이나 성 인지 감수성이 부족해 빚어진 문제를 방치하면 결과적으로 경찰에 수사를 의뢰하는 민원인의 권리를 침해할 수 있다"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