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이하 공정위)가 'SNS 스타'인 인플루언서에게 대가를 주고 긍정적인 광고 후기를 요청하고도 이를 공개하지 않은 국내외 뷰티 대기업에 과징금을 부과했다. 정보를 제대로 고지하지 않았고, SNS 스타를 믿고 구매한 소비자의 합리적 선택권을 기만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국내 업계는 공정위의 이런 조치가 "아직 부족하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선도적 차원에서 경종을 울릴 수는 있으나 진짜 SNS 스타 홍보의 문제를 시정하기 위해서는 우후죽순 늘고 있는 인플루언서 마케팅 업체부터 잡아야 한다는 것이다.
대기업, 인플루언서에 돈 주고 광고 사실로…업계 "빙산의 일각"
"대기업만 주로 잡았는데…글쎄요. 일종의 선도 차원 정도로 보여지죠."
국내에서 중소 뷰티 브랜드를 홍보하고 있는 A사 관계자는 25일 공정위의 발표를 두고 이렇게 말했다.
공정위는 25일 화장품·가전·다이어트 보조제 업체 등 7곳이 인플루언서들을 통해 광고하면서 '광고'라는 사실을 밝히지 않았다며 '표시·광고 공정화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시정명령과 함께 2억6900만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대부분 유명 브랜드를 다수 보유한 뷰티 기업이 징계를 받았다. 4개 화장품 업체(LG생활건강·아모레퍼시픽·LOK·LVMH코스메틱스)와 2개 다이어트보조제 판매업체(TGRN·에이플네이처), 가전 판매업체 다이슨코리아 등 7개사다.
공정위에 따르면 이들 7개 업체는 인플루언서들에게 자사 상품을 소개·추천하는 게시물을 인스타그램에 작성해달라고 요청했다. 이들이 해시태그(검색용 꼬리표 단어)·사진 구도 등까지 구체적 조건을 달아 게시를 부탁했다.
이를 대가로 인플루언서들에게 제공한 현금과 무상 상품은 모두 11억5000만원 상당으로 드러났다. 하지만 해당 작성된 게시물 가운데 ‘사업자로부터의 대가를 받았다’는 사실이 표시되지 않은 게시물은 4177건에 달했다.
LOK를 제외한 6개 기업은 잘못을 인정하고 수정과 삭제 등의 방법으로 시정 조치를 했다. 그러나 LOK는 총 1130건의 위반 게시물 중 254건(22%)을 시정하지 않았고, 과징금과 시정명령, 공표명령을 부과받았다.
업계는 공정위가 사실상 본보기 차원에서 대기업 위주로 전수조사하고 있다고 봤다.
A사 관계자는 "아모레퍼시픽은 '설화수', LG생활건강은 '숨마' 등 인플루언서 마케팅 없이도 잘 나가는 럭셔리 브랜드가인플루언서 마케팅을 했다가 잡혔다"며 "솔직히 이런 회사는 전체 액수는 클지 몰라도 숫자로는 많은 편이 아닐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실제 SNS 스타 마케팅은 잘 알려진 브랜드보다 무명에 가까운 중소 브랜드가 더 많이 하고 있다. 공정위가 대기업부터 잡은 것은 일종의 선도 차원이고 이를 대중에게 알리기 위한 부분도 있을 것"이라고 했다.
천연원료를 사용하는 뷰티 브랜드 B사 관계자 역시 "공정위가 이번에 발표한 것을 보면서 그야말로 '빙산의 일각'이란 생각이 든다"며 "요즘 중소 브랜드들은 SNS 스타 마케팅은 기본으로 들어간다. 유명 인플루언서 외에도 일반인인 '마이크로인플루언서'를 통한 마케팅도 인기"라고 말했다.
그는 "공정위의 이번 징계로 '조심하자'는 분위기는 생길 수 있을 순 있다. 하지만 중소 뷰티 업계가 얼마나 변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했다.
중소 업체들, 가짜 SNS 스타에 당하기도…적극 단속해야
뷰티 업계는 공정위가 대기업 위주의 징계 외에도 보다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 중소 브랜드의 어려운 사정을 이용해 인플루언서 마케팅을 하라고 부추기고 책무를 다 하지 않는 곳부터 단속해야 한다는 것이다.
패션 쇼핑몰을 운영하는 C사 관계자는 "SNS 스타 마케팅을 해주겠다면서 접근하는 마케팅사들이 정말 많다. 요즘 사업 잘되는 곳이 많겠나. 장사 안될 때 적게는 200만원, 많게는 1000만원에 인플루언서가 우리 쇼핑몰 광고를 해준다고 하니 우리로서는 '혹'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그런데 이 마케팅사가 가짜 인플루언서의 SNS에 홍보를 해줬다. 팔로워 숫자가 많아서 몰랐는데 알고보니 마케팅사에서 '팔로워 숫자 마사지'를 받은 스타였다"고 털어놨다.
'팔로워 숫자 마사지'란 사람을 대동해 팔로워 숫자를 고의적으로 늘리는 것을 일컫는다.
마케팅사가 키운 가짜 인플루언서가 적지 않다는 건 업계의 공공연한 비밀이다. C사 관계자는 "후기글을 올렸다는데 효과 본 건 하나도 없었다. 돈만 날렸다"며 "우린 좀 낫다. 다른 업체는 SNS 스타 마케팅사에 일시불로 돈을 입금했는데 연락이 끊겨서 손해를 보는 곳이 적지 않다"고 말했다.
가짜 인플루언서만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이런 불량 마케팅 업체를 통해 SNS 스타 광고를 할 경우 광고 문구 삽입 등의 의무를 소홀이 할 여지가 많다.
A사 관계자는 "우리는 요즘 SNS 스타 마케팅을 할 때 정말 신중하다. 팔로워 숫자만 보고 계약하지 않고, 실제 댓글 내용과 피드백을 꼼꼼하게 본다"고 귀띔했다.
공정위는 향후 사진·동영상 등 SNS 매체별 특성을 고려해 추천·보증 심사지침을 개정, 게시물에 대한 대가 지급 사실을 소비자가 더 명확히 인식할 수 있도록 표시하는 방안을 마련한다는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