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시동'과 '백두산', '천문: 하늘에 묻는다'가 각기 다른 장르와 강점으로 겨울 관객들을 만난다. 이미 '겨울왕국2'가 초겨울 1000만 대박을 스치고 지나간 자리인 만큼 황홀함에 빠져있던 관객들의 눈을 돌리는 것이 결코 쉽지는 않을 터. 그래서 더욱 이 악물고 매달린 완성도다. 한국영화의 지존심과 2019년 충무로 유종의 미가 세 작품에 달렸다.
치열한 눈치싸움 끝 다행히 한 날 한 시 개봉은 피했다. '시동'이 가장 먼저 18일 개봉을 확정지었고, '백두산'이 19일, '천문: 하늘에 묻는다'는 26일 등판한다. 크리스마스 시즌과 연말 대목을 놓칠 수 없다는 뜻이 강하다. '3파전'이라 표현하지만 한 작품의 독주가 아닌, 세 작품 모두의 해피엔딩에 대한 응원의 목소리가 높다.
사전 예매율은 순제작비 260억, 손익분기점 730만 명을 자랑하는 '백두산'이 우세하다. 대작다운 화제성과 관심도다. '시동'은 꾸준한 입소문 효과를 노린다. 소소하지만 신선한 영화의 힘과, 개성 강한 캐릭터들에 대한 자신감이 남다르다. '천문: 하늘에 묻는다'는 시사회 직후 호평을 한 몸에 받고 있는 상황. 천재 세종과 장영실을 깨워낸 천재 한석규 최민식은 두 말 할 필요없는 연기력과 진정성으로 승부수를 띄운다.
매혹적인 기성품 '백두산'
출연: 이병헌·하정우·마동석·전혜진·배수지 감독: 이해준·김병서 장르: 드라마·액션 줄거리: 남과 북 모두를 집어삼킬 초유의 재난인 백두산의 마지막 폭발을 막아야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등급: 12세 관람가 러닝타임: 128분 개봉: 12월19일 한줄평: 예상 가능한 맛의 진수성찬 별점: ●●●●○
신의한수: 300억 원을 들인 영화는 때깔이 다르다. 예고된 물량 공세였으나, 결과물은 기대 이상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다른 영화는 쉽게 따라할 수도 없는 특수효과로 시선을 빼앗는다. 후반 작업을 하며 컴퓨터 그래픽에 많은 시간이 들인 탓에 개봉일 하루 전날 시사회라는 불안한 수를 둔 것도 사실. 그러나 결과물을 보면 이 결정을 납득할 수밖에 없다. 또한, '백두산'은 화려한 치장을 했지만, 관객들이 선호하지 않는 치장은 보기 좋게 생략했다. '국뽕'을 찾아볼 수 없다. 남과 북의 대립이나 억지 화합도 없다. 각 캐릭터 저마다의 사정에도 관심을 기울이며 보다 보편적인 감정에 호소한다. 미시적인 시선만 존재하는 것도 아니다. 강대국들 사이에서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대한민국의 현실도 담았다. 오프닝 후 5분 만에 일어나는 강남역 지진을 시작으로 지루할 틈을 허락하지 않는 것도 이 영화의 강점이다. 전체적으로 이해준 감독과 김병서 감독, 두 공동 연출이 조화를 이뤘다. 이해준 감독 답게 평범한 재난 영화를 벗어나 풍부한 맛을 냈고, 김병서 감독 답게 긴박감 넘치는 신에서는 뛰어난 앵글을 담아냈다. 특히 자동차 게임을 플레이하듯 1인칭 시선으로 담아내는 등 김병서 감독의 내공이 담긴 인상 깊은 액션신들이 여럿 배치됐다. 배우들의 연기는 역시 나무랄 데 없다. 이병헌, 하정우는 첫 연기 호흡이지만 매력적으로 합을 맞춘다. 마동석, 전혜진, 수지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제 몫을 한다. 무엇보다 역시, 이병헌은 이병헌이다.
신의악수: 맛은 좋은데, 이미 많이 먹어 본 바로 그 맛이다. 할리우드 영화 '아마겟돈' 등 여러 흥행 영화들이 떠오른다. 다양한 영화에서 조금씩 가지고 와 조합한 것 같은 모양새다. 그래선지 전형적인 설정과 이야기 흐름이 끝까지 이어진다. 신파로 그려진 결말은 베테랑 배우의 연기가 가진 힘에 대부분을 의지하고 있다. 반전이 없고 깊은 고민도 없다. 위기 상황엔 언제나 타이밍 좋게 조력자가 등장해 해결한다. 맥 빠지는 전개다. 또한, 이병헌과 하정우 두 남자에게 집중하다보니 다른 캐릭터의 서사에서 개연성이 떨어지기도 한다. 특히 만삭의 임산부 수지가 어떻게 위기를 극복했는지 과정이 생략돼 뻥 뚫린 느낌까지 준다. 수지 뿐 아니라 마동석과 전혜진의 분량도 기대처럼 많지 않아 아쉬움이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