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천수 인천 전력강화실장이 깨알 같은 글씨로 메모한 수첩 5권을 들어 보이고 있다. 수첩에는 그가 행정가로 변신한 뒤로 팀을 위해 기울인 노력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사진 인천 유나이티드]“(유)상철이 형한테 감독직 제안하던 순간이 안 잊혀요. 친한 사람 선임했다고 할까 봐 관둘까, 우리 팀 살릴 적임자라고 밀어붙일까 엄청 고민했거든요. 믿고 모셔온 게 올해 한 최고 선택이 됐네요.”
2019년을 돌아보는 프로축구 인천 유나이티드 이천수(38) 전력강화실장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시즌 중후반까지 강등권이던 인천은 최종전에서 극적으로 1부 리그에 잔류했다. 축구 행정가로 변신한 그는 팀 상황에 맞는 감독과 선수 영입으로 합격점을 받았다. 최근 인천 도원동 구단 사무실에서 만난 이 실장은 “남들은 몇 년에 걸쳐 경험한 걸 한 시즌에 다 겪느라 롤러코스터를 탄 기분”이라고 말했다.
인천의 반전 드라마 뒤에는 이 실장의 숨은 노력이 있었다. 올 1월 팀에 합류한 그에게 사무실 생활은 난생처음이었다. 그는 “어느 팀이든 프런트와 선수단 사이에 보이지 않는 벽이 있다. 선수였던 사람이 갑자기 프런트라고 끼어 있으니 직원들로선 쉽게 받아들이기 힘들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당황스러웠다. 그동안 사인은 유니폼이나 A4용지에 했는데, 사인할 서류가 그렇게 많은 줄 몰랐다”며 웃었다. 남들보다 2시간 일찍 출근했다. 그러다가 출퇴근 시간을 아끼려고 서울 자양동에서 인천 영종도로 이사했다. 그는 “축구 기본기 다지듯, 신입사원의 자세로 업무에 임하자 직원들도 마음을 열었다”고 말했다.
어느 정도 일에 적응한 이 실장은 행정가로서 본격적인 역량을 발휘했다. 대표적인 게 공격적인 선수 영입이다. 그는 전북에서 주전급 선수를 여럿 영입해 호평을 받았다. 인천이 약체라 거절할 것 같은 선수들도 “어린 시절 우상 이천수 선배가 불러주니 인정받은 기분”이라며 이적에 응했다. 그는 “전북에서 선수를 데려온 건 상징적인 일”이라며 “매번 강팀에 선수를 내주기만 하는 인천이 아니라는 걸 팬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유상철(左), 이천수(右)유망주 육성도 주요 성과다. 이 실장은 부평고 1년 후배 김정우(37)를 설득해 유스팀(대건고) 감독으로 영입했다. 국가대표 출신으로는 보기 드문 경우다. 예산도 5억원 이상 늘렸다. 만년 2위 대건고는 올해 창단 후 처음 2관왕에 올랐다. 이 실장 책상 위엔 깨알 같은 글씨가 빼곡히 적힌 수첩 5권이 있다. 그는 “상대 분석, 스카우트, 연봉, 스폰서, 선수 집 주소 등 온갖 내용이 적혀있다. 민감한 사안도 많아 일부러 흘려 쓰기도 한다”고 전했다. 그는 “태어나 뭔가 이렇게 많이 쓴 건 처음이다. 사무실에 불이 나면 수첩만 들고나올 것”이라고 덧붙였다.
외향적인 이 실장은 예전과 달리 인터뷰 내내 크게 웃지 않았다. 췌장암을 투병 중인 유상철(48) 감독을 생각해서다. 2002년 한·일 월드컵 당시 두 사람은 4강 신화를 함께 썼다. 지난 5월 부임한 유 감독은 이 실장과 서로 의지하며 팀을 이끌었다. 투병 소식을 처음 접한 건 팀이 한창 뒷심을 내던 10월쯤이다. 이 실장은 “(유)상철이 형이 전화로 대뜸 ‘췌장암이다. 이 실장에게 먼저 얘기해야 할 것 같았다’고 했다. 꿈꾸는 게 아닌가 생각했다. 온종일 멍하게 앉아있었다”고 말했다.
마음을 추스른 이 실장은 유 감독에게 “몸만 허락하면 (팀과) 끝까지 함께 해달라”고 부탁했다. 다행히 유 감독 생각도 같았다. 유 감독은 병마와 싸우며 인천의 1부 잔류를 이끌었다. 이 실장은 “마지막 경기 후 상철이 형을 찾아가 ‘수고하셨고 감사하다’고 말했다. 유 감독이 ‘힘들 때 옆에 있어 준 이 실장 고맙다’고 답했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이어 “유 감독 승부는 지금부터다. 반드시 그라운드에 다시 설 것”이라고 말했다.
이 실장의 2020시즌은 이미 시작됐다. 그는 내년 1월 태국 전지훈련 일정을 준비하는 등 바쁜 연말을 보내고 있다. 선수 영입 작업도 한창이다. 주말, 휴가도 없다. 몸은 피곤해도 마음이 즐겁다. 그는 “나는 ‘어린’ 행정가가 아니라 ‘젊은’ 행정가다. 지켜봐 주면 멋있는 시민구단을 만들 것”이라고 자신했다.